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 다리 끊기고 산사태 덮쳐 - 헬기서 내려본 평양 주변 참담


















2007년 08월 19일 한겨레신문

[한겨레] 남북 경공업-지하자원 개발 협력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달 28일 방북해 함경남도 단천 지역의 3개 광산을 조사한 뒤 18일 귀국한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북한교통정보센터장이 전하는 북한 수해 목격기를 재구성했다. 15명으로 구성된 남쪽의 지하자원 공동조사단은 애초 11일 남쪽으로 돌아올 예정이었으나, 수해 때문에 발이 묶여 귀환이 1주일 지연됐다.

8일 낮 12시, 북쪽 전문가들과 광산 공동조사를 마치고 헬기를 이용해 평양으로 복귀하려 했으나, 평양 시내 폭우로 우리를 데리러 올 헬기가 뜰 수 없다는 연락이 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단천 지역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반신반의했다. 다음날인 9일 다급한 마음에 “헬기가 안되면 육로로도 가자”고 재촉했지만, 평양으로 가는 다리나 도로가 파괴됐다고 북쪽 안내원은 설명했다.

11일부터는 단천 지역에도 폭우가 내리기 시작해, 다음날인 12일에는 숙소인 대흥여관 앞의 다리가 떠내려 가려고 하는 게 보였다. 북쪽 지방 당국은 40톤짜리 트럭과 마을 인력을 총동원해 시멘트 구조물을 강가에 쏟아 부으며 물길을 돌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도로와 통신선, 전력선이 끊어지면서 숙소에도 전기가 잘 들어오지 않았다.

15일 비가 그치면서 평양에서 헬기가 왔다. 해발 1700m에 있는 광산 지역의 헬기장으로 이동하다 보니, 산사태가 일어나 민가를 덮친 모습이 보였다. 헬기를 타고 평양으로 돌아오는 길은 더 참담했다. 함흥 시내에서 가장 크다는 다리가 끊어져 있었다. 평양 근처의 농경지들은 대부분 침수돼 있었다. 대동강의 시뻘건 흙탕물은 턱밑까지 차 있었고, 보통강의 범람으로 시내에 쓰레기가 널려 있어 주민들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

숙소인 고려호텔에 도착해 북쪽 안내원의 말을 들어보니, 보통강호텔이 침수돼 13~14일 이틀동안 외국인들을 긴급히 고려호텔로 대피시켰다고 했다. 보통강 옆의 안산관이란 고급 식당에도 물이 3분의1 가량 들어찼다고 했다. 북쪽 안내원들은 “양동이로 비를 퍼붓는 것 같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평양 시내 근처 을밀대를 가보자고 했더니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힘들다고 북쪽 안내원들은 말했다.

북쪽 안내원들은 평양의 지하철역 일부도 침수됐다고 전했다. 운행을 못해서인지 평양역에는 여객용 열차들이 꽉 차 있었다. 17일이 돼서야 기차들이 조금씩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이재민 숫자 30여만명…경작지 11% 침수 북 피해 얼마나 남북정상회담을 미뤄야 할 정도로 북한의 비 피해는 엄청나다. 통일부는 19일 각종 자료 분석 결과, 피해 규모가 지난해 7월 수해를 능가하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특히 재산 피해에선 대규모 아사와 탈북 사태를 부른 1995년 ‘큰물’ 피해에 버금가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덧붙였다.

북한 당국 발표와 언론 보도, 국제기구 집계를 종합하면 7~18일 폭우로 300여명이 사망·실종되고 30만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테리에 리스홀름 국제적십자사연맹 평양주재 대표대행은 17일 〈에이피〉 통신에 “221명이 사망하고 82명이 실종됐다”는 북한 당국의 말을 전했다.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도 “주택 4만6500여채 파괴, 8만5천여채 부분 파괴로 이재민 30만명이 생겼다”고 밝혔다.

또 곡창지대인 평안남도와 황해남·북도를 중심으로 전체 경작지의 11%가 물에 잠겼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곡물 수확이 20만~30만t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발전소 3곳과 대형변전소 5곳이 침수·파괴되는 등 기반시설도 큰 타격을 받았다. 전선 4만m와 전봇대 500여개가 떠내려갔고, 400여개의 갱·채탄장이 물에 잠기고 석탄 수십만t이 쓸려갔다. 정상회담 방북로인 평양~개성 고속도로도 상당 부분 떠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