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금요일의 대지진


















   지진의 충격파가 대륙에 격렬한 여파를 미친 가운데 알래스카의 해안지형을 변화시켰다.

 알래스카는 북미 대륙에서도 산들이 가장 높은 곳이다. 겨울도 여타 지역들보다 추우며 농작물도 더 빨리 자라며 연어도 더 많이 잡힌다. 그런가 하면 여름 밤은 더 밝고 더 길기도 하다. 미국에서 가장 큰 주인 알래스카는 모든 면에서 최고이며 심지어 재난의 경우에도 그렇다.

그예로 1964년 3월 27일 성금요일 저녁에 앵커리지로부터 128km쯤 동쪽으로 떨어진 프린스 윌리엄 해협의 북단에서 대규모의 지진이 발생하여 알래스카의 남중부 해안 일대를 강타했는데 대지진에 관한 당시까지의 모든 기록을 거의 갱신했다.

 알래스카의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이 지역 전체의 지반이 솟아오르고 함몰했다. 바위와 얼음이 산사태를 일으켜 산비탈의 나무와 관목숲을 완전히 파괴했다. 해안의 돌출부들이 육지에서 갈라져 나가 바닷속으로 잠겨버렸다. 도로는 파손되고 건물들이 붕괴하여 마을 전체가 초토화된 곳이 많았다. 알래스카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금융의 중심지인 앵커리지의 도심부의 30여 구역은 폐허가 되어버렸다. 지진이 일으킨 해일이 해협 남동쪽 끝의 코르도바에서부터 720km쯤 남서쪽에 있는 코디악섬에 이르는 해안의 모든 마을과 도시로 밀려들었다.  이 지진의 충격으로 멀리 떨어진 텍사스주 휴스턴의 지반이 최고 10cm나 솟아올랐다. 지구의 반바퀴 반대편에 있는 남아프리카의 우물들은 수위가 급격히 높아졌다. 2주 동안 지구 전체가 마치 거대한 소리굽쇠처럼 요동하였던 것이다.

 비록 지각이 불안정한 남쪽 중심부에서 미진이 자주 발생했지만 알래스카 주민들은 지진 자체나 그 결과에 대해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이러한 지각의 동요를 개척지에서 살아가는 데 겪어야 할 대수롭지 않은 불편 정도로 여겼다. 게다가 바로 그 성금요일날 주민들은 다가오는 주말 연휴 등 오로지 즐거운 생각에 들떠 있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더할나위 없이 멋진 부활절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6개월간의 겨울이 지나가자 기온은 비교적 온화한 -2.2도C를 유지했고 아침에는 눈발이 오락가락했다. 재앙이 닥친 오후 5시 36분, 각급 학교는 공휴일을 맞아 파한 뒤였고 대부분의 사무실들도 이미 문을 닫아버린 상태였다.

 처음에는 멀리서 들리는 포성처럼 희미한 고음의 땅울림이 그 남부 전역을 뒤흔들었다. 이어 지표면이 요동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파도처럼 굽이치며 지만이 요동했던 끔찍한 4분 동안이 주민들에게는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앵커리지에 사는 어느 여인은 당시를 이렇게 전했다.  사람들은 서로 부둥켜 안거나 가로등과 건물에 매달렸어요.  어느 소녀는 기도했다.

하느님, 이제 됐어요. 제발 멈춰주세요.

 얼어붙은 땅에 커다란 틈이 생겨 크게 벌어지더니 다음 순간 곰잡는 올가미의 입구처럼 닫혀 버렸다.

 캐롤 터커 부인이 앵커리지 중심가의 J.C. 페니라는 새 백화점에 있을 때, 그 건물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거울과 진열대가 부서지고, 천장에 바른 회벽 조각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전기가 나가버리자 터커 부인은, 쏟아져 내리는 파편을 피하기 위해 머리를 손으로 감싼 채, 멈춰 선 에스컬레이터를 찾아 비틀거리며 내려갔다. 나중에 그녀는 말했다.  만일 내가 정신이라도 잃었다면, 정말 살아 남지 못했을거예요.  그녀가 어떤 기적적인 본능에 이끌려 백화점 정문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콘크리트로 된 그 건물의 외벽이 거리로 무너져 내렸다. 그 바람에 한 남자가 깔려 죽었고, 차를 몰고 가던 한 여성도 목숨을 잃었다. 터커부인은 후문을 통해 비교적 안전한 백화점 주차장으로 겨우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교외의 부유한 주택가인 턴어게인 하이츠는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절벽 위에 있었는데, 그 충격으로 무너져 내렸다. 앵커리지 (데일리 타임스)의 발행인인 로버트 B. 애트우드는 강한 진동이 일자마자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나무가 쓰러지고, 집이 사방으로 부서져 내렸으며, 땅은 불쑥 솟아나 마치 얼어붙고 비스듬히 누운 석판들 위로 분출하고 있었다. 순간 애트우드는 멈춰서서, 자신의 집이 뒤틀려 부서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발 밑의 땅이 갈라지면서, 그는 깊은 구렁에 빠졌다. 그곳을 빠져나온 애트우드는 해안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집이 산산조각난 채 나무조각들만 바닷가에 널려 있었다.

