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의 반란  


















2003/9/15

장마가 끝난 뒤에도 하루 걸러 비가 쏟아지더니 끝내 강풍과 폭우를 동반한 태풍 '매미'가 내습해 남부지방에 막대한 피해를 냈다. 태풍이야 불가항력이라지만 아열대기후를 연상시킬 정도로 자주 내린 올 여름 비는 조짐이 심상찮았다. 지난 석달 동안의 강우일이 47.2일로 최근 30년간 가장 길었고, 전국 평균 강우량 1천㎜는 예년보다 3백여㎜나 많았다. 반면 일조량은 예년의 3분의 2 정도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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뙤약볕을 받으며 곡식이 여물어갈 계절에 비가 잦아 벼농사에 타격을 줬고, 과일도 일조량이 부족해 당도가 떨어지는 데다 병충해까지 번져 흉작을 면치 못하게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태풍까지 휩쓸고 지나가 농민들의 Ga슴이 타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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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이변으로 몸살을 앓기는 지구촌이 거의 비슷하다. 지난해 1백년 만의 대홍수를 겪었던 유럽이 올 여름엔 폭염으로 2만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섭씨 40도를 넘는 살인더위가 2주 이상 계속돼 1만여명이 숨진 프랑스에선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대(對)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특히 자식들이 휴가를 떠나고 혼자 남은 노인들 가운데 희생자가 많아 복지국가의 자존심에 상처를 남겼다. 스페인 남부지방에선 기온이 사상 최고인 45.5도까지 치솟으며 일사병 환자가 속출했고 중국에서도 낮엔 40도, 새벽 최저기온조차 32도를 넘는 불볕더위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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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뒷받침하듯 최근 미국과 영국의 연구팀은 현재의 지구 기온이 2천년 만에 최고온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기후의 역사를 보여주는 각종 지표를 분석한 결과 지구 전체의 평균기온 변화는 1백년마다 0.2도 상승에 불과했지만 최근 20년간에 0.2도나 올랐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같은 급속한 기온 상승 현상이 대기 속 온실가스 집적에 의한 지구 온난화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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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가 인간의 문명 탓만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지구의 온도는 태양의 활동에 크게 영향을 받으며, 현재의 기온 상승은 냉각기와 온난기를 반복하는 순환주기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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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구는 분명 더워지고 있다. 지구 전체의 평균기온이 지난 1백년간 0.6도 높아졌다. 이 같은 온난화는 필연적으로 기후 평형을 깨뜨려 폭염.폭우.홍수.가뭄 등 극단적이고 포악한 기상 재난을 빈번하게 불러온다. 자연 생태계가 변하고 새로운 질병이 생기는가 하면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진다. 섬 전체가 물에 잠기는 바람에 이웃 나라로 망명을 떠난 남태평양 투발루 공화국은 지구 온난화가 가져온 비극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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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많은 학자가 온실가스를 지목한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 사용이 급증했고 이 과정에서 대기로 방출된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 등이 태양 복사에너지를 과다하게 가둬 두는 온실효과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산업혁명이 시작될 때보다 30% 높고, 현재 추세가 계속되면 2100년엔 현재보다 최고 1.5배나 높아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2100년엔 지역에 따라 최고 5도까지 평균기온이 올라갈 것이라는 끔찍한 전망도 나온다. "온난화라는 대량살상무기(WMD)가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는 기상학자의 경고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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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의 반란'을 쓴 프랑스의 과학 저널리스트 실베스트르 위에는 인간이 변화시킨 지구가 부메랑으로 우리에게 돌려줄 재앙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결론은 이렇다. "씨름이라도 하듯 자연을 상대로 싸워 이겨야 한다는 인간의 오만함을 이제 버릴 때가 됐다. 그리고 자연의 움직임과 동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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