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호텔도 침수·일부 지하철역 폐쇄


















2007년 08월 21일

북한의 수해가 얼마나 심각하기에 제2차 남북정상회담까지 연기하자고 제안한 것일까.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의 북한 수해관련 보고(17일 기준)에 따르면 지난 9일부터 내린 집중호우로 북한 전역에선 221명이 사망하고 80명이 행방불명됐으며, 4만6500여 가구의 주택 파괴·8만5000여 가구의 부분파괴로 3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국정브리핑>은 지난달 28일 남북 자원 공동조사단의 일원으로 방북했다가 집중호우 때문에 예정일을 일주일 넘겨 지난 18일 돌아온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북한교통정보센터장의 현장르포를 통해 참혹한 북한의 수해상황을 전달한다.


하루 종일 비가 온다.
씻어 줄 무엇이 그리도 많은지
바닥에 구멍이라도 낼 듯
세차게 같은 곳만 내리꽂고 있다(김춘경님의 시)

한때 장대비를 바라보며 이런 감상에 젖어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필자가 겪은 장대비는 어느 시인의 시처럼 낭만적이거나 감동적이지 않았다. 필자는 지난 7월 28일 남북 자원공동조사단의 일원으로 북한지역을 방문하였다. 올해 들어서만 6번째의 북한 방문인지라 출장에 대한 설렘이 전혀 없는, 책임감만 무거운 방북이었다.

방문지역은 평안남도 단천 지역의 마그네사이트, 연아연 광산이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평안남도 단천군이지만, 한반도의 오지중의 오지인 양강도 갑산과는 20여km 떨어진 한적한 산골의 광산촌이라고 했다. 평양에서는 659km 떨어진 곳이다. 7월 30일 방문지역이 평양에서 자동차로 17시간이 소요되는 오지인 탓에 직승기(헬리콥터)를 이용해 평양에서 단천의 대흥광산까지 이동하였다. 비행시간만 2시간이 소요되는 먼 거리였다.


1주일에 걸친 힘겨운 자원 조사가 끝났다. 조사기간 중에도 굵은 빗줄기가 뿌렸다. 비가 내린 다음날의 도로와 철도는 밤새 심술궂은 도깨비가 심통을 부리고 간 것처럼 난장판이 되었다. 어른 머리의 2~3배는 됨직한 커다란 낙석들이 도로에 흩어져 있었고, 철도 노반에도 토사가 밀려 내려와 있었다. 호우에 취약한 인프라 구조임을 알 수 있었다.

도깨비가 심통을 부리고 간 것처럼 난장판 된 북한 도로와 철도

8월 8일 단천에서 평양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짐을 꾸리고 있던 중에 비행항로지역의 짙은 구름과 비로 인해 헬기가 뜰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이 날 이후로 정말 장대비의 위력을 실감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새벽녘, 폭포의 물줄기와 같은 소리에 잠을 깼다. 비옷을 걸치고 개울가로 가보았다. 해발 800여m의 고산지역인 그곳의 새벽 물안개는 장관이었다. 밤새 내린 비로 상류지역의 커다란 돌들이 떠내려 오면서 자기들끼리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바로 필자가 들었던 폭포 소리였다. 맑은 물이 흐르던 개울은 흙탕물이 붉은 혀를 날름거리는 무서운 하천으로 변해 있었다. 북한 주민들이 번갈아가며 하천 제방을 근심스런 표정으로 지키고 있었다. 필자가 단잠을 자는 동안, 북한 주민들은 거의 뜬 눈으로 지샌 것 같았다.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다리 하나가 유실될 위기에 처했다. 마을 주민들이 동원되었지만, 변변한 장비가 보이지 않는다. 중장비가 투입될 때까지 현장에서 그냥 기다리는 주민들의 모습이 너무도 측은하였다. 광산용 40t급 트럭과 건설 중장비가 투입되는 등 장시간의 긴급 수방 공사 후에야 겨우 위기는 넘긴 것 같았다.

햇볕을 못 본지 며칠이 지났다. 조사단 단원들의 말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평양 귀환 예정일로부터 8일째 되던 8월 15일 앞산에 짙게 깔린 안개를 보고 날씨가 갤 것 같다는 조심스런 예측을 하는 분들이 있었다. 정말로 구름이 벗겨지고 파란 하늘이 나타났다.

