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오스호의 악령


















자연의 변덕에 의해 엄청난 희생을 치른 카메룬

 소리도 없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 괴물은 아마도 카메룬이 서방국가의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난 마침내 독립했던 1961년보다 1000년쯤 앞선 때부터, 이 신생공화국의 수도인 야운데시 북방 320km 지점, 너비 1.6km의 니오스호의 183m 깊이의 물 속에서 자라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 괴물이 탄생한 정확한 시기를 아는 사람은 없다. 이 괴물은 18세기와 19세기 초엽, 즉 노예대열을 무자비하게 몰아치며 바다를 향해 발길을 재촉하던 아랍 상인들이 강둑을 따라 행진하다가, 이따금씩 멈추어서 무리 중에 죽은 자와 병든 자를 호수에 악어와 독수리의 먹이감으로 던져 넣곤 하던, 잔인한 시대에도 이 호수 밑바닥에 존재했을 것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 이 괴물은 꼬마 증기 기관차들이 시속 16km의 속도로 헐떡거리며 오지를 힘겹게 달리곤 했던 20세기초에도 여전히 성장하고 있었다. 열차가 출발하기 위해서 역장이 가죽 채찍으로 원주민들을 철로에서 내쫓아야만 하던 시절이었다. 좀더 최근에는 마을의 할아버지들이 손자들을 니오스 호숫가에 데리고 나와, 그 옛날 응가운데레왕이 새벽부터 저녁까지 100개 악기로 편성된 악단을 지휘한 이야기, 또 가루아라는 형리가 참수된 사람에게서 떼낸 마른 살덩러리를 작은 주머니에 넣어 목에 두르고 다녔다는 이야기 등을 해 주었다.

 화산호인 니오스호의 주변 비탈은 농사에 적합하였고 호수 주위 계곡의 많은 작은 마을에서는 목동과 농부들이 무리지어 살고 있었다.

1986년 8월 21일 밤 9시경, 호수 부근에서 우르릉 거리는 굉음이 울렸을 때 부지런한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이미 잠자리에 들었거나 늦은 저녁식사를 끝내고 있던 참이었다.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카메룬과 나이지리아 국경을 따라 줄지어서 있는 사화산의 능선 부근에서는 8월에 가장 비가 많이 오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나서 눈깜짝할 순간에 17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어 버린 것이다. 죽음의 사신이 왔는가? 범인은 바로 엄청난 양의 눈에 보이지 않은 기포성 이산화탄소였다. 호수 밑바닥의 퇴적물과 엄청난 수압에 갇혀 있던 이 괴물이 마침내 풀려났던 것이다. 푸른 수면위로 떠오른 거품을 들이마신 호반의 모든 숨쉬는 생명체가 목숨을 잃었다. 공기보다 밀도가 높은 직경 1.6km의 가스 구름은 이제 인근 계곡을 향해 서서히 내려가 거기서 대학살을 자행했다. 사람, 소, 새, 심지어는 개미까지도 거의 순간적으로 질식사했다.

 카메룬 당국도 이 비극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관리들이 사태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들은 것은 이름을 알 수 없는 움마을 출신의 한 공무원을 통해서였다. 그는 자기집에서 32km 떨어져 있는 니오스호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하던 중, 길에 누워 있는 죽은 영양을 발견했다. 정말 운좋은 횡재였다. 그러나 잠시 후 도로를 따라 도처에 큰댓자로 누워 있는 시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그는 그만 공포에 질려버렸다. 그는 눈앞의 광경에 부들부들 떨며, 가던 길을 되돌아서 줄행랑쳤다. 그러나 그의 말은 입에서 입을 통해 바멘다의 읍사무소까지 전달됐고, 그곳의 관리인 기드온 타카는 곧 진상을 파악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살인적인 구름의 공격이 있은지 만 이틀 후에 니오스호 지역에 도착한 타카는 눈앞에 펼쳐져 있는 광경을 믿기 어려웠다. 타카는 나중에 이렇게 보고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어 있었고,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사람들은 피를 쏟으며 고통스럽게 기침을 하고 있었습니다. 도로 위에도 많은 시체가 널려 있었습니다. 아마 그들은 도망치면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차마을의 농부인 프란시스 팡은 기자에게 말했다.  아내가 피를 토하면서 쓰러졌습니다. 저는 딸들을 끌어앉고 병원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습니다. 길가에 시체가 너무 많아서 밟고 지나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 다른 마을 니오스에서는 1300명의 주민 가운데 4명만이 목숨을 건졌다. 베로니카 그므비라는 나이 어린 어머니는 품에 안고 있던 갓난 아기를 포함하여 모두 5명의 자식을 잃었다. 근처의 수뭄 마을에서 허겁지겁 달려온 종기 종은 그의 형과 형수를 한 무덤에 묻고, 그 옆의 무덤에 형의 일곱 자녀를 묻었다. 네덜란드 출신의 프레드 텐호른 신부는  푸르고 싱그러운 초목의 잎과 그 아래 널려 있는 시체들이 으스스한 광경을 빚어냈으며 주변 환경은 하나도 손대지 않는 채 사람만을 모조리 죽여버린 것이 마치 중성자 폭탄이 터진 것 같았다고생각했다.

 세계 각국의 의료품과 식량이 카메룬에 도착했고 과학자들도 이 재앙을 연구하기 위해 이 나라로 날아왔다. 프랑스의 화산학자인 프랑소아 르구엥은 이번 니오스호의 대학살을  사상 최악의 화산폭발 가스 재해 라고 규정했다. 그는 이 폭발을 땅속 깊은 곳에서 비롯된 화산 활동의 결과로 여겼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지진이나 산사태 호수 밑바닥에 축적돼 있던 무시무시한 독가스가 방출되어 일어난 재해로 생각했다.

 한편 슬픔에 잠겨 있는 죽은 사람들의 친지들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생존자들도 자기들 나름대로 이번 재앙의 원인을 설명했다. 일부 주민들은 3년 전, 그들의 족장이 임종하면서 자기 소 중 가장 멋지고 살찐 놈을 골라 절벽에서 니오스호로 떨어뜨리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있음을 기억했다. 이 호수에 죽은 사람들의 혼령이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가족들은 그의 유언을 묵살해서 그 추장이 복수를 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또 카메룬에서 호수와 강의 여신으로 알려진  물의 어머니 가 분노하여 호숫물이 폭발했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는 무엇이 니오스 호숫물을 휘저어서 고요한 호수를 죽음의 호수로 바꿔놓았는지 결코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