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적인 폭염


















   불볕 더위가 전미국을 고통에 빠뜨리다

 미국인들, 특히 선 벨트 지역 주민들은 매년 여름이면 무더운 날이 끝없이 계속됨을 터득해 왔다.

 그러나 1980년의 지루하고 무더웠던 여름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주었다. 그 불볕 더위가 가라앉은 9월 초순까지 텍사스주에서 남북 다코타주, 그리고 동부 해안의 뉴잉글랜드에 이르는 많은 지역이 타는 듯한 열기에 시달렸다. 여러 주일 동안 태양이 작열하여 기온이 신기록을 세우며 화씨로 세자리까지 올라갔다. 곡물이 타죽고, 저수지는 말라갔으며 가축들이 쓰러지고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아스팔트 도로가 녹아버렸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사태는 더위로 1265명이라는 끔찍한 인명 피해가 난 것이었다. 재산 피해도 200억달러를 웃돌았다.

 기상학자들은 이러한 이상 기후의 원인이 여러 가지 기상조건들이 기묘하게 결합한 탓이란 사실을 규명해냈다. 즉, 고공 기류의 일종이며, 지상 11km 내지 13km 상공에서 시속 240km의 속도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대륙을 횡단하여 지나가는 제트 기류가 80년 여름에는 정상적인 패턴과는 달리 상당히 북쪽으로 치우친 북위 50도 선상을 따라 구불구불하고 불규칙한 형태로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세 개의 거대한 고기압대가 북미대륙 일원에 형성됐는데, 이를 밀어낼 제트기류가 없었기 때문에 고기압대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즉, 하나는 하와이 북쪽의 태평양 상공에, 또 하나는 북미대륙의 중남부 상공에, 또 하나는 대서양 연안의 중부 지역 상공에 머물러 있었다. 이 고기압대가 합쳐져 거대한 반구 모양의 고정된 고기압 세력이 형성되었다. 이는 통상적으로 예년 여름철의 경우 강우와 다양한 기후변화를 가져오는, 구름을 동반하는 소규모전선들과 간헐적인 폭풍의 진로를 빗나가게 했다. 그리고 태양열을 흡수할 구름이 없는 이런 조건에서 땅은 달아올라 날이 갈수록 더욱 뜨겁고 건조해졌다. 게다가 땅이 가열됨에 따라 반구형 고기압대의 아래에 갇혀 있던 공기는 대기권의 아래쪽으로 천천히 내려오면서 기압의 상승으로 가열됐다.

 이러한 끔찍한 기후 조건이 지구 표면의 4분의 1이 넘는 지역 상공에 한 달 이상이나 꼼짝 않은 채로 지속됐다. 이 움직이지 않는 고기압대는 유럽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미국 사람들이 뜨겁고 건조한 대기 속에서 불볕에 허덕이고 있는 동안, 북대서양의 반대편에 살던 사람들은 비참할 정도로 춥고 비가 많은 여름을 겪었다.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북쪽을 향해 올라가고 있던 제트 기류가 습기를 잔뜩 머금은 차가운 캐나다 대기를 동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열파는 6월 셋째주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이때 기온은 텍사스 주의 댈러스, 포트워스 지역에서 최고 37.8도 C까지 올라갔다(그후 42일 동안 기온은 37.8도 C 이상을 유지했으며, 6월 26일과 27일에는 최고 45도 C까지 올라갔다). 옛날부터 이런 악조건의 기후를 숱하게 이겨온 텍사스 사람들은 6월 28일 기온이 47도 C까지 올라갔을 때도 사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7월 둘째주에 접어들자 미국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중부지방 대부분에서 기온이 현저하게 올라갔다. 7월 13일 테네시주 멤피스(42.2도 C), 조지아주 오거스타(41.7도 C), 애틀랜타(40.6도 C)에서 각각 신기록이 세워졌다. 애틀랜타에 사는 윌리 존스는 체온이 46.5도 C까지 올라가 병원에 실려갔다. 그는 차갑고 물에 젖은 담요와 얼음을 뒤집어 쓴 끝에 간신히 회복됐는데, 덕분에 사상 최고의 체온을 기록한 사람으로 기네스북에 오르는 영예와 함께  인간 횃불, 존스 라는 별명을 얻었다. 7월 16일 이 폭서는 드디어 뉴욕시까지 엄습하여 첫날에는 수은주를 37.2도 C까지, 그리고 나흘 뒤에는 38.3도 C까지 치솟게 했다.

