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이변의 주범 엘니뇨


















전세계에 가뭄, 홍수, 기근, 산불 그리고 숱한 인명피해를 일으키는……

지난 1997년 3월 미국 칼럼비아대학교 레먼트-도허티 지구기상관측소의 노련한 기상학자 스티븐 제비어크는 컴퓨터 스크린을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몇 년째 전세계에 나타나고 있는 가뭄, 홍수, 기근, 산불 그리고 수천명의 인명피해 등이 하나의 기상현상에 기인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계기우에 가장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 엘니뇨였다.

제비어크는 동료 기상학자인 마크 케인과 함께 컴퓨터 예측모델을 개발하여 1982년, 1986년, 1991년에 발생한 엘니뇨를 정확히 예측했고 1998년에 다시 엘니뇨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했었다. 그러나 제비어크의 컴퓨터 스크린에 나타난 기상관측위성과 태평양 해수면 감시장치의 자료는 틀림없었다. 미국 면적보도 크고 수심이 180m나 되는 거대한 난류가 남아메리카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1997년 6월에는 서쪽으로 불던 적도의 무역풍이 방향을 동쪽으로 바꾸었다. 국립환경예보센터에 의하면 이런 현상은 1982∼1983년 겨울 가장 심한 피해를 준 엘니뇨가 발생했을 때 마지막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9월이 되자 캘리포니아주 북쪽 해역의 수온이 예년보다 섭씨로 약 9.4도나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워싱턴주 연안에서는 훨씬 남쪽에서나 잡히는 청새치 한 마리가 잡혀 어부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했다. 칠레 중부지역은 폭풍우로 홍수가 들었고 안데스산맥에는 평년보다 많은 눈이 내려 수백 명이 혹한 속이 고립되었다.

제비어크와 케인은 기상변화를 추적해 보았다. 1997년 3월에 포착한 엘니뇨의 현상이 지속된다면 가을과 겨울에 파괴적인 기상이변이 나타날 것이었다.

엘니뇨는 스페인어로 "작은 아이"라는 뜻이고 이를 대문자로 쓰면 아기예수가 된다. 19세기에 페루 선원들은 몇 년 간격으로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연안해역의 수온이 올라가고 해류가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현상을 보고 이런 천진스런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러나 이 "작은 아이"는 전세계에 걸쳐 심각한 기상이변을 일으킨다.

엘니뇨는 태평양의 열대해역에 기상이 급격하게 변하면서 발생한다. 보통 때는 남아메리카 연안에서 서쪽으로 부는 무역풍이 바닷물을 아시아 쪽으로 밀어붙인다. 마치 커피 잔을 한쪽에서 훅하고 불면 뜨거운 커피가 잔의 반대쪽으로 밀려가듯 무역풍은 호주, 인도네시아, 필리핀의 해안을 향해 더운 바닷물을 밀어붙이는 것이다.

더워진 바다 위의 습한 공기가 위로 올라가 기압을 떨어뜨리면서 열대성 폭우를 만들고 이것이 아시아의 열대 우림을 키우는 것이다. 한편 높은 곳의 바람은 다시 남아메리카로 되돌아가고 그곳에서 차가워진 공기가 내려오면서 기압이 올라가게 돈다. 이 때문에 남아메리카의 태평양 연안 지역은 거의 비가 내리지 않아 세계에서 가장 메마른 지역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엘니뇨가 발생하면 이러한 기상패턴이 반대로 뒤바뀐다. 즉 서태평양의 기압이 올라가 호주에서 인도에 이르는 지역에 가뭄이 닥치고 무역풍은 약해지거나 심할 때는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아시아 쪽으로 부는 바람이 없기 때문에 더운 바닷물은 남아메리카로 되돌아와 칠레에서 캘리포니아주에 이르는 해역에 폭풍우를 일으킨다. 한편 태평양 상공에서는 16㎞나 치솟아 오른 적란운(積亂雲)이 대기를 더욱 가열시키면서 강한 제트기류가 형성된다. 제트기류는 두 갈래로 갈라지는 경우가 많다. 하는 북쪽으로 가면서 북서태평양과 캐나다 중부, 알래스카에 온난기단을 만들고 또 하나는 남쪽으로 몰려가면서 미국의 멕시코만 연안에 위치한 다섯 개의 주와 남서부에 폭우를 내린다.

