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네스라는 이름의 악마


















   평범한 열대 폭풍우가 악마로 변해 중부 대서양 지역을 난타한다.

 중부 대서양 지역의 강들은 서스쿼해나, 기네시, 주니아타, 앨러게니 등과 같은 사랑스런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름뿐 아니라 실제 강의 모습 또한 아름답다. 둑을 넘쳐 범람하여 살인마로 돌변할 때를 제외한다면. 그런데 1972년 6월 하순, 바로 그런 재난의 조짐이 나타났다.

아그네스란 이름의 거대한 폭풍우가 약 106조 리터의 물을 여러 강과 그 지류에 쏟아부었다. 그 정도라면 173평방킬로미터의 호수를 610m 깊이로 채우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그 결과 발생한 홍수로 122명이 목숨을 잃었다. 엄청난 재난에 비해 사망자수는 적은 것이었다. 하지만 재산 손실은 기록적이어서 무려 30억 달러에 달했으며, 아그네스는 지금까지 미국을 강타한 허리케인 중에서 가장 큰 피해액을 기록했다.

 6월 중순에 멕시코 유카탄 해안에서 3급 열대성 폭풍우로 태어난 아그네스는 멕시코만을 지나면서 허리케인이라고 불릴 만큼 세력이 강해져서 플로리다반도에 큰 타격을 입혔다. 육지 위를 지나면서 허리케인의 힘을 잃은 아그네스는 북동쪽으로 이동하며 남동부의 여러 주를 통과했다. 예측대로라면 대서양으로 빠져나갔어야 할 이 열대성 폭풍우는 해안에 바짝 붙어 계속 북쪽으로 이동했다. 그 동안 아그네스는 막대한 양의 수분을 흡수했고 버지니아주, 메릴랜드주, 뉴저지주 일부 지역에 엄청난 비를 뿌렸다. 전체 직경이 402km에 달하는 소용돌이치는 구름 덩어리로 발전해 여전히 수분을 흡수하던 아그네스는 6월 22일 뉴욕시를 강타하고는 허드슨강을 따라 올라갔다. 그리고는 변덕을 부려 서쪽으로 진로를 바꿔 뉴욕주와 펜실베이니아주의 경계 지역에서 양쪽 주 모두에 최악의 폭우를 쏟아붓기 시작했다. 이 두 주는 허리케인의 격렬한 공격을 받게 되었다.

 허리케인은 사전에 경보가 발효되었고, 댐이 무너져 더한 희생을 치르지도 않았으며 20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1889년의 존스타운 대홍수와 같은 엄청난 규모의 인명피해도 없었다. 문제는 일주일 내내 지속된 호우로 이미 이 지역이 포화 상태에 이르러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미 불어나 있던 버지니아주와 뉴욕주의 강과 하천이 아그네스가 새로 뿌린 비로 범람하여 들판과 시가지를 휩쓸었다.

허리케인이 몰고온 홍수는 33만명을 이재민으로 만들었고 펜실베이니아주와 뉴욕주 대부분의 농작물을 망쳤으며, 체서피크만 어장에서부터 뉴욕의 유명한 코닝 유리 제조 공장에 이르는 여러 공장들을 가동불능 상태로 만들었다. 중부 대서양 여러 주에 걸쳐 수많은 마을들이 유린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피해가 컸던 곳은 펜실베이니아의 와이오밍 계곡에 위치한 윌크스배러시였다.

 유난히 큰 어려움을 겪은 공업 도시 윌크스배러시는 1936년에 서스쿼해나강이 정상 수위를 넘어 약 10m까지 불어나는 바람에 심하게 침수됐었다. 그후에 건설된 제방은 약 11m의 수위를 수용할 수 있도록 건설됐지만 아그네스의 끔찍한 영향 때문에 강은 약 12m 이상까지 불어났다. 6월 22일 목요일 밤, 강물이 제방 꼭대기 가까이까지 차오르자 자원 봉사자들이 모래주머니로 제방을 쌓기 위해서 몰려들었다.

