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의 무시무시한 눈사태


















   사상 최악의 재앙을 불러온 알프스의 눈사태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서 1950년에서 51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은 평소와 다름없이 찾아왔다. 12월에는 특히 춥고 구름이 많이 끼긴 했지만 산발적으로 눈보라만 몰아쳤을 뿐 알프스의 봉우리와 칼날 같은 계곡에 내린 눈은 평소의 반 정도밖에 안됐다. 적설량 부족에 실망한 휴양지 경영주들과 스키 애호가들은 시즌을 망칠까봐 걱정이 대단했다. 그러나 급변하는 기상조건은 그들의 걱정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재앙을 준비하고 있었다. 얼마 후 극심한 눈보라가 스위스에서만 1300회 이상의 눈사태를 몰고 와 알프스의 험준한 산간지대를 전례 없이 잔인하고도 숨막히는  백색의 죽음 으로 뒤덮었기 때문이다.

 1월 중순으로 접어들면서 온난 다습한 기류가 스페인 해안으로부터 북동쪽으로 밀려 들어왔고 그것은 다시 남쪽으로 흐르는 북극 지방의 한냉한 기류와 부딪쳤다. 동시에 태풍의 영향으로 악화된 저기압골이 발트해 지역으로부터 접근하여 이미 형성되고 있던 폭풍우의 힘을 한층 더 강화시켰다. 1월 15일에 첫번째 큰 눈이 알프스를 뒤덮기 시작했다. 이틀 후, 해가 나면서 눈보라가 잠시 멈췄다. 그러나 그때부터 대규모의 폭풍이 굉음과 함께 되살아나 눈보라를 몰고 왔는데 채찍질하듯 매섭게 몰아치며 울부짖는 듯한 소리를 내는 바람에 실려온 이 눈보라는 대낮을 캄캄하게 만들었다.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진 강설양도 엄청나서 때로는 시간당 10--15cm나 내렸다.

 알프스 사람들은 경험에 의해 눈사태가 났을 때 신속한 구조의 절대적 중요성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눈사태로 인해 조난된 사람은 가장 먼저 얼음, 바위, 나무 등 여러 가지 파편들에 부딪쳐 부상당하거나 의식불명이 될 위험에 처한다. 가루눈이 쏟아질 때는 숨을 쉬려고 하는 본능에 의해 질식사하기 십상이다. 추산한 바에 따르면 눈사태를 만나 갇힌 사람의 35퍼센트가 부상 또는 질식에 의해 거의 즉사한다고 한다.

 이 두 가지 위험을 비껴간 사람들은 곧바로 또 다른 위험을 맞는다. 그들은 굳어 가는 시멘트와 같은 무게와 강도를 가진 눈더미에 생매장되기 때문이다. 눈은 압력을 받으면 얼음으로 변한다. 심지어 가루 상태의 눈조차도 수 초내로 단단하게 굳어 질 수 있다. 눈사태의 피해자가 눈더미가 덮쳤을 때 곧바로 헤치고 빠져나오지 못하면 그가 탈출할 수 있는 가능성은 급격하게 줄어든다. 만일 구조대가 조난 장소에 신속하게 도착하지 못 한다면, 도착해도 분간하기 어려운 거대한 눈더미 아래에서 조난자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산소는 곧 없어질 것이다.

 알프스 사람들은 이러한 엄청난 눈과 강풍이 뜻하는 바를 또한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1월 19일 오전, 나이가 지긋한 도로 노동자인 부르텔 그로스가 스위스 동부에 위치한 오펜계곡에서 제설 작업을 마친 후 점심을 먹으러 나타나지 않자 그의 이웃들은 지체없이 구조대를 조직했다. 오후 2시 45분에는 이미 한 구조대원이 발바르클리의 오펜계곡 도로를 가로질러 덮친 눈사태 속을 수색하고 있었다.

이곳은 인계곡으로부터 남동쪽으로 이탈리아쪽을 향해 튀어나와 있는 스위스 국경의 지협이었다. 5면의 구조대원과 한 마리의 훈련받은 구조견으로 이루어진 한 분대가 약 45분 후 한 가파른 협곡에서 그로스의 시신을 발견했고 즉시 시신 수습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천둥 같은 굉음이 들려왔고 눈가루 더미가 구름떼처럼 발바르클리를 덮쳐 왔다. 5면의 구조대원과 구조견은 계곡 아래로 내팽개쳐져 얼음장 같은 눈으로 뒤덮혔다.

