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시티의 대지진


















   기적 같은 구조활동이 산산조각난 대도시에 희망의 불을 밝히다

 최초의 진동이 발생했을 때, 아벨 토레스 차베스는 멕시코시티 중심에 있는 6층짜리 공업전문대 건물에서 수학 강의를 듣고 있었다. 몇초 후, 강의실이 흔들리자 학생들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버둥거렸다. 토레스 차베스는 비틀거리며 가장 가까운 벽을 향해 걸어가, 손을 뻗쳐 제몸을 지탱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내 공업전문대는 건물이 지진의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주저앉는 바람에 이내 암흑 속에 처박혔다.

1985년 9월 19일, 목요일 아침 7시 20분경의 일이었다.

 마리아 이자벨 쉐라톤 호텔 10층에 투숙했던 미국인 사업가 레이 코널리는 빌딩이 앞뒤로 흔들릴 때 자기 방의 벽에 매달렸다. 이게 한쪽으로 쭉 넘어가는 겁니다.  이제 다 끝났다. 이젠 죽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다음엔 또 반대 방향으로 쭉 쏠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박살나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코널리가 묘사하는 당시 상황이었다.

 도심 부근의 난잡한 슬럼 지대 테피토는 사라졌다. 아도비 벽돌로 지은 그 셋집들은 지진으로 폭싹 내려 앉았다.

 리히터 지진계로 진도 8.1을 기록하며 멕시코시티를 뒤흔든 이 대지진은 태평양 연안에서 서쪽으로 354km 떨어진 해안선의 지하 19km에 위치한 지각의 균열로 일어났다. 사방으로 물결치듯 퍼져 나간 지진파는 약 2분 후 멕시코시티에 도달하여 거의 1분 동안 2초 간격으로 이 도시를 강타했다. 그것은 폭발력이 절정에 이른 지진이 지속되는 수명치고는 이례적으로 긴 시간이었다. 멕시코시티의 도심 지역이 가장 피해가 컸다. 왜냐하면 이 지역이 옛 호수의 밑바닥 위에 건설됐는데, 그 두꺼운 퇴적층이 지진의 충격을 증폭시키는 작용을 했기 때문이다.

 진동이 멈추었을 때, 한동안은 고요했다. 먼지와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부서진 가스관으로부터 화염이 분출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부서진 가스관으로부터 화염이 분출하고 있었다. 이어 사이렌 소리와 비명과 잔재 더미 밑에서 구원을 청하는 희미한 소리가 허공을 채우기 시작했다. 1800만의 인구가 고도로 밀집돼 있는 이 거대도시의 시민들은 원래 지진에 익숙해 있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번 지진을 잘 견뎌냈다. 사실, 도시의 상당 부분이 피해를 입지 않았고, 피해가 컸던 시내에서도 파괴된 지역은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었다. 마리아 이자벨 쉐라톤 호텔도 크게 흔들렸음에도 불구하고 똑바로 서 있었다. 이 도시의 초고층 건물들은 물론이고, 수백년 전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건물들도 그대로 서 있었다. 지하철 승객 수십만명도 아무 탈없이 지상으로 올라왔다. 약 100만 동에 달하는 멕시코시티 전체의 건물 중에서 500동이 전파 되었고 3300동이 피해를 입었다. 비율로 치면 1퍼센트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무너진 건물들에서 발생한 피해는 엄청났다. 12층짜리 후아레스병원 건물은 붕괴될 당시 무려 1000명의 환자와 직원들이 그 안에 있었다. 그 가운데 목숨을 건진 사람은 극소수였다. 멕시코시티 시립종합병원의 산부인과 병동의 파괴로 277명의 산모와 신생아, 직원들이 생명을 잃었다.

누에보 레온 아파트의 3개 동중 2개가 무너지는 바람에 모두 2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순식간에, 9000명 이상이 죽었고 3만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9만 5000명이 집을 잃은 셈이다.

 소방대와 구조대가 도착하기도 전에 자원구조요원들이 경찰의 지휘를 받아, 발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정오경, 구조대원들은 붕괴된 건물 주변에서 수백 명의 생존자들을 대피시키는 한편, 그보다 수백명이 더 되는 사망자들의 시체를 꺼내 보도 위에 줄지어 놓았다.  첫째날에는 구조를 요청하는 소리가 정말 최악이었습니다. 부서진 돌조각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크레인도 기계삽도 없었고 가진 거라곤 곡괭이, 삼, 집게뿐이었습니다 하고 어느 자원구조대원은 당시를 회상했다. 건물 더미 주변에 모여든 군중들은 오열하며 친척과 친구들이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다렸다.

 앞서 언급한 아벨 토레스 차베스가 공부하던 학교에서는 수학교수와 차베스를 포함한 13명의 학생들만이 아직 목숨이 붙어 있었다.

