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 태풍


















 버지니아주, 제임스타운. 1667년 8월 27일 나중에 미국 영토로 편입된 북아메리카 일대에서 허리케인에 관해 최초로 기록된 것은 제임스타운(북미 최초의 영국 식민지)의 허리케인이었다. 런던에서 발간된 팜플렛(버지니아에서 온 기이한 소식)은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무시무시한  허리케인 이...여러 채의 가옥을 뒤엎고, 그 폐허 속에 많은 물건과 사람을 파묻어 버렸다.

 인도, 벵골만. 1737년 10월 7일 1970년 파Ki스탄 동부를 황폐화시킨 태풍 다음으로 위력이 강했던 이 사이클론(인도양 등에서 부는 대폭풍)은 캘커타 근방의 후글리강 하구를 따라 2만 척의 배를 침몰시키고, 30만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 후 2세기 반에 걸쳐 기록에 남은 10대 사이클론 중 일곱 개는 벵골만에서 일어난 것들이다.

 카리브해. 1780년 10월 10--12일 기록상 최악의 대서양 허리케인이 바베이도스에서 푸에르토리코까지 휩쓸고 지나가면서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그  대허리케인 으로 2만 내지 3만명이 사망했고 영국, 스페인 그리고 프랑스 함대가 전멸되다시피 했다.

 뉴일글랜드. 1815년 9월 23일 1938년 발생한  뉴잉글랜드 대허리케인 보다 123년 앞서서  9월 대강풍 이 뉴잉글랜드 지역을 휩쓸고 지나갔다. 이 두 개의 폭풍은 둘 다 똑같은 경로를 지났고, 강도도 같았으며, 해안선의 모습도 비슷하게 바꾸어 놓았다.

 인도차이나 반도, 하이퐁. 1881년 태풍이 통킨만의 이 항구 도시를 강타했을 때 약 30만명이 사망했다. 그 외에 이 폭풍의 여파로 발생한 질병과 기아로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 봄베이. 1882년 6월 6일 아라비아해에서 일어난 한 사이클론 때문에 봄베이항이 침수되었고, 그 결과 이 항구 도시와 인근의 주민 10여만명이 익사했다.

 텍사스주, 인디애놀라. 1886년 8월 19일 이 허리케인으로 250명이 죽고, 멕시코만의 해안 도시 인디애놀라에 있던 가옥이 거의 다 파손되었다. 22년 동안 두번의 살인적인 폭풍을 경험한 인디애놀라 사람들은 정든 이 도시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주하기로 결정했다.

 푸에르토리코. 1899년 8월 허리케인 산시리아코호는 카리브해 전역, 특히 푸에르토리코에서 맹위를 떨쳤다. 푸에르토리코에서는 3000명이나 죽었다.

 일본, 도쿄. 1918년 9월 30일 지금까지 도쿄를 강타한 가장 강력한 태풍 중의 하나인 이 날의 태풍으로 1619명이 사망했고, 240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플로리다주 오키초비호. 1928년 9월 16--17일 서인도 제도에서 약 2000명의 사망자를 낸 이 허리케인은 엄청난 힘으로(미국 역사상 두번째로 강력했다) 플로리다주의 중남부를 강타했다. 이 폭풍의 맹습으로 수 킬로미터나 되는 제방이 무너지면서 오키초비호의 물이 주변의 들판으로 쏟아져 들어와 무려 2500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들 대부분은 가난한 소작농이었다.

 도미니카 공화국, 산토도밍고. 1930년 9월 3일 시속 320km의 강풍을 동반한 허리케인으로 2000명의 도미니카인이 죽고, 이 나라의 수도 산토도밍고가 붕괴되다시피 했다.

 일본, 오사카. 1934년 9월 21일 강력한 태풍이 일본 열도의 주요 도서인 혼슈를 강타해 약 4000명이 죽었다. 대부분이 취약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던 활기찬 산업중심지의 주민들 이었다.

 일본, 홋카이도. 1954년 9월 26일 시속 160km의 속도로 분 이 태풍으로 일본 북부의 섬 홋카이도의 하코다테만과 그 주변에서 1600명이 죽었다. 이 태풍으로 희생된 사람들 중에는 바람과 파도에 밀려 전복한 정기 연락선  도요마루 의 승객 1172명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 동부(허리케인 헤이즐호). 1954년 10월 5--18일 1954년 세번째로 동부해안지대를 강타한 대폭풍 헤이즐호는 카리브해의 섬나라 그레나다 근해에서 조그마한 열대저기압으로 시작 되었지만, 죽음의 허리케인으로 발달했다. 카리브해에서 캐나다의 토론토까지 휩쓴 이 허리케인은 1200명의 사망자를 냈다.

 루이지애나주(허리케인 오드리호). 1957년 6월 27일 사전에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루이지애나주의 멕시코만 해안 지대의 주민 약500명이 이 폭풍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렇게 피해를 입은 것은 수차에 걸친 대피경고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카리브해(허리케인 플로라호). 1963년 10월 2--7일 지금까지 대서양에서 기록된 것들 중에서 두번째로 격심했던 폭풍 플로라호는 트리니다드섬(서인도제도 최남단의 섬) 남쪽에서 시작해서 카리브해를 지나 쿠바에 상륙할 때 7000여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미국의 멕시코만 해안지대 (허리케인 커밀호). 1969년 8월 14--22일 루이지애나주, 미시시피주, 앨라배마주 전역을 무려 320km의 속도로 지나간 후, 커밀호는 계속 질주하여 동해안 중부의 여러 주에 폭우를 쏟아부었다. 피해액은 무려 15억 달러에 달했다. 폭풍으로 인한 사망자 225명의 대부분은 태풍 경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미시시피 삼각주 일대의 주민들이었다.

 온두라스(허리케인 피피호). 1974년 9월 19--20일 카리브해의 이 살인마가 온두라스를 휩쓸고 지나가자 5000명이 사망하고, 약 6만명이 집을 잃었다.

 카리브해(허리케인 데이비드호). 1979년 8월 31일--9월 4일 허리케인 데이비드호가 약 1주일간 카리브해를 지나가는 동안, 약 1200명이 죽었다. 가장 피해가 심한 곳은 도미니카 공화국이었는데, 그 나라에서는 서 있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폐허가 되고 말았다.

  오, 맙소사! 우린 이제 끝장이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하늘에는 진흙, 물, 코코넛 그리고 지붕을 덮었던 함석판들이 면도날처럼 날아와 뒤범벅이 되어 희부연 녹색의 소용돌이를 이루었다. 잠시 후 우리집 지붕도 날아가 이젠 우리도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리케인 데이비드호가 카리브해의 섬나라 도미니카에 상륙한 것을 본 한 목격자의 목격담에서.

 카리브해와 멕시코(허리케인 길버트호). 1988년 9월 중순 금세기 들어 최고의 맹위를 떨친 허리케인 길버트호가 자메이카, 유카탄 반도, 멕시코 동북부를 1주일 동안 휩쓸어 300명의 사망자와 75만명의 이재민과 100억 달러 이상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