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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에 떠나는 울진 여행


울진의 포구는 살갑다. 봄잔치 요란한 다른 포구와 달리 미역 향기가 묻어 난다. 특별한 소나무숲 , 온천 등 덤도 매달고 있다. 바람 부는 봄날엔, ‘꽃’ 대신 포구다

울진의 포구들은 봄만 되면 울컥거린다. 그곳에서 비린내에 취해 똑딱선 엔진 소리 듣는 것도 좋고, 허물어진 고깃배에 기대 눈물을 빼놓아도 좋다. 이곳 포구는 봄날, 풋사랑에 들이키는 소주처럼 울컥거림이 있다.  
 
7번 국도, 삼척과 울진의 경계에 놓인 자그마한 고포항은 미역줄기같은 주렁주렁한 사연을 지녔다. 마당 만한 포구는 강원도와 경상북도로 갈린다. 골목을 기준으로 붉은 벽돌집은 강원도 삼척에 속해 있고 흰 벽돌집은 경북 울진 소속이다.

문패에 붙은 전화번호도 주소도 시작이 다르다. 미역 말리던 한 할머니는 "길 건너 이웃집에 전화할 때도 시외전화를 걸어야 된다"고 말문을 연다. 그 한적한 포구는 봄이 되면 자연산 돌미역 때문에 분주해진다. 음력 정월이 지나면 본격적인 햇 미역을 채취할 시기다.

“고포 미역은 맛이 짜지 않고 달달한 게 인근 포구의 미역들과는 또 달라. 말렸다가 1년 뒤에 물에 풀어 먹어도 생미역 맛이 나지.”수심이 얕은 암석에서 자연적으로 생산되는 미역은 맛이 좋아 고려 때부터 왕실에 진상되기도 했다. 울진 사람들이 고포 미역은 귀하고 비싸서 구하기 힘들다고 푸념할 정도다. 그래도 포구를 직접 찾은 외지인들에게 전해지는 인심이 갯물처럼 짜지는 않다.

미역을 안주 삼아 소줏잔을 기울이던 할아버지들은 “맛 좀 보고 가라”며 말리던 미역 한 귀퉁이를 툭 떼어 준다. 달고 진한 맛이 혀 가장자리로 은은하게 스며든다. 고포 미역은 ‘특산품’이란 뚜렷한 라벨을 달고 6월까지 생산된다.

고포를 어슬렁거리며 다니다 보면 한 가지 궁금한 일이 생긴다.

이곳 포구 사람들은 강원도 사투리를 쓸까, 경상도 사투리를 쓸까. 울진 역사연구소의 김성준소장은 “이곳 말투는 의외로 함경도 사투리가 강하다”고 전한다. 고포 일대가 영토 확장을 놓고 예전 고구려와 신라가 각축전을 벌였던 곳이었고 고구려의 유민들이 이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단순하게 강원도와 경상도 사투리가 뒤범벅된 게 아니라 억양 강한 함경도 말투가 대대로 배어 있는 셈이다.

고포항을 벗어나 나곡해수욕장을 지난다. 짙푸른 바다만 소리를 낼뿐 여름이 오기 전까지 대부분의 해수욕장과 식당들은 휴업상태다. 해수욕장이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어민들의 해변’이 되는 시기가 바로 이 때다.

멀리 죽변 등대가 보이고 그 아래 울진 포구의 ‘대명사’격인 죽변항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적하고 고요한 포구와 달리 죽변항은 수백척의 배들이 오가는 분주한 곳이다. 봄 포구는 바다 먹을 거리들이 옹골차게 쏟아질 시기. 대게에 이어 대구, 쥐치, 오징어들이 앞다퉈 나온다. 이곳 사람들도 봄에 나오는 생선들을 나열하다가 ‘깜빡깜빡’ 헤메고는 한다.죽변항에서의 나른한 산책
나른한 오후에 죽변항 골목을 거니는 기분은 한갓지고 달콤하다. 낚싯고리처럼 둥글게 도열한 선착장과 중심도로 사이에는 사람 하나 간신히 오갈 수 있는 골목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 골목에서 아주머니들은 가자미도 말리고 빨래도 말리며 말을 건넨다.

“자식들 키우려고 가자미 말리는 걸 시작했다”는 전옥랑 할머니는 “여름에는 또 한철 쉬었다가 가을되면 오징어를 말려 판다“며 사연을 이어간다. 포구는 비대해졌지만 추억의 어촌마을 풍경은 골목마다, 전하는 얘기마다 담겨 있다.

“예전에는 요앞 조선소에서 밍크고래가 많이 잡혔지예. 어렸을적에 세수대야에 고래고기 받아오느라고 줄을 섰어예. 맛있는 생선은 다 영주사람들이 사갔는데...”

이곳에 시집온지 30년 됐다는 임동옥씨는 생선을 다듬으며 죽변항의 옛 기억에 빠져든다. 새로 문을 연 장미다방 앞에는 ‘성현이네 엄마’가 보냈다는 플라스틱 화환이 세워져 있고, 느즈막히 술 한잔 걸치러 소주방에 모여든 사람들은 영덕 게보다 울진 게가 한수위라며 골목집안 허름한 대게 식당 자랑을 늘어놓는다.

