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바도델루이스 화산의 분노


















   굉음과 함께 되살아난 콜롬비아 최대의 화산이 눈이 녹은 물과 진흙으로 뒤범벅된 파도를 일으키며 치명적 사태를 초래했다.

 콜롬비아 최고의 휴화산, 네바도델루이스화산이 다시 폭발할 것이란 첫 경고가 나온 것은 1984년말부터였다. 이 산을 등반했던 산악인들이 가벼운 진동을 느끼고 눈덮인 산정에서 유황가스가 피어올라 큰 새털구름을 이룬다고 신고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환태평양화산대에 들어 있는 네바도델루이스화산은 1595년 이래 대규모로 폭발한 적은 없었다. 그때 이 휴화산은 갑자기 폭발하면서 넓은 지역을 초토로 만들어 버렸다. 좀더 규모가 작은 1845년의 폭발 때는 계곡으로 흘러내린 진흙 사태가 일대를 휩쓸어 줄잡아 1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이 화산이 거의 400년 정도의 단속적 휴면기를 지난 후 또다시 꿈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보고타 북서쪽 128km에 위치한, 5436m 높이의 이 산 정상은 1985년 봄철부터 여름까지 내내 진동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9월 11일 네바도델루이스는 갑자기 증기와 바위, 재 등이 섞인 분출물울 뱉아냈다. 이 소규모의 분출로 화산의 북쪽 측면 24km에 걸쳐 진흙 사태가 나고, 안데스산맥의 이 산이 큰 재앙을 가져올지 모른다는 우려가 한층 커졌다.

 9월 하순에 콜롬비아 광산지질연구소는 네바도델루이스산기슭에 있는 모든 마을 사람들을 대피시킬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콜롬비아 정부 당국은 이 충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10월 7일, 이 연구소는 네바도델루이스 주변에 대재앙이 임박했다고 경고하면서 특별히 위험성이 높은 두 지역을 지적했다. 한 곳은 라구닐라강의 계곡에 위치한 아르메로읍으로 화산 동쪽 48km 떨어져 있었고, 다른 한 곳은 산 정상의 서쪽에 위치한 친치냐 마을이었다.

 이 당시에 마련된  화산 피해 예상 지도 를 보면, 네바도델루이스화산이 폭발할 경우 진흙사태가 일어날 만한 지역이 정확히 표시되어 있었다. 그 지도의 초안이 이미 10월 중순경 마련 됐는데도 11월 8일에야 비로소 정부 당국자들에 배포됐다. 10월 22일, 콜롬비아를 방문중이던 이탈리아 화산학자 일행은 콜롬비아정부에 당장 라구닐라강 계곡의 주민 보호대책에 착수하라고 촉구했다.  네바도델루이스가 아직 활동을 끝내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앞으로 최악의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 하고 이탈리아 학자들은 경고했다.

 11월 13일 오후 3시간 조금 지난 시각에 갑작스런 증기의 폭발을 시작으로 하여 20세기 최대의 화산폭발이 시작됐다. 이 사태는 파괴력에 있어서 1902년 마르티니크섬의 플레산에서 발생했던 화산폭발과 맞먹는 규모의 재앙이었다.

 저녁 7시 30분경, 과학자들은 네바도델루이스 지역의 화산활동이 멈추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제 대규모 폭발이 임박했다는 심증을 굳혔다.

정부는 그제서야 대피 경고를 발표하는 게 좋겠다는 권고를 받았다. 이런 경고가 아르메로까지 전달됐는지의 여부는 지금도 논란거리로 남아있다. 그러나 정부의 경고가 전달됐다 해도 아르메로 주민들 중 그에 따라 행동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저녁 9시 8분, 굉장한 폭발음이 연속해서 두번 울렸다. 그후 30분 동안, 증기와 재의 기둥이 11km나 치솟았다. 당시 7320m의 고도를 유지하며 운항 중이던 마이애미발 보고타행 DC--8 제트화물기가 이 화산 폭발에 휩싸였다.  처음엔 붉은 조명탄을 쏘아 올린 것 같았어요. 다음엔 재가 비오듯 쏟아져서 앞을 볼 수 없었습니다. 조종석에는 연기와 열, 유황 냄새가 가득 찼습니다.  조종사가 나중에 한 보고였다. 한편 수킬로미터 밑의 지상에서는 심상치 않은 유황의 악취가 라구닐라계곡에 들어차기 시작했다.

