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된 지구의 대보복



97년 12월4일 오후 1시. 기후변화회의가 열리고 있는 일본 교토에서는 한국청년 16명을 비롯해 10개국에서 모여든 50여명의 청년들이 팔과 팔을 튜브로 묶은 채 세계적인 석유회사 엑손(EXXON)의 주유소를 봉쇄한 채 기후변화회의에 대한 배후로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일본 경찰과 대치하는 동안 인형극 퍼포먼스와 춤, 노래를 통해 엑손사의 로비를 풍자했다. 또 앞으로 엑손은 생태계의 한계를 고려해야 하며, 나아가 인류는‘화석연료시대’에서‘재생가능한 에너지시대’ 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엑손주유소 점거한 세계 청년들

50여명의 각국 청년들이 1시간에 걸쳐 엑손주유소를 점거하며 평화적으로 벌인 시위는 엄격하기로 소문난 일본 경찰들까지도 그저 지켜봐야만 했다 . 세계 각국의 눈과 귀가 교토에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12월1일부터 12일까지 일본 교토에서 열린 제3차 기후변화 국제회의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으로 교류하던 세계의 청년들은 항공기 3분의 1 수준의 온실가스를 내뱉는 열차와 선박, 자전거만을 이용해 일본 교토에 모여들었다. 한국청년 17명도 온실가스 감축 의지를 행동으로 표현하는 이‘장정’ 에 세계 청년들과 함께 행동했다. 14개국에서 출발한 ‘기후 열차’(Climate Train)팀 36명은 시베리아 열차에 몸을 싣고 교토로 건너와 한국과 일본의 청년들과 만났다.

유서깊은 교토 켄소인 사원에서 함께 생활한 세계 청년들은 매일 저녁 열리는 전체회의에서 기후변화회의에 대한 정보를 나누며 NGO차원의 공동활동계획을 짰다. 엑손을 비롯한 다국적기업에 대한 규탄행동도 이 전체회 의에서 제안됐고 실행에 옮겨졌다.

인류에 대한 ‘생태적 부메랑’이 돼버린 지구온난화의 비극은 21세기를 앞둔 인류 공동의 위기이자 동시에 기회이다. 다른 한편, 이 문제야말로 세계환경파괴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장 극적으로 구별짓는다. 경제적 불평등은 어느새 생태적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세계 온실가스의 4분의 1을 배출하고 있는 미국은 이번 대회에서‘0% 감축’을 표명하며 가장 강경하게 버텼다. 유럽연합 등 전세계의 반발에도 미국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전세계 인구의 20%만을 차지하는 선진국이 전세계 에너지의 80%를 쓰면서 그로 인한 피해는 적도 주변의 작은 섬 국가들이 짊어져야 하는 현실이 이들에겐 안중에도 없다.

엑손을 비롯한 다국적 기업과 산하 로비조직들도 기후협상의 진전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교토에는 지구기후연맹 소속원 61명이머물고 있다. 이 조직은 엑손을 비롯해 셸, 제너럴 모터스, 텍사코, 유니온 카바이드, 포드사와 같은 세계적인 공해배출기업들의 후원을 받는 로비전문조직이다.

산업계의 자율이 환경을 보호한다?
미국에서 엑손과 GCC는 지금까지 개발도상국이 온실가스 감축에 동참할 때까지 미국 정부는 어떤 감축협정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부추기는 대규모 캠페인을 벌여왔다. 반면 개발도상국에는 감축협정에 동참하면 해외투자를 중단하겠다고 협박한다. 이들은 또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정해지면 광범위한 실업과 기업도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선동하며, 공공연히 산업계의 자율협약과 자유시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라고 주장한다.

현재 국가 및 기업 등 세계 1백대 경제 주체 가운데 무려 51개 주체가 초국적 자본(TNCs: Trans National Corporations)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이 들이 주장하는‘자유’시장이란 곧 ‘독점’질서를 의미한다.

기후변화회의 국제회의장 바로 옆에는 일본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의지를 과시하기 위해 준비한 전기자동차와 승마 경찰들이 장식용으로 오가고 있지만 날이 갈수록 대회장 안에서는 실망스러운 소식만 흘러나올 따름이었다. 국가는 지역의 문제를 다루기에는 지나치게 크고 지구의 문제를 다루기에는 지나치게 작다는 것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지구온난화가 점점 더 큰 문제로 부각될 시대에 살게 될 청년들은 이런 상황에서 가장 적극적인 응전을 꾀하고 있다.

대회장 안에서 각국 대표들이 벌이는 풍성한 말 잔치와 이를 둘러싼 로비스트들의 각축, 대회장 밖에서 이어지는 청년들의 행동. 과연 무엇이 인류에게 되돌아오고 있는 생태적 부메랑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