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바다 '지중해' 되어가나  



















2004/2/5

2m짜리 대형 가오리 97마리나 잡혀…아열대·미기록 어종 속속 출현
해수온 상승…해파리와 갯녹음 피해 잇따라

지난달 1일 전남 여수시의 대표적 ‘멸치 마을’인 화양면 용주리 ‘멸치 건조장’은 텅 비어 있었다. 일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고 건조 기계 손잡이에는 큰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마을 앞 선착장에도 멸치잡이배 20여척이 묶여 있었다. 용주리 최형채(崔亨埰·52)씨는 “이곳 어민 180여명이 석 달째 손을 놓고 있다”고 말했다.
난류성 어족인 멸치는 10년 전만 해도 주로 9~11월에 많이 잡혔지만, 최근엔 사철 내내 ‘풍어’를 이룬다. 이에 따라 가격이 폭락해 어민들이 조업에 나가지 않는 것. 여수 수협에 따르면 지난해 잡은 멸치 5만여t 중 1만t 가량이 재고로 쌓여 있으며 출하 가격도 5년 전 2㎏에 1만~2만원에서 3000~4000원으로 폭락했다.

한반도 온난화는 바다에도 어김없이 몰아치고 있다. 1980년대 초반 2만t 넘게 명태가 잡혔던 강원도 고성군은 여수와 정반대 상황. 우리나라의 대표적 한류성 어족인 명태가 동해에서 점점 사라지면서 해마다 열리는 ‘고성 명태 축제’에 쓸 명태조차 못 구하고 있다.

대신 아열대 어종의 출현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 2001년 여름 남해안부터 속초에 이르는 해역에 아열대 어종인 독가시떼가 출현했다. 2002년 4월 충남 연안에서는 황줄깜정이, 벵에돔이 발견됐고, 같은해 9월 강원 속초 연안, 전남 신안군 가거도, 경남 격포 연안 등에서 강담돔, 청황베도라치, 청줄돔, 노란 자리돔 등 아열대성 어종이 나타났다.

지난해 4~9월 제주도 연안에서도 갈기베도라치, 청별망둑(가칭), 긴입학치(") 등 미기록 어종도 잇따라 발견됐다. 제주대 김병직(金秉直) 연구원은 “모두 미국 플로리다~멕시코 북부, 뉴질랜드, 마셜 제도 연안 등에서 발견됐던 아열대성 어류”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 강원도 양양 연안에서는 길이 2m, 무게 300㎏이 넘는 대형 가오리 97마리가 잡혔다. 오스트레일리아·남아프리카 연안에 서식하는 색 가오리와 유사한 이들 대형 가오리를 해부·조사한 결과 “뱃속에 아열대성 어종인 뱃돔이 들어 있어 따뜻한 난류를 따라 동해까지 흘러들어온 것 같다”고 가오리 전문가인 정충훈(鄭忠勳) 인하대 연구교수는 말했다.

아열대 어종에 따른 피해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9월 충남 당진군 송산면 성구미 어민들은 크기 60~80㎝가 넘는 해파리 떼가 바다에 내놓은 그물 등에 걸려 어구가 망가지는 피해를 입었다. 해조류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지난 1971년 181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던 부산 동백섬 앞바다에 사는 해조류는 2001년 48종으로 줄었다. 해수온 상승과 수질 악화 등으로 생긴 갯녹음(바위에 붙어사는 해조류가 하얗게 탈색돼 죽어가는 것) 현상 때문이다.

제주도 서귀포 앞바다 산호초 군락에 대한 지난 1992년과 2001년 조사 결과 ‘분호바다 맨드라미’ 등 특정 산호초 2개의 숫자만 늘고 다른 종류의 산호들은 감소하면서 산호초 군락의 다양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이화여대 송준임(宋浚任) 교수는 “국내 산호 135종의 70%가 제주 지역에 있는데 그 종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수온 상승이 부정적인 변화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난류성 어족이 늘면서 그만큼 어종이 다양해지기 때문. 울릉도에서 30년 넘게 낚시를 해온 김수한(金壽漢·44)씨는 “울릉도 낚시꾼들이 낚는 어종의 95% 이상이 난류성이고 자리돔은 한 번에 100~300마리도 잡힌다”며 “울릉도 낚시꾼이 4~5년 전에 비해 15배나 늘었다”고 말했다.

한국해양연구원 명정구(明正求) 연구원도 “한반도 연안이 따뜻해지면 지중해처럼 따뜻한 관광·휴양연안을 가질 수 있다”며 “새 해양환경을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