 진동이 시작되었을 때, 애트우드의 이웃인 테이 토머스 부인은 이층 침실에서 두 자녀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토머스부인은 즉시 어린 앤과 데이비드를 끌어안고 현관으로 뛰어내려갔다. 그들은 쓰러져 가는 앞마당의 커다란 나무토막에 매달려 이 지진을 견뎌냈다.

토머스부인은 그 당시를 회상했다.  어느 순간 앤과 나 사이에 쌓여 있던 눈에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깜짝 놀란 어머니가 잘라진 틈 너머로 손을 뻗쳐 그 아이를 가까스로 끌어당겼다. 가장 큰 진동이 멈췄을 때, 토머스부인과 아이들은 부서진 집의 잔해와 함께 바닷물이 거의 닿는 곳으로 밀려나 있었다. 손가락과 발끝이 뻣뻣해졌지만 그들은 여기저기 갈라진 언 땅 위를 필사적으로 기어서 안전지대를 찾았다. 약 15분 후 구조대원들이 이들을 발견하고 로프를 이용하여 더 높은 지대로 끌어 올렸다.

 다른 이웃들은 그리 운이 좋지 않았다. 신경외과의사인 페리미드는 지방병원에 출근하고 없었지만, 제 자녀는 집에 있었다. 집이 무너지자, 12살 된 페리 미드 3세는 여동생과 남동생을 데리고 무사히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러나 갓난아기 메렐을 구하기 위해 다시 집안으로 들어간 페리 3세는 갈라진 틈에 빠져 사라졌다. 아직 시신조차 발견되지 않고 있다.

 지진으로 인해 파손된 지역은 궁형으로 800km에 걸쳐 있었는데, 이와 같은 비극적인 사례나 극적으로 구출된 경우가 허다했다. 진원지에서 동쪽으로 8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발데즈항에서는, 땅이 마치 물결처럼 크게 굽이쳤다. 물과 흙더미가 60m 높이까지 솟구쳐 오르면서 땅이 갈라졌다가 다시 붙었다. 건물의 토대가 무너지고 벽이 내려앉았으며, 전류가 흐르는 고압선은 나뒹굴었다. 그러자 바닷물이 밀려들었다.

지구표면의 격심한 대변동에 의해 움직이는 거대한 지진성 해일이 빠른 속도로 피오르드 해안인 발데즈만으로 밀려들어와서, 어두워질때까지 30분 간격으로 해변을 때렸다. 내륙 깊숙이 들어온 이 지진해일로 발데즈항의 중심가 4분의 3이 물에 잠겼다. 주민들은 대부분 언덕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32명이 목숨을 잃었고 1100만 달러 이상의 재산피해를 입었다.

 프린스 윌리엄 해협 건너편 서쪽 193km 지점에 있는 시워드 유조항에도 비슷한 재난이 들이닥쳤다. 최초의 충격 이후 30초만에 1200m에달하는 부둣가가 선창, 창고, 선적 크레인, 시멘트 건물과 함께 만쪽으로 기울었다. 기름저장 탱크들이 연쇄적으로 폭발하여 화염에 휩싸였고, 항구의 잔해들 사이에서 수천 갤론의 석유가 맹렬한 기세로 타올랐다. 부두가 비스듬히 기울어지면서 항만 파도가 생겨났는데, 그파고는 3층 건물만큼이나 높았고, 파도의 물마루에는 불타는 기름이 둥둥 떠다녔다. 한 생존자가 당시를 회상했다.  거대한 불파도가 해안으로 들이닥쳐 수위표면에 불을 붙이고는 다시 밀려나갔죠.