트럭들이 제방 바닥에 모래와 흙을 쏟아놓으면 축축하고 어두운 밤 공기 속에서 젊은이들이 흙을 자루에 담아 미끄러운 경사면 위로 기어 올라갔다. 흙을 담을 자루가 동이 나자 자원 봉사자들은 이집저집에서 플라스틱 쓰레기통, 베갯잇 등 모래를 담을 수 있는 주머니면 무엇이든 들고 나왔다. 우체국에서도 빈 우편낭을 한 트럭분이나 보내왔다. 그러나 당시 작업에 참여했던 한 사람은 이렇게 회상했다.  강은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었어요. 우리는 그 속도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사이렌이 울리며 모두 철수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죠.

 서스쿼해나강은 금요일 새벽녘에 제방을 넘어 범람하기 시작해서 해질 무렵이 되자 윌크스베러시의 상업 중심지인 시민 광장을 수 미터에 이르는 쓰레기와 진흙투성이 물속에 잠겨 버렸다. 일부는 집을 빠져나와 고지대로 도망칠 수 있었고,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위층이나 지붕으로 올라가서 구조를 기다렸다. 헬리콥터가 피해 지역을 저공 비행하면서 들락거렸지만 구조작업의 대부분은 모터 보트로 이루어졌다.

보트 조종자들은 본래 지상 약 7.5m 높이에 있었으나 지금은 수면 바로 위에 늘어져 있는 전선과 전화선에 걸리지 않도록 아주 조심해야만 했다.  

 끔찍스러운 시궁쥐들의 공격은 계속되는 윌크스배러시의 재난 기록을 더 늘렸다.

 수백만 달러의 상품이 보관된 창고에서 전기누전으로 화재가 발생했다. 소방수들이 진화에 나섰으나 불어나는 강물 때문에 불타는 건물에 접근하지 못했다. 창고와 그 속에 있던 보관품들이 타오르기 시작했고 매운 연기가 고립되고 침수된 도시 상공을 뒤덮었다. 구멍에서 몰려나온 쥐떼들이 헤엄을 쳐서 지붕을 뚫고 나가 역시 그곳에 대피하고 있던 사람들을 공격했다. 윌크스배러시의 병원 세 곳은 업무가 중단되었기 때문에 쥐에 물려 상처가 심한 환자들은 다른 환자나 부상자와 함께 그곳에서 약 196km 떨어진 해리스버그 주립병원으로 공수되어야만 했다.

 윌크스배러시에서 끔찍스러운 광경이 계속되는 동안, 포티포트시 북쪽 교외에서는 죽음의 무도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밀려오는 물이 무덤에서 관을 쓸어내 떠내려 보냈으며 어떤 관에서는 안에 들어 있는 해골들이 삐죽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홍수로 불어난 물이 빠졌을 때 집으로 돌아온 몇몇 주민들은 뒷마당에 어질어진 쓰레기 중에서 사람의 두개골과 뼈들을 발견했다. 지방 경찰은 떠내려오는 시체와 서스쿼해나강에 휩쓸려 온 백화점의 마네킹을 구별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윌크스배러시의 하류쪽에 위치한 해리스버그도 한동안 외부 세계와 단절되었으며, 도심의 거리들은 침수되었다. 주지사 밀턴 샤프와 그의 부인은 6월 22일 당일, 200만 달러를 들여 지은 강변의 새 주지사 관저를 버려야만 했다. 도시 부근의 몇몇 지점에서 서스쿼해나강은 약 2.5km 밖에서도 들리는 굉음을 내며 갈색 물줄기를 뿜어냈다. 해리스버그 남쪽에 있는 베들레헴제철소는 물 위로 지붕과 굴뚝만이 보였다.