차베스는 언덕처럼 쌓인 콘크리트 슬래브 잔해 밑 깊숙한 곳에 갇혀 있었다. 그의 옆에 살아남은 학생이 하나 더 있었다. 이 두 학생은 처음에는 사기를 잃지 않기 위해 서로 농담을 주고 받았으나 구출될 희망이 점점 희박해지자 이내 침묵 속으로 빠져 들었다. 멀리서 헬리콥터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어디선가 구조대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진이 발생한 지 하루가 지났지만 도시 여기저기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건물 잔해 밑에는 여전히 수백 명의 다른 희생자들이 갇혀 있는 상황이었다. 사고가 난 목요일 밤부터 금요일까지 구조대원들은 불철주야 쉬지 않고 구조작업을 감행했다. 처음에는 쉽게 눈에 띄는 생존자들을 정신 없이 구조했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었던 층을 골라 그 밑에 깊숙이 갇힌 생존자들을 찾아 한 걸음씩 전진하는 끈질긴 발굴작업을 벌이는 식으로 작업 속도를 조절했다. 동력 절단기, 착암용 드릴, 기타 중장비들이 동원되었지만, 작업 자체는 움직이는 잔해 속의 생존자들이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고도의 정밀성이 요구됐다. 어떤 곳에서는 합선과 가스 누출의 위험성 때문에 불가피하게 나무 망치나 기타 스파크를 일으키지 않는 도구를 사용해야 했다. 구조대원들은 산 사람이 있음을 증명하는 희미한 소리라도 들을 수 있도록 이따금씩 장비의 스위치를 끄고  조용히! 하고 고함치기도 했다. 유럽과 미국으로부터 특수 감청기, 열탐지기, 구조훈련을 받은 특수견 등을

갖춘 전문 구조팀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임시로 옥외에 가설된 시체 안치소에는 공포에 질려 사랑하는 이들을 찾아 헤매는 생존자의 물결이 쇄도했다. 아벨 토레스 차베스가 갇힌 빌딩의 바깥에서는, 한 여인이 눈물을 가득 머금은 채 24시간이 넘도록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시누이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렸다. 누에보 레온 복합주택단지에서는 오빠의 결혼 사진을 흔들면서, 그를 본 사람이 없는지 묻고 다니는 한 여인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한 공공게시판에는 다음과 같은 절박한 호소문이 붙기도 했다.  나의 아이들 아누아르, 아니줄, 다니엘라와 아론드라를 찾습니다. 이 아이들은 누에보 빌딩 참사 때 행방불명되었습니다.

 금요일 오후, 마침내 구조대원들은 가까스로 토레스 차베스의 교수와 11명의 동료 학생들을 찾아내어 밖으로 끄집어 냈다. 한 사람만 빼고는 아무도 부상을 입지 않았다. 이 생존자들이 알려준 정보에 힘입어 구조대는 아직 갇혀 있는 나머지 두 학생들에 대한 구출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오후 7시 38분, 리히터 지진계로 진도 7.3을 기록한 여진이 멕시코시티를 뒤흔들었다. 사람들은 또다시 공포에 질렸고 몇몇 손상된 빌딩들이 흔들렸다. 그러나 새로운 피해는 없었다. 사람들은 가족들을 거리로 피신시켰고, 구조대원들은 뒤로 물러섰다. 적막 속에서 토레스 차베스는 구조대원들이 다시 올거라고 되뇌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른 잠시 후, 무언가 긁히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곧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구조대원들은 그에게 몇개의 오렌지와 손전등, 워키토키를 넣어주었고 토요일 아침에는 그의 옆에 있던 학생을 구조했다. 이어 구조대원들은 위치상으로 다른 각도에서 접근할 수밖에 없었던 차베스를 구출하기 위해 발굴 작업을 재개했다.

 이 학생의 구출 터널을 뚫은 발굴 작업자 가운데 그런 작업에 이상적인 체격 조건을 갖춘 마코스 에프랜 자리냐나가 있었다. 지진이 발생한 후 며칠 동안 그는 숱한 인명을 구조했다. 토요일 오후, 부서진 레지스호텔에서 작업중이던 그는 구조작업을 위해 시체라도 주저없이 절단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한다는 어느 경찰관의 소리를 들었다.

 자리냐나는 이 임무를 맡기로 자원하여 마지막 생존 학생인 차베스가 있는 공업전문대학으로 파견됐다. 직경 30cm까지 폭이 좁아진 터널 끝에서 자리냐나는 뒤틀린 배관설비와 콘크리트 더미가 죽은 학생의 다리를 뭉갠 채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도관을 절단하는 것이 앞으로 전진하는데 최선의 방법이라고 판단한 자리냐나는 차베스를 큰 소리로 불러 사기를 북돋아 준 다음에 조금씩 되돌아 나왔다.