 이것은 오후 3시 40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로부터 원래 조난된 사람, 그를 구조하려던 5명의 대원들, 그리고 구조견을 찾기 위한 수색이 시작됐지만 새로운 구조대원들이 보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땅거미가 내릴 때까지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구조팀은 눈보라와 어둠에도ㅛ 불구하고 밤 11시경까지 파편들을 헤치며 작업을 계속했다. 그때 세번째 눈사태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빠른 속도로 덮쳐 왔다. 무장이라고는 손전등이 고작이고 사전 경고도 듣지 못했던 구조대원들 위로 파도처럼 강풍이 몰아쳐 에르네스트 투트라는 대원이 안전지대로부터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가 생매장되었다.

 한 구조견이 투트를 90분 후에 발견했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더 이상의 생명을 내걸 수는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생존한 구조대원들이 철수했다. 발바르클리에 일곱 사람을 묻어둔 채였다. 그들 중 여섯 명은 부양할 가족이 있는 가장이었다.

 발바르클리에서 시도된 불운한 구조 작업은 이중으로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왔음이 드러났다.

 구조대원 중 주오즈라는 마을 출신의 한 대원은  주오즈 눈사태 대책위원회 의 구성원이기도 했다. 이 위원회는 수세기 동안 그 마을을 위협해 온 눈사태에 대하여 예방조치를 취할 책임을 지고 있었다. 그들의 주된 방위 수단은 박격포였다. 박격포를 쏴서 눈더미가 아직 작을때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러나 오직  눈사태 대책위원회 만이 대포의 사용을 명령할 수 있었고 그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결정적으로 중요했던 19일 오후 내내 박격포 사용의 필요성을 절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필요한 허가를 받을 수 없었다. 마을 언저리에 계속 눈이 쌓이는데도 대책위원회의 위원장도, 마을의 촌장도 박격포 발사에 대한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다. 그것이 어쩌면 자연적으로 일어날 눈사태보다 더 강력한 눈사태를 유발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1월 20일 오전 10시, 주민들은 아직 전화로 통화가 가능했던  눈과 눈사태 연구를 위한 스위스 연방 연구소 의 조언을 구했다. 답변은 신속했고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즉각 발포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촌장은 결단을 내리기를 주저하여 마을 회의를 소집했고, 주민들은 거센 눈보라가 엄청난 무게의 눈을 계속해서 쌓아가고 있는 동안에도 오후까지 토론을 계속했다.

 오후 3시 30분, 마을의 지도자들은 발포를 결정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포대의 책임자가 계곡으로 올라가는 것을 거부했다. 너무 위험하다는 것이다. 포대장은 그대신 그의 친구들과 함께 포를 마을 끝에 옮겨놓고 이 새로운 발사 위치에 알맞는 고도, 각도, 장전할 화약의 양 들을 대강 계산했다. 그리하여 4시 5분에 비로소 포탄이 몰아치는 눈보라 속으로 발포됐다.

 폭발음을 기다리던 그들은 폭발음 대신 나즈막히 읊조리는 듯한 이상한 소리를 들었고 한 차례의 눈사태가 벼락처럼 쏟아져내려 그들을 덮쳤다. 한 사람은 헛간으로 내동댕이쳐졌고 또 한 사람은 목까지 눈에 묻혔다. 포대장은 아예 완전히 생매장됐지만 동료들이 아슬아슬하게 구해냈다. 이 눈사태는 몇 채의 가옥을 뒤덮고 4층 건물을 파괴했으며 5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동안 이와 유사한 비극들이 마비되어 버린 그 지역 전체에 걸쳐 계곡마다 일어나고 있었다.

 알프스에 있는 수십 곳의 다른 마을들과 휴양지들 역시 수십만 통의 눈과 얼음이 때로는 시속 160km가 넘는 속도로 쏟아져 내리면서 제각각 끔찍한 일들을 당해야 했다. 한 목축업자는 대피 경고를 무시했다가 자기 자신은 물론 아내와 다섯 자식들까지도 떼죽음을 당했다.

