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에도 물난리다.


















2006. 8. 法頂

지역적인 편차는 있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이 땅에 물난리가 났다. 수해가 있을 때마다 관계당국에서는 항구적인 대책을 논의하지만 수해는 항구적으로 지속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자연의 대명사인 산천, 즉 산과 강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자연은 원천적으로 곡선(曲線)을 이루고 있다. 해와 달이 그렇고 지구가 그렇다. 산맥의 흐름과 산자락과 강줄기가 지극히 자연스런 곡선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마치 우주의 유장한 호흡과 같다.

자연의 이와 같은 호흡과 체질을 무시하고 사람들은 길을 내고 둑을 쌓으면서 눈앞의 경제성만을 내세워 직선을 고집한다. 길을 내고 집을 짓기 위해 산자락을 직선으로 깎아내린 그 절개지의 결과가 산사태를 불러오고 물난리를 가중시킨다.

강물의 흐름도 굽이굽이 돌아가면서 흘러야 유속을 억제할 수 있는데 강바닥의 돌까지 있는 대로 걷어내고 직선으로 강둑을 쌓기 때문에 강물은 성난 물결을 이루면서 닥치는 대로 허물고 집어 삼킨다.

오래 전에 한 노스님한테서 들은 이야기가 가끔 되살아난다. 무슨 ‘비결’에 나오는 말이라고 하면서 머지않아 이 땅에 일각수(一角獸)가 나타나 온 국토를 유린할 거라고 했다. 벌써 오래 전 일이라 귀신 신나락 까먹는 소리로 여기고 말았는데 요즘에 와서 그 일각수 이야기가 문득문득 떠오른다. 뿔이 하나인 그 일각수란 게 요즘 말로 하자면 ‘포크레인’일 것이다.

이 일각수라는 중장비 덕에 개발이 촉진된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 이 일각수 때문에 여기저기 우리 삶의 터전인 자연이 얼마나 많이 멍들고 손상되었는지 너무나 자명하다. 삽이나 괭이 같은 손연장이라면 자연은 오늘처럼 황폐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이 필요에 의해서 만든 기계가 능률면에서는 문명의 이기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자연에게는 커다란 흉기가 아닐 수 없다. 이 일각수 때문에 이 땅이 그 원형을 잃을 만큼 얼마나 많이 훼손되고 있는지 방방곡곡이 이를 드러내고 있다.

어제에야 개울물이 줄어 극심한 수해현장을 두 군데 가보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처참, 처참하다. 수많은 이웃들이 땀을 흘리면서 복구를 돕는 모습은 그래도 우리가 이웃을 지닌 따뜻한 세상을 이루고 있구나 싶었다.

복구현장에도 여기저기서 일각수가 많은 일을 해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묘한 생각이 들었다. 허물기도 하면서 한편 다시 복구를 하는 것이 문명의 연장인가 싶었다. 일각수 자체는 생명이 없는 단순한 기계다. 거기 사람의 생각과 손이 작용해서 파괴도 하고 복구도 한다.

미국독립 2백주년을 기해 원주민인 이로쿼이 인디언 연명은 이런 성명서를 발표했다.

“우주에는 우리를 다른 생명체들과 이어주는 기운이 있다. 우리 모두는 대지의 자식들이다. 우리가 지진과 홍수 등 온갖 자연재해에 시달리는 것은 사람들이 어머니인 대지에 너무나 많은 상처를 입히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 가진 것들을 존중할 때만이 당신들은 성장할 수 있다. 이 대지는 인간생존의 터전이며 우리 다음에 올 여행자들을 위해 더럽히는 것을 막아야 한다.

어머니 대지의 물과 공기, 흙, 나무, 숲, 식물, 동물들을 보살피라. 자원이라고 해서 함부로 쓰고 버려서는 안 된다. 보존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가 대지를 보살필 때 대지도 우리를 보살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