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대평원을 휩쓴 불의 지옥


















   통제를 벗어난 산불, 오스트리아 남동부를 휩쓸다

 이 산불은 그보다 약 10년 전인 1974년 12월에 태풍 트레이시호가 다윈시를 초토화시킨 이래, 오스트레일리아 사상 최악의 자연 재해였다.

또 1939년 1월 13일에 일어났던,  불길한 금요일 의 대화재 이래 이 나라에서 발생한 산불 중 최악의 사태였다. 1983년 2월 16일, 돌풍에 실린 산불이 수천 평방 킬로미터에 달하는 오스트레일리아 남동부 지방을 휩쓸고 지나가면서 빅토리아주와 남오스트레일리아 남동부 지방을 휩쓸고 지나가면서 빅토리아주와 남오스트레일리아주를 황폐화 시켰다.

 이 비극은 사실 그해 여름 내내 그 싹이 자라 왔었다. 혹심한 가뭄이 계속돼 많은 저수지와 호수들이 거의 말라 있었고, 강줄기들은 정상치의 20퍼센트 이하로 수량이 떨어져 있었다. 유칼립투스와 관목이 무성한 숲속에서는, 폭염에 가뭄이 겹쳐 수천톤에 달하는 낙엽과 목초가 이미 발화점에 도달해 있었다. 남오스트레일리아주와 빅토리아주 당국은 이번  재의 수요일  이전의 거의 한달 동안 산불방생 가능성을  매우 높음  내지는  극도로 위험함 으로 평가했고, 수 차례에 걸쳐 당국의 허가 없이 야외에서 불을 피우는 것을 금지하는 포고령을 발표했다. 어느 소방 관리는 오스트레일리아 남동부 지방이 이때  터지기 직전의 소이탄 같은 상태  였다고 말했다.  재의 수요일 아침, 돌연 화끈거리는 바람이 시속 112km의 속도로 내륙의 사막에서 불어왔다. 이 바람이 동반한 거대한 먼지구름 때문에 시야가 막히고 호흡이 곤란했다. 오후 1시경, 일부 지역에서 온도가 약 섭씨 43도까지 치솟았고, 습도는 10퍼센트 밑으로 떨어졌다. 공식적 기상 보고에는 산불이 번지기에  최적의 기상 조건 이라고 기술돼 있다.

 오전 11시 30분경, 애들에이드 외곽에서 최초의 산불이 발생 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그 고장의 의용소방대가 초기 단계에 있는 여러 군데의 산불을 진압했지만 오후 중반 무렵에는 통제할 수 없는 20여 개의 거대한 불길이 둘레 1000km 정도의 원형을 이루며 타오르고 있었다. 화재 지역은 애들레이드 구릉지대를 지나 남오스트레일리아주와 빅토리아주의 해변지역을 가로질러 멜버른 동쪽에 위치한 단데농 구릉지대까지 미치고 있었다. 조사 결과 다음 두 가지 요인이 이번 산불사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나는 방화고, 또 하나는 바람이 맹렬하게 부는 상황에서 전선줄이 나무에 부딪혀 끊어진 경우다. 그러나 원인이 무엇이든 산불이 일단 진행되면, 불을 잡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관목숲에는 자잘한 덤불이 엄청나게 많은데다가, 유칼립투스나무가 널리 분포돼 있었던 것이다. 유칼립투스 잎사귀에 함유된 기름은 온도가 높아지면 인화성 가스로 분해되고, 결국 나무는 폭발한다. 나무 꼭대기에서 꼭대기로 훌쩍훌쩍 건너 뛰며 번지는 화염은 빠른 속도로 유칼립투스 지대를 일소하고, 거의 모든 진화작업을 쓸데 없는 짓으로 만든다.

 연인원 2만명의 의용소방대원과 1200명의 산림보호요원이 800대의 소방차와 장갑차의 지원을 받아 진화작전에 동원되었다. 나무를 꺾어 방화대를 구축하는 작업에는 약 200대의 불도저와 굴착기가 배치되었다. 항공기를 이용한 감시요원들도 바람과 연기 때문에 더이상 작업이 불가능할 때까지 지상의 진화작업에 협조했다. 나중에 한 소방대 지휘관이 말했듯이, 산불이 통제를 벗어나면  1000대의 소방차와 1만명의 소방대원이 있어도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다. 불은 이제 무서운 세력으로 변해 스스로 바람과 기후 조건을 조성해간다. 스스로의 정신을 가진 악마가 돼버리는 것이다.