엘니뇨는 인류에 엄청난 재난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1982∼1983년에 발생한 엘니뇨는 130억 달러의 재산피해와 2000여 명의 인명피해를 초래했다. 호주에서는 먼지폭풍이 멜버른을 덮치면서 낮이 밤처럼 캄캄해졌고 그 여파로 산불이 맹위를 떨쳤다. 인도 남부에서는 우기에 비가 제대로 내리지 않아 곡식이 말라죽었다. 평소에 태풍이 접근하지 않는 지역에 엄청난 태풍이 몰려와 하와이의 일부를 쑥밭으로 만들었다. 한때 세계 최고의 어획고를 자랑하던 페루의 수산업은 심한 피해를 입었다. 페루 북서지방에서는 예년보다 10배나 많은 비가 쏟아져 거리가 물에 잠기고 해변도시 출리야치는 태평양 물결에 뒤덮였다.

뉴멕시코에 선페스트가 창궐한 것도 엘니뇨 때문이었을 것이다. 봄이 서늘해지면서 주민들은 밖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쥐들은 급격하게 번식했다. 선페스트에 감염된 벼룩들이 쥐로부터 사람에게로 옮겨 붙었다.

엘니뇨가 가져오는 긍정적인 효과는 없는 것일까? 있을 수있다. 대서양에서 발생하는 열대성 태풍이 엘니뇨가 발생하는 해에는 줄어든다고 제비어크는 지적한다. 학설에 따르면 엘니뇨에 의해 상층권에 말들어진 바람이 대서양에서 발생한 태풍은 윗부분을 잘라버려 태풍이 큰 힘을 모으기 전에 소멸된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외이즈만연구소 과학자들은 나무의 나이테와 기상위성이 보낸 구름사진을 검토한 끌에 엘니뇨가 건조지대인 중동에 소중한 물을 가져다줄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연구소의 과학자 단 야키르는 "엘니뇨 성지(聖地)에도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한다.

1997년부터 세계의 과학자들이 엘니뇨를 주시하고 있다. 남아메리카 근해의 태평양 수온이 크게 상승할수록 엘니뇨의 힘이 더욱 강해진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다. 그런데 1997년 이래 태평양의 수온이 유난히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기후변화를 연구하고 있는 UCLA의 마이클 길 박사는 금년에 엘니뇨의 충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메릴랜드주에 있는 미국국립 대양·대기관리국 산하 기후예측센터의 앤츠 리트마 소장도 금년의 엘니뇨가 대형폭탄으로 커져가고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기상예보관들은 미국에서 엘니뇨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지역이 캘리포니아주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폭우로 지반이 물러진 산비탈 위의 주택들이 해안 고속도로로 쓸려 내려가리라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에서 플로리다 주에 이르는 남부 주들은 예년보다 춥고 비가 많이 오는 겨울과 봄을 맞을 것이며 일부 지역에서는 거대한 폭풍이 들이닥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북서부는 예년보다 덥고 비가 적게 올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남아메리카는 대부분 지역이 예년보다 비가 많이 올 것으로 예상된다. 아시아에서는 계절성 호우가 내리지 않아 인도아대륙(亞大陸)에 식량부족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엘니뇨가 왔다 하면 어김없이 한발이 드는 호주에서는 벌써부터 엄격한 수자원보존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물론 세계경제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브라질의 가뭄과 콜롬비아의 홍수는 커피와 곡물 가격을 상승시킬 것이고 에콰도르에서 캘리포니아주에 이르는 해역에서는 이미 어업이 타격을 받고 있다.

과학자들이 엘니뇨를 보다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면 세계 각지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엘니뇨가 언제 닥칠 것인지를 미리 알 수만 있다면 보험회사, 농민, 발전소, 관개(灌漑)회사, 공공안전기관, 심지어는 관광객들도 도움을 받을 것이다.

"엘니뇨 예보는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마크 케인은 말한다. 언젠가는 화학자들이 엘니뇨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당장은 재해대책을 세우면서 기상악화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