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의 공포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더미 속에 수천 명의 사람들이 생매장되다

 이틀 일정으로 뉴욕을 방문 중이던 마하일 S. 고르바초프 구소련 대통령은 유엔총회에 참석하여 소련 병력의 일방적 감축 계획을 발표하여 서방 지도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고르바초프 일행의 카퍼레이드가 시내 중심가를 지나갈 때, 뉴욕 시민들이 연도로 몰려나와 환호를 보냈다.

 이때 고통스러운 뉴스가 전해졌다. 터키와 접경해 있는 소련의 아르메니아공화국을 대지진이 강타하여 인구가 고도로 밀집돼 있는 1만 360평방 킬로미터 지역을 초토화시켰다는 소식이었다. 3개의 도시가 사실상 완전히 파괴되었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건물의 잔해 더미 속에 생매장되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성공적이었던 미국 방문일정을 단축, 급히 모스크바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는 다음과 같은 고별사를 남겼다.  이 참극으로 상처입은 모든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긴급 조치들이 취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사고 현장으로 떠나야 합니다.  

1988년 12월 7일, 오전 11시 41분에 발생한 지진은 리히터 지진계로 진도 6.9를 기록했다. 그러나 실제 파괴력은 그 강도에 걸맞는 범위를 훨씬 넘어선 규모였다. 모스크바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한 어느 해설가의 표현대로, 스피타크시는 사실상  지구 위에서 사라져 버렸다.  약 17만의 인구가 모여 사는 이웃 도시, 키로바칸시에서는 대참사가 빚어졌다. 크고 작은 대부분의 건물이 무너지면서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생매장되었다. 고층 아파트 단지들이 무너져 내리고, 조립식 콘크리트 슬래브 덩어리들이 산산조각 나는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의 뼈가 무참히 부서졌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48km 떨어진 레니나칸시에서도 똑같은 사태가 빚어졌다. 지진으로 고르키가의 제9국민학교에서는 눈깜짝할 동안에 50명의 어린 학생들이 건물 잔해에 깔려 숨졌다. 약 250명의 사람들이 붕괴된 레니나칸컴퓨터센터에 갇혔다. 아르메니아 지진연구소도 주저앉으면서 내부에 있던 값비싼 장비들이 파괴됐다. 수세기 전에 지어진 한 성당은 오직 돔만 건재한 채 자갈과 콘크리트 무더기로 변했다.

 생존자들은 넋을 잃은 채 거리를 배회했다. 어떤 이들은 축축한 12월의 냉기를 피해 코트와 담요를 뒤집어 쓴 채 모닥불 주변으로 모였다.

어떤 사람들은 친척들을 찾기 위해 뒤틀린 철근과 콘크리트의 언덕을 맨손으로 파헤쳤다. 한 남자는 흐느끼며 절규했다.  이곳 어딘가에 내 동생이 묻혀 있습니다. 공장의 감독으로 일하고 있었죠. 잠시 쉬는 동안에 여기 집에 와 있었어요. 아이들도 이곳에 있어요...오, 정말 슬픕니다.  건물 밑에 파묻힌 사람들로부터 구조를 요청하는 희미한 소리들이 잔해 사이로 계속 새어나왔다.

 우연히 죽음으로부터 벗어난 사람들도 있었다. 제냐 사키안은 사무실에서 근무중이었다.  갑자기 모든 게 내려앉았어요. 아마 의식을 잃었던가 봅니다. 숨쉴 수가 없었거든요.  하고 그녀는 전했다. 제냐의 몸은 반지 낀 한쪽 손만 빼놓고는 완전히 묻혀 버렸다. 낯익은 어머니의 반지를 발견한 아들이 그녀를 발굴하여 구출해냈다. 다른 사람들은 이처럼 운이 좋지 못했다. 자원구조대원들은 돌덩이 사이를 헤쳐 나가는 한편, 발굴된 시체들을 길바닥에 줄지어 놓고 신원확인 및 매장을 위한 조치를 취했다.

 레니나칸시의 피해지역을 시찰하던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자기 주위에 떼지어 몰린 군중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온 러시아 국민들이 당신들과 슬픔을 같이 합니다.  그는 생존자들을 위한 구호활동과 아직 건물 잔해 속에 갇혀 있는 희생자들에 대한 구조 활동을 즉시 시행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한편, 일련의 여진이 이어져 피해 지역은 계속 흔들렸다.