 수천명의 주민들은 탈출했다. 의용소방대원이면서 애들레이드 라디오 방송국의 리포터로 일하는 머리 니콜은 애들레이드 언덕의 자기집 근처에서 대피 차량의 교통소통을 돕고 있었는데, 갑자기 공기가 재와 연기로 가득 차고 불길한 붉은 색조가 서쪽 하늘을 물들였다. 불의 접근 속도에 놀란 니콜은 20여명의 소방대원, 부녀자와 아이들과 같이 근처 농가의 뒷벽으로 대피했다. 동료 소방대원이 아이들에게 물을 뿌려 주는 동안, 니콜은 방송국 뉴스룸에서 가지고 나온 송수신 겸용 무전기를 찾았다. 그는 이 방송을 통해 당시 상황을 생생히 묘사했다.

하늘은 빨갛습니다. 이제는 하얗게 변했습니다! 하늘이 미쳐가고 있어요. 불길이 그린힐로 상공 위로 30--45m 정도 치솟았습니다. 이곳에 있는 120가구 정도가 위험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는 큰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거의 숨을 쉴 수가 없어요! 공기는 백열로 가득 차 있고요!

여자들은 울고 있고 아이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위험에 처해 있어요! 불길이 특급열차처럼 다가오고 있어요.  불바람은 10분만에 400헥타르의 농장을 휩쓸었다. 그 농가의 지붕은 파괴되었지만 니콜 일행은 기적적으로 해를 입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니콜은 운이 좋았던 편이다. 멜버른 동쪽 48km 지점의 카커투읍에서는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서 화염이 덮치는 바람에 12명의 소방대원이 목숨을 잃었다. 남오스트레일리아주 카랑가두 근처에서는 한 여성과 네 명의 자녀가 탄차가 불길에 막힌 채 화염에 휩싸여 모두 불에 타 숨졌다. 빅토리아주 팀분 부근에서는 페트로넬라 앤더슨부인과 그녀의 열살짜리 아들 가레드가 케빈 그리그라는 길 잃은 소방대원을 차에 태우자마자 불길이 차를 덮쳐 어머니와 아들은 그 자리에서 죽었고, 소방대원 그리그는 중화상을 입긴 했지만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재의 수요일  밤 9시 30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최악의 피해를 입은 곳으로는 멜버른 근처의 언덕 마을인 마세돈읍 소재, 마세돈 가족휴양호텔의 외곽 지역을 꼽을 수 있었다. 커질 대로 커진 불바람은 이제 중심부가 시속 240km로 회오리치는 돌풍을 동반한 채, 이 마을을 빠른 속도로 집어삼키고 있었다. 화염이 너무나 맹렬해서 꽤 먼 거리에 있던 새들도 불이 붙은 채 공중에서 떨어졌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이미 마을에서 탈출한 상태였지만 불길과 쓰러진 나무 기둥 때문에 탈출로가 봉쇄되어 약 250명의 주민들이 호텔에 피신하고 있었다. 다행히 소방호스로 호텔을 겨냥하고 지속적으로 물을 퍼부은 소방대원들의 희생적인 노력 덕분에, 건물과 그안에 있던 피난민들은 화염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지만 마세돈읍의 다른 많은 사람들은 희생되고 말았다.

 수요일 저녁 늦게, 때마침 내린 비 덕분에 남오스트레일리아주를 휩쓸던 큰 불기둥 가운데 대다수는 더 이상 다른 지역으로 번지지 않았다. 그러나 빅토리아주에서는 소규모의 불길이 일요일 아침까지 끊임없이 타올았다. 산불이 모두 진압되었을 때, 모두 74명이 목숨을 잃었고, 재산 피해는 총 4억 5000만 달러에 달했다. 2000동이 넘는 가옥과 건물, 수십만 마리의 가축 그리고 1000여대의 차량이 화재로 파괴되었다. 그리고 약 5180평방 킬로미터의 삼림이 까맣게 그을렸다.

 오스트레일리아 전국 각지로부터 구호금과 자원봉사자들이 밀려왔다. 전국민은 마음을 합쳐 생존자들이 삶을 재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