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지구의 꿈 멀어지는가



지난 12월11일 교토 세계기후변화협약 총회는 선진국에 대해 평균 5.2%의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부과하는 의정서에 합의한 채 막을 내렸다. 이에 따라 선진국들은 국내 비준 절차를 거친 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1990년 대비 평균 5.2%의 이산화탄소를 줄여야 한다. 이날 각국에 부과된 감축목표를 보면 유럽연합(EU)이 8%로 가장 많고, 7%인 미국이 그 뒤를 이었다. 또 일본은 6%의 감축의무를 지게 됐다. 12월1일 개막된 이번 회의는 예정 일을 하루 넘겨 의정서가 채택되는 등 논란을 겪었으며, 관심을 모았던 개도국 참여여부는 관련조항이 막판에 삭제됐다.

그러나 `선진국 평균 5.2% 감축'안에 대해 그린피스 등 세계환경운동단체들은 “지구온난화 방지라는 목표에 크게 미달하는 수치”라면서 이렇게 낮은 감축치가 합의된 이면에는 산업계 로비스트 등 온실가스 감축 반대 세력 등의 로비가 크게 작용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선진국 5.2%로 결론난 이번 회의의 공식의제는 지구온난화를 방지였지만, 그 이면에는 산업을 둘러싼 각국의 이해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이해관계의 뒤얽힘 속에 열린 교토총회에서는 산업계와 비정부조직(NGO)에 의한 맹렬한 로비가 이뤄졌다. 특히 산업계는 인류와 지구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중대한 도전을 함께 극복하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의 역사적 책임을 회피하고 당면이익을 추구하는 데 급급한 태도를 보였다.
온실가스 규제가 인류 미래 망친다?
미국 산업계 로비단체인 ‘지구기후연맹’(GCC: Global Climate Coalition)의 겔 맥도널드 의장은 “우리들은 온실가스 방출에 대한 법적규제와 규제시기를 정하는 것에 반대해왔다”며 “이번 총회에서 법적 구속력이 있는 의정서가 채택되면 산업계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부담할 수밖에 없다”는 협박(?)을 일삼았다.

GCC는 미국의 대표적인 압력단체로 엑슨(Exxon)과 셸(Shell), 제너럴 모터스(GM), 텍사코(Texaco), 포드(Ford)등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뿜어내는 석유 및 자동차회사로부터 자금지원을 받고 있다. GCC는 이런 지원을 바탕으로 1천3백만달러나 들여 온실가스 감축이 미국 경제를 망칠 것이라는 대대적인 광고와 캠페인을 펼쳤다.

이번 회의에서 미국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협상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도 이들 산업계와 의회의 적극적인 로비 탓으로 풀이되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는 선거 때문에 의회와 산업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실제 클린턴 행정부는 지난 10월 “현재 기술만으로 당장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 줄일 수 있다”고 공언했었다. 그러나 이번 교토회의에서 미국은 이산화탄소 감축에 대해 가장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전세계 이산화탄소의 25% 이상을 내뿜고 있는 미국 산업계의 강한 압력 탓이다.

또한 스위스의 다국적 기업 ABB와 BP(British Petroleum), 미쓰비시, 도쿄전력회사,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세계산업계위원회(WBCSD) 등은 “온실가스 배출 억제 움직임은 서구문명에 대한 음모이며 다음 세대의 삶을 위협하는 것”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동원하기도 했다. 이들은 “온실가스배출 감축은 선진 국민들의 일상생활을 이유없이 바꾸라고 강요하는 것”이라며 “이번 회의에서 논의되고 있는 에너지 사용 감축안은 산업문명의 생명줄에 제한을 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산업계 막강 로비 앞에 감축 목표 실종
세계적인 환경단체들은 이런 산업계의 주장에 맞서 감축의 필요성을 강조 했다. 그린피스 인터내셔널의 산업계 담당자는 “산업계의 로비그룹이 배포하는 자료들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세계 각국 정부협상자들과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 이번 교토회의에서 우리의 구실”이라며 “정부나 산업계가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발표했을 때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대응 캠페인을 벌였다”고 언급했다. 민간단체들은 산업계 로비스트들이 잘못된 정보를 유출하고 있는지를 추적하는 구실도 하고 있다.

따라서 애초 실질적인 협정이 만들어지지 못할 것으로 예상됐던 이번 교토총회에서 그나마 선진국 평균 5.2% 감축을 뼈대로 한 의정서가 만들어진 것은 이런 국제 환경단체들의 노력 탓이 컸다. 그러나 문제는 이번 감축량이 각국 정치가들이 실질적인 감축량을 최대한 낮추면서 체면은 구기지 않는 정도에 머물렀다는 점이다. 또 이번 의정서의 국내 비준을 `국내 사정'을 들어 차일피일 미루는 등 이를 실천에 옮기지 않을 가능성도 다분하다. 이를 두고 환경단체들은 “몇몇 정상들이 지구를 갖고 놀고 있다”고 비꼬았다.

그러나 기후변화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협상은 결국 환경정의의 문제로 모아진다. 북(선진국가들)은 남(개발도상국과 최빈국)보다 지구온난화를 촉발하는 데 훨씬 더 큰 몫을 했다. 반면 그 결과에 대처하는 데 있어 남은 북보다 훨씬 더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주된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의 경우 세계 배출량의 약 70% 수준이 선진국에서 방출된다. 미국은 전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4분의 1을 내뿜고 있으며, 미국인 개인은 인도인의 20배 정도에 해당하는 이산화탄소를 배출 한다. 반면 지구온난화로 특히 타격을 받는 곳은 인도를 비롯한 더운 곳에 있는 개도국이다. 작은 섬나라와 개도국의 연안국가들은 해수면 범람에 대처할 수 있는 기간시설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해수면 상승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배출은 선진국이, 피해는 개도국이

이처럼 일부 국가는 피해를 입기가 더 쉽다는 점 때문에 다른 국가들보다 더 큰 이해관계를 맺고있다. 이런 점에서 지구온난화는 특히 환경정의에 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교토 총회에서 개도국의 참여 문제가 막판에 삭제된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이 또한 개도국의 산업자본과 선진국 산업자본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각종 환경단체들이 원했던 것은 개도국 배제가 아닌 선진국의 더 큰 폭 감축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교토총회는 세계의 가장 피해 받기 쉬운 힘없는 구성원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구속력있는 의정서를 채택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러나 더러운 산업계의 로비 탓에 지구환경은 물론 환경정의마저 무너져 내리는 것이 이곳의 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