 시워드항의 경우는 지진과 파도, 거기다 불이 겹쳐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것이다. 조선소, 조차창, 발전소, 정유소, 보트 정박소, 그리고 거의 절반 가량의 주택이 모두 잿더미로 변했다. 재산피해는 1500만 달러였으나, 사망자는 모두 12명으로 그런 상황치고는 인명피해가 놀랄 만큼 적었다.

 게와 통조림 가공공장이 밀집된 지역인 코디악섬에서도 다행히 사망자수는 적었다. 게잡이 어선인 실리프호의 선장 빌 쿠스버트는 식사 도중에 배가 큰 파도에 여러 번 부딪히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비틀거리며 갑판으로 올라간 그는 상황을 곧 알아챘다. 라디오 지진해일 경보를 들으면서 쿠스버트는 2명의 선원과 함께 배 안에서 이 위기를 넘기기로 결심했다. 최초의 충격이 있은 지 한 시간 이상 지나자, 완만한 큰 파도가 첫번째 지진해일의 도착을 알렸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물마루에서 물골까지 10m에 달하는 거대한 두번째 파도가 실리프호와 코디악 항구에 있는 다른 모든 배들을 들어올려 시가지쪽으로 휩쓸어갔다. 세번째, 그리고 곧이어 네번째 들이닥친 파도에 의해 실리프호는 내륙으로 더 깊숙이 내동댕이쳐졌다. 마침내 쿠스버트는 전화선 전주에 배를 묶을 수 있었다. 그러나 코디악선대의 거의 절반인 나머지 어선 77척은 침몰하거나 난파되었고, 그 섬에 있던 생선통조림 공장 3개 중 2개가 떠내려가 버렸다. 재산손실은 2500만 달러에 달했고, 15명이 사망했다.

  알래스카만에서 발생한 지진해일은 태평양을 가로질러 남극대륙과 일본에까지 돌진했다.

 시속 650km 이상의 속도로 이동하는 지진해일이 오리건주의 데포 해안에 들이닥쳐 부모와 함께 캠핑을 즐기던 어린이 4명을 휩쓸어갔다.

캘리포니아주 크레센트시에서는 시민 1명이 물에 빠져 죽었고 상점 150개가 파손되었다. 그리고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하와이의 힐로에도 이 지진해일이 밀려와 사람들은 고지대로 허겁지겁 피신해야 했다.

 이 알래스카지진은 북아메리카 역사상 가장 격렬한 자연재해였다. 전세계의 지진계가 그 충격파를 감지할 정도였다. 최종적인 측정 결과, 그 지진 강도는 8.3에서 8.6사이었다. 이것은 아마도 1906년에 샌프란시스코 지진 강도보다 두 배나 높고 이때 쏟아낸 에너지는 TNT 2억4000만 톤과 맞먹는다. 지구표면의 25만 9000평방킬로미터 이상이 새로운 지형으로 바뀌었다.

 이 지진은 그 가공할 파괴력으로 말미암아 훨씬 더 엄청난 재난을 몰고 올 수도 있었다. 만일 학교와 관공서가 문을 열었거나 날씨가 조금만 더 추웠더라도, 수백명의 사람들이 다치거나 바닷물에 휩쓸려 죽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밀물의 수위가 결정적인 순간에 낮았기 때문에, 지진해일의 파괴력이 둔화되었던 것이다. 또한 그 지방의 생선 통조림 공장들도 당시 휴업중이었으며, 해마다 닥치는 본격적인 휴가철도 아직 시작되지 않은 때였다. 피해를 감소시킬 이러한 요인들이 아니었더라면, 사망자 수는 최종집계로 밝혀진 131명보다 훨씬 더 늘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재산피해는 별개의 문제였다. 이 지진으로 알래스카 상공업의 약 75퍼센트가 잿더미로 변했고, 수천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인구 25만명에 불과한 알래스카주를 재건하는 데 최소한 3억 달러가 필요했다. 그러나 알래스카 주민들은 신속하게 재해복구에 나섰으며, 수많은 정부원조와 개인성금 덕택에 점차 제모습을 되찾아 갔다. 또한 전국의 기업과 노동조합, 교회단체들로부터 성금이 답지했다. 그리고 아이오와주의 6살 된 루안 젠슨은  당신의 집이 부서져서 정말 슬퍼요 라는 쪽지와 함께 저금통을 털어 10센트를 보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