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의 참사 - 뉴질랜드


















   돌발적 홍수로 최악의 철도 사고가 일어나다

 원주민 마오리족이 탕기와이, 즉  통곡의 강 이라고 부르는 뉴질랜드 오지를 가로질러 흐르는 강이 1953년 크리스마스 이브 자정 조금 전, 그 이름에 걸맞게 갑작스럽게 무자비한 모습으로 변모했다. 밤 10시 15분쯤, 27세된 우편배달부인 시릴 엘리스는 트럭을 몰고 탕기와이강의 다리를 막 건너려다 급히 브레이크를 밟고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앞을 응시했다. 평소 잔잔히 흐르던 황가에후강이 격류로 변해 있었으며, 평상시 수위를 훨씬 넘어 다리가 완전히 물에 잠겨 있었다. 자갈, 진흙, 화산재, 얼음 덩어리들이 몇 킬로미터 밖에서도 들릴 정도로 굉음을 내며 흘러가고 있었다.

 주위를 살펴보기 위해 그는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다가오는 기차의 불빛을 보고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 100m쯤 떨어진 상류쪽에 위치한 철교를 볼 수는 없었지만, 그 다리 역시 열차가 통과할 수 없으리라는 것은 분명했다.(철교를 볼 수 있었더라면 그의 피가 얼어붙었을 것이다. 철교의 중앙 부분 전체가 파괴되었으며, 단지 선로가 2개의 실처럼 이어져 있었다.)철교 제방을 향해 달려가면서 엘리스는 경부를 보내기 위해 손전등을 흔들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어 보였다. 더욱이 기차가 소리를 내며 지나갈 때, 그는 그것이 화물 열차가 아니라 웰링턴과 오크랜드 사이를 운행하는 야간 특급 열차인 것을 알았다. 막 왕위에 오른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를 보려는 주말의 가족들로 오크랜드행 아홉개의 객차가 꽉 차있었다. 몇 초 후에, 그는 그들의 비명 소리를 들었다. 기관차와 급수차, 그리고 5개의 객차가 격류에 추락했다. 뒤쪽에는 여섯번째 객차가 철로 위에 남아 있는 3개의 객차에 간신히 연결된 채 철교 끝에 45도 각도로 매달려 있었다.(그나마 세개의 객차를 구출한 것은 열차에 경고를 보낸 엘리스의 노력 때문이었다. 나중에 엔진 잔해를 조사해 본 결과, 기관사가 흡기판을 급히 닫고 비상 브레이크를 밟고 격류로 돌진하기 직전, 후진 기어를 젖혀 놓았음을 알 수 있었다.)

 엘리스는 미친 듯이 열차쪽으로 달려갔다. 도중에 얼이 빠진 경비원을 만나 함께 서둘러 철교 끝에서 흔들리는 열차로 갔다. 놀란 나머지 꼼짝 못하는 승객들로 객차가 꽉 차 있는 것을 보고, 그는 뒷문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끌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명도 구조해 내지 못하고 객차가 갑자기 기울어졌다. 연결장치가 끊어졌고 이내 소용돌이 치는 10m 아래의 급류로 떨어져 버렸다.

 그 순간은 영원처럼 느껴졌다. 엘리스와 다른 사람들이 꼼짝도 못하고 서 있는 동안에 객차는 어둠 속에서 급류에 처박혀 굴렀고, 물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마침내 약 60m 정도 끔찍하게 굴러간 후에, 객차는 무엇인가에 충돌하며 한쪽으로 기울어져 멈췄는데 다른 쪽 면은 수면 바로 위에 나와 있었다. 놀랍게도 엘리스의 손전등은 아직 작동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더욱 놀라운 일이었지만, 승객들이 아직 살아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즉시 구출해내지 않으면 그들은 곧 죽게 될 것이었다. 물과 진흙과 얼음 조각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하게 그객차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엘리스는 머리 위의 창문을 깨어 구멍을 냈다. 현장에 모인 다른 사람들과 함께, 90분 동안 객차 안의 사람을 모두 끌어 올려 구조했다.

