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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기 소수서원과 봉황산 부석사





소백산 자락에 있는 영주 땅에는 고려시대부터 흥성했던 역사가 많은 고을 답게 유물과 유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소수서원과 부석사는 꼭 들러봐야만 하는 곳이다.

아흔 아홉 구비에 구름도 쉬고 넘어야 한다는 소백산 허리에 있는 죽령을 넘으면 풍기땅이다. 이곳에서 915호 지방도를 따라 순흥면으로 올라가면 고려시대부터 흥성했던 역사가 많은 고을답게 유물과 유적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빛나는 곳이 소수서원이다.

풍기 출신으로 고려 때의 유명한 유학자인 안향 선생을 기리기 위해 풍기 군수 주세붕이 세운 이 서원의 원래 이름은 백운동 서원이었다. 그러나 1549년 퇴계 이황이 풍기 군수로 지낼 때 명종 임금이 친히 쓴 '소수서원'이라는 편액을 받으면서 이름이 바뀌었다. 그리고 최초의 사액서원이 된다. 사액서원은 선시대에 임금이 책이나 논밭, 노비를 내려보내고 면세와 면역의 특전까지 주는 서원을 말한다. 국가공인의 서원이라고 할 수 있는 사액서원은 명종 때 처음 설치된 이후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났으나 인조 이후 도덕과 충절이 뛰어난 인물을 제향하지 않는 곳이면 허락되지 않았다. 그후 영조때 서원폐단을 이유로 사액서원은 일체 허락되지 않았다.

소수 서원은 이 나라 안에서 세워진 서원 가운데 가장 먼저 만들어진 서원으로도 유명하다.

몇 년전 군에서 비용을 들여 단장을 한 소수 서원은 수백년 된 소나무 숲 속에 숨어 있다. 송진 향기가 짙은 송림 사이로 난 길을 걸어 들어가면 보물 59호로 지정되어 있는 당간 지주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절 입구에 패불을 거는 기둥 받침인 당간지주가 서원에 있다는 이유는 이 서원터가 원래 절터였기 때문이다.

소수 서원이 들어서기 전에는 숙수사라는 절이 있었다. 불교를 누르고 유교를 받들던 조선시대의 '억불숭유'의 정책 때문에 조선 시대에는 절터가 서원터로 바뀌는 일이 흔했다고 하는데 소수 서원도 숙수사 터에 세워져 있다.

당간 지주를 지나면 제법 물이 많은 개울이 있고 그 건너편에 운치 있는 정자인 취한정이 있다. 서원 쪽으로도 경염정이라는 정자가 있어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국이다.

서원 대문을 들어서면 예전에 강당으로 쓰였던 건물과 서고로 쓰였던 건물을 볼 수 있고 그 왼편에 문성공묘가 있다.

서원 뒤편에는 국보인 안양선생 영정과 보물 485호인 원나라에서 가져온 공자의 제자상, 주세붕의 영정 등을 복사해서 전시하고 있는 유물 기념관이 있어 둘러 볼만하다.

소수서원에서 10Km 정도 북서쪽으로 올라가면 부석사에 이른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인 무량수전이 있어 유명한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에 화엄종의 본산으로 의상대사가 세웠다. 창건한 삼백년 지 한 삼백년만에 불타 없어졌고, 1041년 고려 정종 7년에 중건했다.

무량수전은 흔히 복잡해 보이기 쉬운 조선시대의 불교 건축물과는 달리 모양이 우아하게 단조로운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건축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친다.

부석사에는 국보 18호인 무량수전을 비롯하여 국보 17호인 석등, 국보 19호이고 역시 고려 때 건물인 조사당, 국보 45호인 조사당 벽화와 보물로 지정된 여래 돌좌상, 삼층석탑, 당간 지주와 같은 많은 문화재가 있어 '문화유적 답사 여행'을 알차게 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무량수전은 현존하는 목조 건축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건축학도들은 반드시 한 번 들러 봐야햐 할 정도로 건축사적인 의미가 깊은 곳이다. 최근에는 모 정유회사에서 외국 기업에 CI작업을 의뢰했을 때 아이디어 스케치를 하면서 무량수전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부석사에도 창건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이 절을 창건한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병을 앓았을 때 도와주었던 선묘라는 중국 관리의 딸이 의상을 흠모해 불제자가 되어 의상의 뒤를 따르려 했으나 의상이 이를 막았다. 그후 의상이 구도생활을 끝내고 귀국하는 길에 선묘의 집을 찾았으나 없자 그대로 귀국했고 선묘는 바다에 몸을 던져 큰 용이 되어 의상의 뱃길을 보호했다고 한다. 그리고 의상이 절터를 발견했으나 이교도가 물러가지 않자 집채같은 바위를 세번이나 공중에 뜨게 하는 조화를 부려 의상으로 하여금 이교도를 물리치고 절을 지을 수 있게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선묘용은 돌이 되어 법당 자리에 잠들었다고 한다. 용이 변한 것이라는 돌은 집채만한데 의상이 그 위에 무량수전을 짓기 전에 돌이 하늘에 떠올랐다고 하여 이 절의 이름을 부석사라고 했다.

부석사를 창건할 때 만들었다고 하는 석등은 우리나라 석등 가운데 가장 예술적 가치가 높은 것에 든다. 이 석등을 백번만 돌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소문이 있어 부석사에 온 신도들이 그 둘레를 돌기도 한다. 또 사월 초파일이면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달밤에 이 석등을 돌며 복을 빈다.

무량수전 동쪽 30m 떨어진 곳에는 신라통일 기념탑이 있다. 부석사와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이 탑은 삼층으로 비록 손상이 되어 있지만 국보의 가치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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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미

풍기 삼계탕(0572-631-4900)은 인삼의 고장인 풍기에서 인삼을 구해다 쓰는 정성이 담겨 있는 삼계탕 전문점이다. 영계에 수삼 한뿌리, 찹쌀, 마늘, 생강, 대추, 파를 넣고 푹 삶은 것으로 구전되는 전통 삼계탕 조리법을 그대로 쓰고 있다. 영주 경찰서에서 봉화방향으로 100m 정도 가면 영주역으로 내려가는 대로가 오른편으로 열려 있는데 이 길로 50m 정도 내려오면 길 왼편에 자그마한 간판이 보인다
하룻밤 쉴만한 곳
영주에는 소백산관광호텔(634-3300), 이스트궁전호텔(634-1600) 등 호텔과 골든장(634-1733) 그랜드장(632-7266) 등 장급 여관들이 많이 있다. 풍기에는 풍기호텔(637-8800), 한국장여관(636-5701), 소백산장여관(636-5681) 등의 숙박시설이 있으며 부석사 입구에는 코리아나호텔(633-4445)과 식당을 과겸한 민박집들이 여럿 있어 산사에서의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운전메모
■ 중부지방에서 풍기땅으로 가려면 죽령을 넘어야 한다.
■ 죽령은 단양쪽에서 오르는 오르막길이나 풍기로 내려서는 내리막길이 모두 굴곡이 심하고 경사가 급하기 때문에 조심운전을 해야한다.
■ 풍기에서 소수서원을 거쳐 부석사로 가는 길은 포장 상태가 좋아 과속하기 쉬운데 일부 구간은 시야가 좋지않아 사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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