 필라델피아 근처에 있는 윌크스배러시의 남부와 동부 지역에는 범람한 스컬킬강이 포츠타운으로 밀려내려와 사람들은 지붕과 나무꼭대기로 기어 올라갔다. 홍수 피해를 입은 마을에 출동한 군 헬리콥터들은 나무와 고압선을 날쌔게 피하면서 비가 내리는 어둠 속에서 조난자 구조 작업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불어난 강과 수로들은 뉴욕주 남쪽의 여러 군에도 심한 피해를 주었다. 특히 엘미라와 코닝 지역이 큰 피해를 입었다. 엘미라의 4만여 주민들 중에서 절반 가량이 피난을 갔다. 주민들의  사활이 걸려 있는 전화 를 받기 위해 뒤에 남은 전화 교환수는 사무실 여기저기에서 사무집기들이 1.5m 높이의 물에 떠오를 때까지 교환업무를 계속했다. 체뭉강이 코닝 지역을 미친 듯이 할퀴고 간 후에 마을에는 가스, 전기, 음료수가 떨어졌고 40퍼센트의 가옥이 부서졌다. 코닝 유리 제조 공장에서는 회사의 유리 박물관에 있던 귀중한 골동품들이 홍수에 떠내려가거나 진흙과 쓰레기더미 속에 산산이 부서져 있었다.

 버지니아주에서는 제임스강이 약 11m까지 불어서 1771년의 약 9m 기록을 훨씬 넘어섰다. 주 정부가 있는 리치먼드에서 홍수가 흙탕물을 튀겨대는 동안 식수는 점점 떨어져갔다. 버지니아 주지사인 린우드 홀튼은 버지니아주가  금세기 들어 볼 수 없었던 최악의 재난을 겪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버지니아주와 메릴랜드주에 발생한 최악의 피해는 아직 가시화되지 않고 있었다. 서스쿼해나강, 포토맥강, 파투젠트강과 제임스강의 엄청난 홍수 때문에 체서피크만의 조개 가공업에 종사하는 수천명이 1년 동안 일거리를 잃었다. 바닷물에서 번성하던 대합, 굴, 게들은 서식처의 염분 농도가 희석되었을 뿐 아니라 산업 폐기물, 살충제와 진흙, 쓰레기 등의 유입으로 때죽음을 당했다.

 아그네스는 주로 애팔래치아산맥 동부에 집중적인 피해를 입혔지만 아그네스가 몰고온 구름들은 멀리까지 뻗어나가 하천 북부와 서부에 있는 생강들도 범람하게 했다. 뉴욕주 로체스터시 근처에서 공병들은 제니시강물이 230m 높이에 이르는 모리스산 댐의 최고 수위에 약 15m전까지 육박하는 모습을 관찰했다. 그들은 결국 댐에 가해지는 수압을 경감시키기 위해 수문을 열었다. 그러자 초당 238입방미터의 물이(나이애가라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의 양과 같음)계곡 아래로 쏟아져내려 수천명의 지역 주민들이 집을 버리고 고지대로 피신해야 했다.

댐에서 쏟아진 물은 멀리 떨어진 피츠버그 도심까지 흘러들어 어린이들은 오하이오 강물로 침수된 주차장에서 수영을 했다.

 6월 24일, 폭풍이 잠잠해지기도 전에 젊은 지원자들로 구성된 군인들은 여름 휴가를 희생하면서 침수 지역에 달러가 구호물자를 수집하고, 운반 분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100명의 메노파 교도들이 자신들의 텐트와 장비를 가지고 엘미라에서 파손된 가옥들 복구했으며, 다른 파견대들은 물로 고립된 와이오밍 계곡에서 헌신적으로 구조작업을 폈다. 이처럼 허리케인은 사람들의 가장 훌륭한 면을 드러내주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의 의욕을 꺾고 꿈을 짓밟았다. 이재민들 사이에서는 한바탕 전투를 치른 후의 피로와 무력감 비슷한 감정이 팽배했고 그들이 용기를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과 고통이 따랐다.