 네바도델루이스화산의 폭발은 용암의 대량 분출을 동반하지 않았다. 대신, 화산 내부에 있던 고열의 마그마(암장)가 산 정상을 덮고 있는 엄청난 양의 얼음을 녹여 산기슭을 따라 여러 갈래 방향으로 오염된 물이 흘러 내렸고, 그것은 화산 분출물과 비에 젖은 흙과 섞여 점점 엄청나게 불어나면서 쏜살같이 질주하는 이류, 즉 진흙의 홍수를 이루었다.

 최고 시속 48km의 속도로 흐르면서 두께가 15m까지 늘어난 진흙 사태는 화산 아래로 쏟아져 내려 산기슭에서 흘러나오는 강물에 합류했다.

부글부글 끓는 끈적끈적한 이 이류 중 두 갈래가 아르메로읍 바로 위에서 라구닐라강에 합류했다. 이미 3일간의 호우로 강물이 불은데다, 9월부터 시작된 화산 폭발의 잔해로 진로가 막힌 라구닐라강은 이제 둑 위로 터져 넘치면서 무방비 상태의 아르메로읍을 향해 꺼리낌 없이 쇄도했다. 밤 11시경, 맹렬한 급류는 음산한 소리를 내며 이 마을에 밀려 들어갔다.

 침대에서 잠에 빠져 있던 아르메로 사람들 대부분은 몇분만에 생매장됐다. 집들은 순식간에 이류 속으로 파묻혔다. 진흙의 급류는 전체 건물 중 80퍼센트를 집어삼키고 전체 2만 5000명의 주민 가운데 90퍼센트의 목숨을 앗아가면서, 이 마을을 파괴했다. 지반이 무너지는 삐걱거리는 소리, 또는 공포에 질린 이웃 사람의 울부짖는 소리에 잠이 깬 운좋은 사람들은 이 죽음의 파도가 밀어닥치기 전에 탈출했다.

재로 오염된 밤하늘 아내 가족들은 진흙의 급류에 휩싸여 뿔뿔이 흩어졌다. 파도의 꼭대기에 올라타는 바람에 안전한 곳으로 내팽겨쳐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파도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옷이 찢기고 뼈가 부러졌다. 희생자들은 벽에 세게 부딪히거나 자동차 밑에 깔려 압사했다.

 모든 상황은 몇분만에 끝났다. 아르메로읍은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친치냐마을과 그 외곽에서는 약 1000명의 주민이 진흙에 묻혀 목숨을 잃었다. 이 지역 전체에서 발생한 총 사망자수는 2만 5000명을 웃돌았다. 수천명이 집을 잃었으며, 모든 생존자들이 시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이 비극적인 소식이 퍼지자 전세계가 콜롬비아 구호를 위해 합심했지만 커다란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생존자들에 대한 발굴 작업과 죽은 이들에 대한 애도가 계속되는 와중에 콜롬비아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태의 위험성을 제때에 경고하지 못하고 구조작업에서도 형편없는

관리능력을 드러낸 정부를 향한 격렬한 비난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네바도델루이스화산의 재폭발은 결코 끝난 것이 아니었다. 1986년 6월 또다시 화산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소리가 나자마자 산기슭 지역의 주민들은 대거 대피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88년 3월 네바도델루이스화산은 또 한번 재를 내뿜기 시작했다. 산정상을 덮고 있는 눈 가운데 1985년의 화산폭발 때 녹은 양은 10퍼센트에 불과했기 때문에, 진흙 사태의 위험성은 아직도 화산의 그늘에서 살고 있는 이곳 주민들에게 떠나지 않고 있었다. 아마 미국 워싱턴주에 있는 세인트헬렌스산 정도나 예외가 될까, 서반구에 있는 어떤 다른 산도 이 네바도델루이스화산만큼 큰 걱정 속에 관찰되고 있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