아침은 먹는 둥 마는 둥 오늘은 반드시 헬기가 올 것이라는 기대가 조사단의 주요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비보가 전해든다. 단천과 평양 사이의 전화선이 집중호우로 인해 불통이란다. 따라서 평양공항과의 연락이 불가능해 헬기가 못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대흥광산~단천 간 92km 도로망 중 16군데가 유실돼 통행 불가능

이미 며칠 전에 육로로 이동하겠다는 우리 측 주장에 대해, 북측 관계자가 이례적으로 육로 피해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대흥광산에서 단천에 이르는 92km의 도로망이 이미 16군데가 유실되어 통행이 불가능하며, 함흥지구도 집중호우로 인해 도시가 물바다가 되었다는 것이다. 함흥지구의 커다란 교량은 유실되었고, 평양-원산 간 고속도로도 고갯길이 무너져 불통이란 말을 전해 들었다. 절망이라는 말밖에 다른 표현이 없었다.

점심 무렵, ‘비행기다’라는 누군가의 외침 소리가 들렸다. 헬기였다. 통신이 두절된 상태에서 무작정 헬기가 이륙한 모양이었다. 조사단의 환호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정말 순식간에 짐을 꾸려 러시아제 MI8 헬기에 몸을 실었다.

헬기 아래는 온통 황토빛이었다. 함흥지역을 흐르고 있는 하천은 붉은 황토빛이었고, 단절된 교량도 언뜻 언뜻 보였다. 그리고 많은 농경지가 침수된 모습도 목격할 수 있었다. 참혹한 광경이었다.



평양 인근의 피해 상황도 심각해 보였다. 침수된 농경지와 주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방수처리가 제대로 안된 평양시내 건물은 오랜 장대비 속에 빗물을 머금고 있어서인지 칙칙한 도시 분위기를 자아냈다. 버스 안에서 바라 본 보통강변은 주민들이 동원되어 복구공사가 한창이었다.

강변으로 건져진 쓰레기 더미에서 수해의 심각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고려호텔 앞에는 자동차가 평소보다 2~3배는 많았다. 사유인즉, 보통강호텔이 침수되어 투숙객이 대거 대피하였기 때문이란다.

평양의 심장부 고려호텔 앞 지하보도 행인통행 금지

양각도호텔로 가는 길에도 대동강이 범람한 흔적이 목격되었고, 아직까지 침수된 곳도 일부분 있었다. 평양의 심장부인 고려호텔 앞 지하보도도 물이 차서 행인의 통행이 금지되어 있었고, 지하철도 일부 역은 폐쇄되어 있는 상태였다. 호텔에서 내려다 본 평양역은 철도선로의 침수 및 유실로 인해 많은 열차 및 화차들로 북적대는 모습이었다.

필자가 목격한 북한의 주요 도로들은 북한 지형 특성상 산악지역을 통과하는 도로폭이 좁고 경사도가 급한 꾸불꾸불한 산악도로가 많았다. 평야지역 도로는 오랜 기간 동안 하천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하천의 하상과 도로의 높이가 겨우 50cm~1m 정도밖에 되지 않는 매우 열악한 구조였다.

집중호우가 아닌 약간의 비에도 도로가 유실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취약점을 안고 있었다. 철도 또한 철도노선 측사면의 사방공사 등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산사태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으며, 배수시설이 미미하였다.

북한 산업 및 인구밀집지역에 엄청난 피해 준 장대비

이번 수해로 인해 북한지역은 평양-사리원-개성축, 평양-안주축, 평양-원산축, 원산-함흥-청진축 등 북한의 산업 및 인구밀집지역에 엄청난 피해를 준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가뜩이나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던 수송과 석탄 생산, 전력, 농업부문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어느 북한 주민의 말처럼 ‘양동이로 쏟아 붓는 듯 했다’던 금번의 장대비는 북한 주민은 물론, 장대비를 사치스럽게 바라보던 필자에게도 당혹감과 좌절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였다. 수해복구를 위해 빗속에 트럭을 타고 이동하던 어느 청년의 결연한 눈빛처럼 현재의 재난을 조속히 털고 일어나는 북한 주민의 강건한 모습을 다시 한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