 이 극심한 열기는 모든 사람에게 고통을 주었다. 특히 고령자와 병약자, 빈곤 계층의 피해가 가장 컸는데, 그 주된 이유는 절박한 순간에 에어컨과 신속한 진료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보통, 우리 몸은 외부의 지나친 열기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어 기제를 많이 가지고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땀의 분비는 수분을 증발시킴으로써 체온을 내리게 해준다. 아울러 피하 혈관은 스스로 확장하여 더 많은 혈액이 피부 바로 밑에서 순환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체열을 발산시켜 준다.

 그러나 지나친 열기와 습도는 땀의 증발을 방해함으로써 이 과정을 방해할 수 있다. 심장이 압박을 받아 발작을 일으킬 수도 있다. 게다가 지나친 땀의 분비는 탈수 증세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미 심장질환이나 순환기계통의 질병 같은 건강 문제를 안고 있는 고령의 사람들에게 이런 위험은 훨씬 더 커진다.

 노인들이 불균형적으로 많이 살고 있는 미주리주는 주 방위군, 적십자사, 연방 및 주 구호기관들에게 희생자들에 대한 구조를 호소했다.

일부 동리에서는 구조대원들이 가가호호 방문하여 무료로 선풍기를 배급하고 주민의 건강상태를 점검했으며, 일부 주민에게는 에어컨 시설이 갖춰진 강당과 방위군 본부등으로 피신하도록 권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비상사태 기간에 미주리주에서만 311명이 폭염과 관계된 원인으로 생명을 잃었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세인트루이스와 캔자스시티에서 발생했는데, 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던 이곳의 낡고 환기시절이 형편 없는 벽돌 건물들은 당시 진짜 빵굽는 오븐처럼 변했던 것이다. 캔자스시티의 살인사건 발생률이 급격히 감소한 사실에서나마 다소의 위안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아마 이는 사람들이 더위에 너무나 기진맥진한 나머지 남에게 폭력을 쓸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타는 듯한 더위는 가축과 곡물에도 가혹한 타격을 입혔다. 특히 아칸소, 텍사스, 플로리다주의 양계 농가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아칸소주에서는 일주일 동안에 약 800만 마리의 닭이 질식사했다. 또한 가축들에게 풀과 물을 줄 수 없었던 목축업자 가운데는 소를 일찌감치 도살하는 사람이 많았다. 혹서로 암탉이 달걀을 낳지 못했고, 젖소는 젖이 말라갔으며, 돼지는 글자 그대로 고꾸라져 죽어갔다.  일부 그레인 벨트(미국 중서부의 대농업지)의 농부들은 수천 헥타르에 펼쳐져 있는 농작물이 말라죽어 그대로 먼지로 흩날려 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았다. 그해 여름 혹서가 엄습하기 오래 전부터, 여러 달 동안 비정상적으로 저조한 강수량으로 어려움을 겪은 지역이 많았다. 관개시설의 도움으로 일부 농작물이나마 건질 수 있으려니 했는데 이제는 우물들이 모조리 말라 버렸다. 날짜는 덧없이 흘러갔고 어떤 지역에서는 옥수수, 면, 목화, 콩, 밀의 예상 수확량 중 80퍼센트 이상이 상실되고 말았다. 심지어 동물원과 유원지들도 동물들이 더위를 먹고, 이용객이 줄어들어 고통을 겪었다. 또 인공잔디 구장에서 경기하는 프로야구팀도 발아래 플라스틱 잔디의 온도가 너무 높게 상승해(한 연구에 의하면 섭시 63도까지 올라간다) 고통을 겪었다. 중서부 지역의 한 야구장에서는 덕아웃에 얼음물을 채운 양동이를 준비하여 한 이닝이 끝날 때마다 선수들이 양말과 스파이크를 신은 채로 발을 담글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기상청 요원들은 이 기후체계에 어떤 변화의 기미가 나타나 주기를 희망하며 날마다 측우기들을 주시했다. 마침내 7월 하순경, 대서양 상공에서 고밀도의 구름덩어리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 관측되었다. 그것은 카리브해를 향해 흘러가면서 전형적인 허리케인의 모습인 바람개비 형상을 띠기 시작했다. 멕시코만 연안의 주민들은 앨런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태풍의 내습에 대비하여 방어체제를 구축했다. 8월 9일 태풍 앨런호는 대륙을 강타하여 사망자 3명과 7억 5000만 달러의 재산피해를 입혔다. 그러나 이 태풍은 열파의 후미를 파괴하여 텍사스주 한 곳만 보더라도 기온이 무려 섭씨 14도나 떨어졌다. 빌 클레먼츠 주지사는 감격하여  하늘이 축복을 내렸다 하고 외쳤다. 동부 지역을 괴롭히고 있던 무더위가 마침내 수그러든 것은 그로부터 3주가 더 지나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