 일요일 아침 9시 드디어 토페스 차베스가 있는 곳에 도달했다. 그는 차베스의 어깨를 한 팔로 감쌌다. 자리냐나의 목소리가 워키토키를 통해 바깥으로 들렸다.  지금 아벨을 안고 있어요.  두 시간 후, 마침내 바깥으로 구출돼 나온 차베스의 눈을 햇빛의 충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머리 위에 담요가 쒸워졌다. 군중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리냐나에게 몰려들어 자기 자식들을 구출해달라고 애원했다.

 주말이 가까워짐에 따라, 중장비를 동원하여 정리 작업을 시작했으나 아직도 일부 건물에서는 구조 작업이 계속되고 있었다. 후각을 통해 생존자를 찾아내는 훈련된 개들도 구조작업에 투입되었다. 프랑스에서 파견된 구조팀은 초음파장비를 이용해 무려 35명의 생존자를 찾아냈다. 도시가 정적에 싸인 밤에도 구조대원들은 잔해 속에서 나오는 어떤 소리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귀기울이며 조용히 대기했다.

 일요일 밤, 노동사회부 빌딩 자리에 산처럼 쌓인 잔해 꼭대기 근처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너진 4층 건물 밑에 나흘 동안 갇혀 있던 루베인 베라 로드리게스가 혼자힘으로 천천히 표면까지 뚫고 올라온 것이다. 그는 한 시간 후에 구출됐다.

 월요일 아침에는 후아레스병원의 잔해에서 이 병원의 인턴인 후안 호세 헤르난데스 크루스가 발굴작업대에 구조되었다. 다음날 멕시코시티 종합병원의 건물 더미에서 콘크리트 기둥 밑에 깔려 있던 마취전문의 마사 토레스 그라닐로가 회저병(신체 조직의 일부분이 생활력을 잃고 그 기능이 소멸되는 병)에 걸린 다리 하나를 절단한 후 구조됐다. 멕시코시티의 피해 지역에서 도합 4000명 이상의 생명이 구조됐으나 가장 놀랄 만한 구출담은 단연 막판에 연출되었다.

 멕시코시티 종합병원이 무너진 자리에서 한 아기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 지진에 의해 파묻힌 지 거의 1주일 지났는데도 아직 살아 있었던 것이다.

 9월 25일 수요일 이른 아침, 멕시코시티 종합병원의 산부인과 병동이 있던 자리에서 크리산타 누네즈 오테이가라는 여인이 분만한 아직 이름도 없는 딸이 구출됐다. 그러나 산모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후 며칠 동안, 살아 있는 여러 명의 신생아들이 잔해에서 추가로 구출되었다. 이 아기들이 구조되고 있을 때, 멕시코 정부의 관리들은 도시재건 계획을 놓고 씨름해야 했다. 국제 사회는 멕시코시티를 돕기 위해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이미 경제적 위기에 처해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는 이 나라에게 이번 지진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극복해야 할 또 하나의 두려움을 보태 주었다.

    내진 빌딩

 멕시코시티에서 1985년에 발생한 대지진 당신, 애초 지진에 잘 견디도록 설계된 많은 빌딩들이 이 도시의 심토(표피 하층의 토양)가 안고 있는 진동성과 빌딩 자체의 설계상의 일부 특징이 어우러져 파괴됐다. 이번 재해를 조사한 공학자들에 의하면 L자형 건물과 기타 비대칭적 모양의 구조물들이 더 큰 피해를 입었다.(아래층에 주차장이나 로비 공간을 갖춘 건물도 마찬가지였다.) 예컨대, L 자형의 대형 건물에서는 두 날개의 이음새 부분에 압력이 집중되면서 건물이 산산히 와해되는 것이다.

 모든 건물에는 기본 진동폭(건물에 측면 충격이 가해 졌을 때 좌우로 한번 흔들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라는 것이 있다. 5개층에서 20개층 사이의 빌딩은 대략 2초의 진동폭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지진 충격파의 간격과 일치하는 수치다. 이런 건물들이 땅의 움직임을 엄청나게 증폭시켰기 때문에 도시 건물 다수가 허무하게 부서져 내려앉았다. 반면, 37층짜리 라틴아메리카타워 빌딩 같은 초고층 건물들은 가장 강력한 지진파도 능가하는 진동폭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번 지진에도 멀쩡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멕시코시티의 건축가들은 내진 설계시, 세계 최고 수준의 건축 규범을 준수해야만 할 것이다. 그 많은 빌딩들의 붕괴 원인은 전세계공학자들과 건축가들에게 아직도 관심사요, 연구 과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