 자정 무렵 상황은 끝났다. 객차 안의 22명 중, 좌석 아래 검은 물 속에서 익사한 한 소녀를 제외하고 전원이 구조되었다. 그러나 다른 곳의 구조 결과는 훨씬 더 암울했다. 앞 차에 있었던 승객 중 몇 명은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생존자는 전부 28명이었는데, 그중 한 노부인은 300m나 떨어진 하루에서 목까지 토사에 잠긴 채 발견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녀보다 불운했다. 사체 수색은 단 달간 계속되었는데, 피해자 중 20명은 실종되었다. 최종적인 공식 사망자 수는 승객 151명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열차의 총 승객수는 285명이었다.

 뉴질랜드 전체가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역사상 최악의 열차 사고가 영국 군주 최초의 공식 방문이라는 국가적 경사에 때맞춰 일어난데다 그 사고 원인이 확연히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그 예측 못했던 홍수가 폭우나 화산 분출 때문인 것으로 보도되었으나, 실상은 추측을 훨씬 벗어난 것이었다.

 탕기와이 북쪽 약 35km 지점에 뉴질랜드 북부 섬 최고봉인 해발 2798m 높이의 루아페후산이 솟아 있는데, 그 정산은 쌍둥이 화산분화구로 되어 있다. 1945년과 1947년 사이의 일련의 분출을 제외하고, 최근에는 그 화산이 별다른 활동을 보이지 않았다. 그 지방 전설에 따르면, 그 산은 산들이 서로 사랑하고 불의의 밀회를 하던 시절에 실연의 고통을 당했기 때문에 외로이 한숨을 쉬는 여자산이라고 한다. 루아페후라는 이름은  2 와  폭발하다 또는 큰소리를 내다 라는 마오리족의 언어를 결합한 것이다.

 정상에서 약 300m 아래에 화구호가 있는데, 산성의 뜨거운 온천수가 만년설로 덮인 정상과 기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화산 증기가 호수 바닥에서 부글부글 끓어 올라와 때때로 표면에 형성된 노란 유황층을 휘젓곤 한다. 보통 넘치는 물은 황가에후 빙하의 빙벽 밑 천연 동굴로 흘러 내린다. 그러나 1945년에 호수 한가운데서 시작된 화산 활동으로 검은 용암의 돔이 형성되어 화구호를 거의 메워버렸다. 화산활동이 끝날 무렵 호수는 더 깊어졌지만, 여러번의 분출 때 퇴적한 파편이 천연 출구를 막아 버렸다. 새로운 출구가 빙벽 밑의 막힌 곳을 뚫고 생겨났지만, 그것으로는 불충분했다. 호수의 수위가 평상시보다 8m 위로 상승하자 압력은 계속 증가했다. 마침내 그 빙벽은 웰링턴--오크랜드 특급열차가 탕기와이에 닿기 2시간 전에 무너졌다.

 물과 진흙, 빙하 그리고 돌이 뒤섞여 강력하게 흘러내리는 것을 라하라고 한다. 특히 콘크리트와 같은 농도, 즉 물이 30퍼센트 정도인 고농도의 진흙물은 계곡이나 하상을 엄청난 힘으로 훑으며 내려 온다. 이것이 황가에후강으로 강력하게 휘몰아치는 바람에 기차 일부분이 2km 이상 하류로 떠내려 갈 정도였다.

 오늘날에는 루아페후산에서 또 다른 갑작스런 라하가 있을 경우를 대비하여 재난경보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고, 주면의 아름다운 지역은 여행과 겨울철 스포츠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평온하지만, 재난에 대한 기억은 지워지지 않고 있다. 많은 뉴질랜드인들이 휴일 라디오 프로그램이 갑자기 취소되고 생존자 명단이 방송되던 그 크리스마스를 아직 기억한다. 그리고 매년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울부짖는 황가에후강을 건너는 기차는 속도를 서서히 늦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