 대규모의 구호 활동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구조 작업이 한 시간 지체될 때마다 매몰된 사람 1000명당 20명씩의 인명이 추가로 사망한다고 한 보건부 관리는 단언했다. 그러나 병원의 병상과 의약품, 텐트와 담요, 발굴작업에 필요한 건설 장비 등 긴요한 응급 설비들이 특히 부족했다.

 업친 데 덮친 격으로, 형평없는 조직관리능력 때문에 구조 대책은 절뚝거렸다. 무엇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았다.

시간이 시시각각 흘러가고 있다. 인명도 사라지고 있다  하고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는 경고했다. 한 공산당 관리는 식량 수송이 지체되고 있음을 개탄하기도 했다.

 재해 지역에 접근하는 것조차도 만만치 않았다. 아르메니아가 산악지방인데다가, 이나라를 드나들 수 있는 도로의 대부분이 산사태로 봉쇄돼 있었다. 북쪽의 이웃 공화국인 그루지야와 연결된 주요 간선 철로도 이미 끊겨 있었다.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공항은 가동중이긴 했으나, 12월의 안개가 심했기 때문에 구호 항공기들이 도착하기 시작하면서 큰 혼란이 일어났다. 구소련군 소속의 수송기 한 대가 착륙하면서 지상에 충돌하는 바람에 탑승자 79명이 전원이 사망했다. 유고슬라비아에서 의약품을 싣고 두번째로 출발한 비행기도 추락하여 승무원들이 사망했다. 그러나 이런 난관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각지에서 도움의 손길이 쇄도했다. 모스크바 시민들은 식량, 옷가지, 담요, 그리고 혈액을 기증했다. 구소련군은 6500명의 병력과 불도저를 동원하여 발굴작업을 도왔다. 모스크바와 그루지야공화국, 우크라이나 공화국 등에서 모두 25개 여단소속의 군의관들이 의료품을 갖추고 도착했다.

 서방 세계로부터도 대규모 구호 자원이 유입됐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처음으로 소련은 미국의 원조를 받아들였다. 구조 장비와 보급품을 가득 실은 미국 정부 소속의 수송기 8대가 아르메니아를 향해 출발했으며, 이어 일반 자선단체들의 구호품을 실은 십여 대 이상의 항공기가 그 뒤를 따랐다. 미국 시민들이 제공한 구호기금의 총액은 1450만 달러에 달했다.

 이와 함께 모두 67개국에서 구호기금, 보급품, 연인원 2000명의 구조 인력을 제공했다. 프랑스는 잔해 밑의 생존자 냄새를 맡아 찾아내도록 훈련된 35마리의 개와 함께, 160명으로 구성된 소방대를 급파했다. 영국 구조대 일행은 초음파 감청기와 섬유광학 카메라를 가지고 왔다. 일본은 구호기금으로 900만 달러를 기부했다. 서독은 16대의 기중기를 제공했고, 이탈리아는 조립식 난민주택을 세워 주겠다고 자청했다.

 구호요원들이 임무에 착수했을 때, 기온이 뚝 떨어졌고 얼음처럼 차가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한 자원구조대원은 레니나칸의 학교 교실에서 48구의 시체 발굴 작업을 도왔으나 생존자는 단 한 명밖에 찾아내지 못했다. 지렛대로 돌덩어리를 들어올려서 구조해낸 희생자가 예레반 시내의 병원으로 후송하는 도중 죽어버리고만 경우도 있었다. 건물 잔해 밑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는 날이 갈수록 작아지다 마침내는 사라지곤 했다.

 최초의 지진 충격이 있은 지 1주일 후에는 폐허가 된 레니나칸에서는 부상자 20명, 스피타크에서는 1명이 추가로 구조됐을 뿐이다.

이후에도 몇 주일 동안은 다른 기적적인 구출 이야기들이 계속 돌았지만, 모두 근거 없는 헛소문으로 드러났다.

 공식 집계에 따르면 거의 2만 5000구의 시체가 수습되었다. 그러나 정확한 사망자 수는 앞으로도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약 1만 5000명의 희생자들이 기적적으로 구조되었고, 이재민은 무려 50만명에 달했다. 한 반백의 노인이 너덜너덜한 겨울 코트를 걸친 채 지진이

일어났던 지역에서 예레반에 도착했다. 그는 지금도 믿을 수 없는 충격에 머리를 흔들며 이렇게 말했다.  그곳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는 게없습니다. 아무 것도 없어요. 전부 다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