한 여인은 대피하기 전에 설거지를 끝내려다 죽고 말았다. 다섯명으로 이루어진 한 가족은 안전한 곳인줄 알고 길을 따라 걷다가 눈사태에 묻혔다. 어머니와 두 자녀는 구조되었지만 아버지와 아들 하나는 죽은 채로 발견됐다.

 눈보라는 1월 22일에 이르러 드디어 잦아들었지만 그것이 남긴 유산은 보기에 끔찍했다. 도로와 철도는 봉쇄됐고 전기, 전화 등 공공 시설망을 마비될 위험에 처해 있었으며 사람과 가축들은 곳곳에 고립되어 있었다. 추르와 아로사 간의 철도 터널의 양쪽 입구가 눈에 매몰되었을 때 그 안에는 승객을 실은 열차가 갇혀 있었다. 남자들이 탈출로를 만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눈을 파내는 동안, 약 25명의 여자와 어린이들은 서로 부둥켜 안은 채 길고 불안한 밤을 지새야 했다. 오스트리아의 하일리겐블루트는 더욱 불운했는데 한 목격자의 말을 빌면 여기에서는 한밤중에  지진이 난 것처럼  눈사태가 덮쳤다고 한다. 그 결과 가옥들이 파괴되고 15명이 생매장됐으며 마을 주민들이 미친 듯이 눈을 파헤쳤지만 단지 3명만을 구해냈다.

 눈사태는 한 곳에서는 5명, 또 다른 곳에서 십여명, 이런 식으로 사망자 숫자를 늘려 갔다. 각 마을에서 천천히 그러나 슬프게 시체들을 발굴했고 이것은 생존자들의 개인적 비극을 더욱 심화시켰다. 스위스, 오스트리아, 그리고 북부 이탈리아에 있는 수백개의 마을들은 재난의 하얀 장막을 거둬내고 평상시의 평온한 생활을 회복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공포의 겨울 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 도리가 없었다.

 2월 초순, 엄청난 눈보라가 다시 남쪽의 도시와 촌락들을 휩쓸기 시작했다. 거의 최고 기록에 육박하는 하루 120cm의 속도로 폭설이 내렸고 어떤 곳에서는 2주 동안 눈이 4m나 쌓였다.

 날카로운 천둥 소리와 같은 눈사태의 메아리가 곧 다시 알프스에 울려 퍼졌다. 스위스의 안더마트지방 남동쪽 이탈리아 접경에 위치한 프라스코라는 마을에서는 너비가 약 200m에 달하는 거대한 눈더미가 1128m 높이에서 떨어져 내려왔다. 사망자는 기적적으로 4명에 불과했지만 이 눈더미의 제거를 위해 투입된 병사들이 마지막으로 철수한 것은 7월에 이르렀을 때였다.

 이 두번째의 눈사태에서 가장 심한 타격을 받은 지역은 안더마트 남쪽 아이롤로라는 마을인데 이곳은 발라시아 혹은 그 지역 말로  악의

계곡 이라 일컬어지는 협곡의 구불구불한 능선 가까이에 위치해 있다. 두 번의 무지막지한 돌풍에 의해 약 50만톤의 진눈깨비가 이 마을을 휩쓴 것은 2월 12일이었는데 10명이 죽고 여러 채의 건물들이 손상됐다.

 이것도 마지막이 아니었다. 너무나 많은 양의 눈이 쌓인 나머지 4월 중순까지 눈사태가 계속되었다.  공포의 겨울  동안 눈사태에 의한 전체적인 피해는 오직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오스트리아, 스위스, 이탈리아 그리고 프랑스에서 총 280명의 사망자가 확인되었다. 더욱 끔찍한 것은 약 1400마리의 가축이 몰살당했고 어떤 지역에서는 전체 야생 동물의 절반이 소멸됐다는 사실이다. 또 약 6075헥타르에 달하는 방설림이 파괴됐다.

