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아도리아호의 비극


















   안개에 둘러싸인 바다에서, 위험, 경보도 없이, 돌연한 충돌로 호화 여객선이 침몰하다

 이탈리아의 제노바에서 뉴욕시로 가는 거대한 이탈리아의 여객선 안드레아도리아호는 1956년 7월 25일 밤, 낸터킷섬 남쪽에서 안개를 헤치며 나아가고 있었다. 많은 승객들이 이미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깨어 있던 사람들은 안개를 헤치고 또 다른 배의 빛이 나타나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몇 초 후, 밤 11시 10분, 스웨덴 정기선 스톡홀름호는 일직선으로 안드레아도리아호의 측면을 들이받았다. 그 일격으로, 매끈한 여객선은 영원히 대서양의 파도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것은 공해상 일어난 최초의 대형 선박들의 충돌사고로 그 원인은 분명하지 않았다. 두 배 모두 최신형으로서, 항해용 레이더와 다른 안전 장치들을 갖추고 있었다. 안드레아도리아호의 선체는 특히 11개의 방수 칸막이로 나누어져 그와 같은 충돌을 견뎌내도록 건조되었다.

타이타닉호의 선주들처럼, 그 배를 건조한 사람들도 그 배는 결코 가라앉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그 재난 이후, 일주일간 계속된 법정증언에서 양측은 서로 사고를 내게 된 일련의 사태에 대해 상충하는 의견을 제시했다. 서쪽으로 항해하던 안드레아도리아호의 선장 피에로 칼라마이는 그 배를 감싼 짙은 안개가 염려되어, 규칙적으로 안개 경보를 울렸다. 한편 스톡홀름호는 뉴욕을 출발하여 동쪽으로 항해하고 있었는데 통상 동쪽으로 항해하는 배들이 사용하는 항로에서 수 킬로미터 북쪽을 항해하고 있었다. 스톡홀름호는 안드레아도리아호를 에워싼 안개를 우연히 피하게 되어, 맑은 하늘 아래에서 항해하고 있었다.

 각각의 배는 서로 몇 킬로미터 떨어져 있을 때 레이더로 다른 배의 접근을 보고 있었으며, 칼라마이선장은 상대 배에 좀더 공간을 주려는 생각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러나 두 배가 육안으로 보일 만큼 접근했을 때, 서로 충돌할 위험에 처한 것이 분명해졌다. 양측 모두 상대방이 지나갈 공간을 만들어 주기 위해 마지막까지 필사적인 노력을 했지만 상대방이 자기들의 항로 안으로 곧장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진상이 어떠했든간에, 스톡홀름호와 안드레아도리아호가 충돌하는 순간 불꽃이 튀고 쇠가 충돌하는 굉음이 일어났다. 그 순간 이탈리아 여객선 안의 승객들은 큰 진동을 느꼈고, 이내 탈출이 시작되어 밤새 지속되었다. 충돌로 인해 배 측면에 구멍이 생겨 바닷물이 억수같이 밀려들었다. 선체는 걷잡을 수 없이 기울기 시작했다.(몇 년 후 인양을 위해 탐사한 결과, 그 당시 예상했던 것보다 선체의 피해가 훨씬 더 광범위했으며 그런 까닭에 방수칸으로 선체의 침몰을 막을 수 없었다.)

 충돌로 뒤틀어진 난파선은 Ga슴 아픈 드라마이자, 놀라운 기적의 현장이었다.

 스톡홀름호가 들이받은 선실은 혼돈 그 자체였다. 뉴욕의 변호사인 월터 칼린 대령은 충돌 직전 그의 선실에서 나와 세면실로 갔다. 그의 아내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충돌의 충격으로 넘어진 그는 선실로 돌아가려 했지만, 그의 아내가 벌어진 틈새로 바다에 떨어지는 것을 공포속에서 바라보아야 했다.  옆에 있던 두 개의 선실에는 뉴욕타임스 통신원인 카밀 치안파라와 그의 아내인 제인, 그들의 딸인 조안 그리고 제인의 딸인 린다 모건이 있었다. 조안과 린다는 순식간에 그 심연 속으로 사라졌고, 카밀은 충돌시 몸이 찢겨 이내 사망했다. 제인은 투레 피터슨 박사와 그의 아내인 마르타가 있는 옆 선실로 퉁겨져 그곳에 생긴 틈바구니에 꼭 끼여 꼼짝할 수 없었다. 거의 손이 닿을 것 같은 거리에 다리와 척추가 골절됐지만 아직 살아 있는 마르타 피터슨은 몸이 뒤틀려 있었다. 이번에는 투레피터슨이 다른 선실로 퉁겨졌다. 비교적 부상을 당하지 않은 그는 아내와 제인을 구조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혼자서 그들을 구해낼 수 없음을 이내 알았다. 기울어진 배가 언제 전복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는 배의 승무원과 함께 그들을 구하려고 사력을 다했다.

 그들은 결국 제인 치안파라를 그 잔해에서 빼낼 수 있었다. 그러나 마르타 피터슨은 너무 꼭 끼여 있어서 그녀를 구출하려면 큰 잭이 필요했다. 두 남자는 어렵게 잭을 하나 확보했다. 그러나 희망은 기울고 있었다. 새벽 4시 20분, 5시간 동안이나 분투해서 간신히 잭을 제위치에 설치했는데, 갑자기 그리고 조용히 피터슨부인은 그녀의 남편에게 중얼거렸다.  오, 여보, 나는 이제 떠나려나 봐요, 나는 떠나려나...  상황은 끝났다. 피터슨은 배가 가라앉기 직전 구명 보트로 안드레아도리아호를 탈출했다.

 제인 치안파라는 모든 가족을 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스톡홀름호의 뱃머리가 벽면을 관통해 충돌했을 때, 그녀의 딸인 린다 모건은 선실에서 자고 있었다. 충돌의 순간, 부서진 스톡홀름호의 뱃머리가 그녀의 침대를 쳐, 그녀와 매트리스는 스톡홀름호로 거의 아무런 충격없이 옮겨져 안드레아도리아호에서 떨어져 나갔던 것이다. 이틀 동안 린다 모건은 안드레아도리아호의 사망자 명단에 들어 있었다. 그녀가 뉴욕에 옮겨졌을 때 그녀의 아버지인 뉴스진행자 에드워드 모건은 그의 잃어버린 딸이 살아 돌아왔음을 알았다. 린다의 병상에서 그는 다른 병원에 있는 제인 치안파라에게 전화했다.  사람들이 기적이라 부르는 일이 벌어졌어요.  그는 몹시 기뻐했다.  나는 지금 그 애와 함께 있소.

 근처에서 항해하던 선박들의 즉각적인 조치와 사람들의 용기로 안드레아도리아호의 이야기는 해양사에서 가장 위대한 해난 구조의 전설이 되었다. 안드레아도리아호에서 재난 구조신호가 나가자, 모든 방향에서 배가 나타나 구조에 나섰다. 안드레아도리아호에서는 46명의 승객이 사망했으며 스톡홀름호의 승무원 5명도 사망했지만, 1660명의 승객은 그날 밤, 죽음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최고의 승리를 맛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