영덕 강구항과 함께 대게로 유명한 죽변항은 드라마 한편으로 운치를 더했다. 드라마 <폭풍속으로>의 배경이 된 죽변항에는 시장, 골목, 포구마다 드라마의 사연이 묻어 있다. 죽변등대가 위치한 포구 언덕 위는 세트장이 고스란히 남았다.

등대는 대나무숲 한가운데 운치 있게 서있고 주인공들이 살았던 집이며 교회가 절벽 위 전망 좋은 곳에 세워져 있다. 봉우깨 해변이 내려다 보이는 이곳 절벽에서 바라보는 일출이 아름답다.귀가 먼저 잠을 깨는, 포구에서 맞는 새벽은 또 색다르다. 울진까지 달려왔으면 바닷가 가까이에 위치한 숙소에서 새벽을 맞을 일이다. 포구의 새벽은 해 보다, 갈매기 보다 사람들이 먼저 연다.“뚜웅”하는 뱃고동 소리, “덜그럭” 거리며 수레 끄는 소리. “우지직”거리며 드럼통에 장작 타는 소리.

오전 6시, 배들이 그물을 걷어 들이고 돌아올 무렵이면 사람들이 웅크린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판장 구석 드럼통에 장작불이 제법 타오를 무렵, 수협 경매인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모든게 바쁘게 우왕좌왕한다.

물 좋은 생선을 구하러 나선 식당주인들부터, 그 주인을 따라 나선 백구와 그 백구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는 꼬마까지. 하루중 어판장이 가장 신명날 때다.

새벽녘 잡어들의 거래로 시작된 경매는 대게 경매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오전 10시 즈음까지 이어진다. 가장 인기 높은 것은 역시 대게 경매. ‘고향’은 같아도 양으로만 따지면 울진대게의 어획량이 영덕의 두배 가까이 된다. 살보다 물이 많아서 대게로 치지도 않는 물게는 이곳에서 거래가 엄격히 금지된다. 울진 대게는 5월까지 그 달콤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울진의 해변 길이는 82km나 된다. 옷만 벗으면 해수욕장이라고 농담을 건넬 정도로 지도상에 표시되지 않은 해변들이 많다. 포구의 사연은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주렁주렁 이어진다. 온양해변 앞에는 해녀들이 미역을 따는 모습이 드문드문 보인다. 큰 죽변항에서 벗어나자 마자 ‘작은 삶’들이 자맥질을 하며 눈을 시리게 한다.  

서울로 향하던 공물이 반출됐던 공석포구는 큰 자갈들을 섞어 마을 돌담을 쌓았다. 까막바위, 진바위를 눈앞에 둔 이곳 해변길은 ‘파도가 높으니 길을 걷다 조심하라’는 표시판이 있을 정도다. 공석 마을은 1년에 수십차례나 파도가 마을길을 덮치기도 한다.하늘을 찌를 듯한 소나무숲
울진 포구 여행은 덤이 있어 행복하다. 포구 나들이에 대략 싫증이 날 때 쯤이면 왕피천을 따라 울진의 또 다른 속살을 들여다 본다.

왕피천을 거슬러 불영계곡에서 통고산으로 이어지는 드라이브 길은 볼 것이 아기자기하게 담겨 있다.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36번 도로에는 개나리, 철쭉들이 화사하게 피었다.

도로 초입 내앞마을의 대나무길과 돌담길은 그 골목길을 배경으로 드라마 ‘사랑한다 말해줘’가 촬영된 이후 젊은 연인들이 한번 쯤 들리는 단골 여행 코스가 됐다. 내앞마을 앞에는 한옥구조로 이 인근에서 최초(1917년)로 세워진 행곡교회도 자리잡고 있다.

비구니 스님들의 주전자를 들고 다니는 모습이 인상적인 불영사를 지나면 36번 국도변 최대의 구경거리인 금강 소나무 군락지가 숨어 있다. 수십m를 올곧게 뻗어 자란 매끈한 금강 소나무들중 나이가 500년 넘은 것들도 있다.

군락지 초입에는 예전 이곳의 나무들이 왕실 전용으로 쓰인 것을 증명하는 황장봉계표석이 세워져 있다. 이곳 소나무는 키만 하늘을 찌를듯 클 뿐 아니라 피톤치드도 보통 나무의 10배나 뿜어 낸다. 피톤치드를 흠뻑 마신 뒤 울진의 자랑거리인 백암온천이나 덕구온천에서 온천욕을 하면 피부가 뽀송뽀송해지는게 실감이 난다.

여행의 마무리는 다시 바다다. 왕피천과 동해가 만나는 곳, 관동팔경의 하나인 망양정에 올라 바닷 바람을 맞는다. 죽변, 공석 포구 너머 스쳐 지나온 울진의 포구들이 내려다 보인다. 조선 숙종은 ‘저 바다가 술이라면 하루 300잔만 마시겠냐’는 시 한수를 망양정 현판에 적어 놓았다.

망양정에서 맞는 바람은 고포의 미역 향기 보다 진하고 푸르다. 봄날 포구만 보면, 바다만 보면, 소주도 한잔 걸치지 않았는데 잠시 잊혀졌던 울컥거림이 스멀스멀 피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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