 잠시 와이오밍 계곡의 한 가정이 홍수로 겪은 시련을 상상해 보자. 그들은 6월 22일 밤과 23일 새벽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새벽 4시 30분에 경고가 발효되었다. 즉각 대피하라! 서둘러 중요한 서류와 옷가지를 챙긴 그들은 고속도로로 향했다. 운이 좋으면 그다지 멀지 않은 친척집에서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피난민들로 가득찬 비좁은 학교 강당에서 지내게 된다. 3일 후 그들은 집을 둘러보러 돌아간다. 침수된 건물은 엉망이었다. 안으로 기어 들어간 그들은 물에 젖은 소파와 의자를 끄집어낸다. 못쓰게 된 냉장고, 세탁기, 텔레비전은 뜰에 쌓인 쓰레기 더미에 던져 버린다. 어쩌면 이층의 가구들과 옷가지 중에는 건질 만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드디어 공병들이 나타나서 부엌 살림살이와 목욕탕 설비들을 인양하고 나서는 집을 철거한다. 친척집에서 좀더 오래 신세를 지고 나서 이재민들은 도시주택개발성(HUD)의 호의로 그들의 잔디밭에 자그마한 이동식 주택이 놓인 것을 발견한다. 지붕에서는 물이 새고 난방기는 어설프게 작동하지만 이동 주택은 1년 동안 무료로 사용 가능하고 가정은 제자리에 돌아온 것이다. 이제 더 많은 일에 대해서 걱정을 할 때다. 집을 개축할 융자금을 얻을 수 있을까? 아버지가 일하던 가게나 공장이 문을 다시 열까?(일부는 열었지만 많은 가게나 공장이 문을 열지 못했다.)마을이 다시 제대로 돌아갈까?(몇 달 후까지도 그 지역의 여러 상점과 극장, 식당들은 진흙 속에 파묻힌 채 비어 있었다.)

 폭풍으로 인한 재산 손실보다 더 심한 피해는 아그네스가 그토록 많은 희생자들에게 입힌 정신적인 상처였다.

 홍수가 지나간 후 윌크스배러 지역에서 정신과 의사를 찾는 사람의 수가 두 배로 늘어났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자기 집을 물에 떠내려 보낸 어떤 사람은 수도 호스를 붙들고 3일 동안 집터 앞에 앉아 있었다. 나무 위로 올라가 24시간 동안이나 내려오지 않으려고 한 사람도 있었다. 국립 정신 건강 연구소에서 파견된 의료팀은 그들이 밀폐된 장소에서 정신적 고통을 받는 폐소 공포증, 비에대한 강한 공포감, 요지부동의 의존적 경향성 등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실제 사실이든 상상에 의한 것이든 조그마한 불만의 씨앗도 격렬한 분노를 부추겼다. 한 정치가가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이동식 주택을 받자 그의 이웃들은 돌을 던졌다.  그들은 아무도 믿으려 들지않습니다.  연방 정부의 구호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좀더 지원해주지 않는  정부 를 비난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해 선거가 있었기 때문에 정부의 보상 지원은 후한 편이었다.

5개주가--플로리다, 메릴랜드, 버지니아, 펜실베이니아, 뉴욕--재해 지구로 지정되었고 각 주에는 연방 구호기금이 적절하게 배당되었다.

10월 30일, 주택도시개발성의 펜실베이니아 지부에서는 그 기금으로 1만 4358가구의 임시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고 보고했다. 추수감사절까지 중소기업청에서는 주택 융자금으로 1억 3100만 달러를 분배했으며, 각 가정에 먼저 대부된 5000달러는 사실상 무상 지급이었다.

어쨌든 연방 홍수 구호 계획에 따라 와이오밍계곡 한 곳에만도 거의 20억 달러를 쏟아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