 알프스의 겨울은 언제나 아름다운 만큼이나 위태로웠으며 눈사태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희생자를 낼 것이다. 그러나  공포의 겨울이 그대로 되풀이될 것 같지는 않다. 1951년초의 극심한 눈보라가 사납긴 했지만 그것만이 원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12월의 비정상적으로 추었던 날씨는 초겨울에 내렸던 눈을 금속 베어링처럼 미끄러운 얼음 알갱이의 거대한 덩어리, 이른바 매끄러운  설탕눈  층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초기의 강설량이 많아서 눈사태가 났을 때 자연적 장애물로 쓰일 수 있는 것들을 덮어 버리기도 했다. 첫번째 폭풍이 불었던 1월에도 새로 내리는 눈이 흩어지지 않고 잘 쌓여 있도록 기온이 충분히 떨어졌었다. 뿐만아니라 산악지대의 사나운 바람은 알프스의 높은 봉우리의 눈을 쐐기 모양의 널빤지나 처마 차양처럼 깎아서 고속으로 덮쳐 오는 눈사태가 쉽게 일어날 수 있게 했다.

 이처럼 여러 가지 요소들이 끔찍하게 어우러져 재난을 위한 조건이 마련되었던 것이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눈사태에 잘 대처할 수 있는 경험은 물론, 사용 가능한 무기들도 가지고 있었다. 높은 산봉우리에서 눈덩어리를 안전하게 떨어뜨릴 수 있도록 고안된 폭약, 법으로 보호받으면서 눈이 위험하게 쌓이지 않게 방지하는 기능을 하는 방설림, 취약 건물들에 설치하는 쐐기 모양의 외벽, 그리고 훈련받은 구조견들이 바로 그런 무기들이었다. 그러나 폭풍과 만년설의 독특한 규모, 배열, 시기 등이 인간의 그러한 고안물들을 간단히 압도해 버린 것이다.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의 군대들이 이탈리아 알프스 양편에서 각각 상대편 쪽에 눈사태라는 백색 죽음을 유도하기 위해 곡사포를 쏘았었는데, 한 목격자는 이렇게 간단하게 말했다.  그것은 불쌍한 죽음이다.

   눈사태에 휩쓸려 간 스키 정찰대원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을 1967년 강타한 눈사태의 생존자인 스키 정찰대원 리처드 포터는 그때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이렇게 술회했다.

  나는 산 위쪽에서 눈더미가 나를 향해 돌진하는 것을 보았다. 스키를 타고 내려오다 눈더미에 얻어맞고 쓰러졌다. 스키 지팡이를 떨어뜨렸지만 눈에 파묻히지 않으려고 지팡이를 붙잡고 헤엄치듯 발버둥이쳤다. 마침 옆으로 누운 자세로 멈추었는데, 하도 몸부림을 쳐서 발이 머리 위로 가 있었다. 위에서 쏟아지는 눈이 나를 파묻고 있었기 때문에 고개를 좌우로 돌려 간신히 작은 공기 구멍을 만들었다.

눈사태는 시작할 때 그랬듯이 신속하게 끝났다. 위쪽에서는 우드득하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주위의 눈이 얼어붙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젖은 시멘트 부대 속에 들어 있는 느낌이었고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하지만 신속한 구조 덕택에 이 이야기는 행복한 결말로 끝날 수 있었다. 1시간 5분만에 구조대에 의해 발견된 그는 파랗게 질려 의식을 잃었지만 살아 있었다.  

   

 눈사태는 산허리가 쌓인 눈을 더 이상 감당 할 수 없을 때 발생하는데, 한 줄기의 바람, 한 번의 진동, 쓰러지는 한 그루의 나무, 스키를타는 사람조차도 눈더미를 굴리기 시작할 수 있다. 눈사태의 종류로는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부드럽게 내리치는 눈사태로((그림 맨 앞)대개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은 눈으로 되어 잇다. 이것이 내려오면서 숨막히는 눈가루 구름으로 변한다. 두번째는 강하게 내리치는눈사태인데(그림 가운데) 무겁고 단단한 눈더미가 장애물에 부딪히면 치명적인 거대한 얼음 조각들로 깨진다. 세번째는 봄에 발생하는 것으로 대개 물과 눈이 섞여 있는데 산비탈을 서서히 그러나 사정없이 흘러 내려온다(그림 맨 뒤)  시속 320km까지 돌진할 수 있는 고속 눈사태는 대개 몇 분 안에 끝난다. 가장 큰 규모의 눈사태는 눈, 얼음, 바위, 나무 등을 수백만톤 이상 운반한다. 이 괴물들은 0.0993 평방미터당 9072kg의 충격 압력을 가하면서 15--20초 사이에 약 915m의 산비탈을   어내릴 수 있다. 게다가 이런 눈사태들이 만드는 강력한 바람의 진동만으로도 나무들을 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