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동력 원유 바닥 드러낸다

















석유매장량이 22년 사용치밖에 남아있지 않다는 72년 로마클럽의 보고서는 거짓이 돼버렸다. 그러나 무분별한 소비로 인해 석유매장량이 조만간 바닥을 드러낼 것이라는, 에너지 재앙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무게를 얻고 있다.

파리에 본부를 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내놓은 장기전망 보고서에서 2040년이면 석유가 완전히 고갈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매년 평균 2%의 세계 석유소비 증가율로 보아 전 세계에 묻혀 있는 1조376억 배럴의 석유가 40.9년 뒤면 완전히 자취를 감춘다는 얘기다.

하지만 석유가 바닥나는 시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바닥을 드러내기 이전에 공급이 만성적으로 수요에 비해 부족해지는 `공급부족 시점'(피크 타임)부터 인류의 에너지 재앙은 시작되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는 2020년을 기점으로 석유의 공급과 수요가 불균형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요는 계속 늘지만 뽑아낼 석유가 없다. 석유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70년대의 1·2차 석유위기 때처럼 경제적·심리적 공황상태가 반복되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 오일쇼크가 중동 지역의 특수한 정치적 문제로 불거진 `일시적' 위기였다면, 2020년부터 닥칠 위기는 석유 공급 부족을 회복할 길이 없는 `항구적 위기'이다.

에너지기구의 전망은 그나마 `낙관적인' 축에 든다. 세계적인 석유 전문가 콜린 캠벨과 장 자레르는 2001~2010년 사이에 `항구적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들의 전망이 맞는다면 지난 20여년 동안 인류가 누려온 달콤한 저유가의 시대는 조만간 종말을 고하는 셈이다.

이들이 위기의 시점을 이렇게 앞당겨 잡는 이유는 산유국들이 보고하는 석유매장량이 실제보다 부풀려져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제석유기구로부터 더 많은 석유생산량을 할당받기 위해, 국민들에게 정치적 선전을 하기 위해, 석유개발에 필요한 국제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산유국들은 석유매장량을 종종 과장하곤 한다.

산유국들이 석유쿼터를 더 할당받으려고 치열하게 경쟁하던 87년 베네수엘라는 석유매장량을 200억배럴 가량 부풀려 보고했다. 같은 시기 중동 산유국들이 보고한 매장량도 전년 대비 2000억배럴이 늘어났다. 특히 이라크는 87년 석유매장량을 1000억배럴이라고 보고했다. 이는 전년도 470억배럴에서 두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북해 유전의 추정매장량이 130억 배럴인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석유매장량의 증가지만 단 1년 사이에 이처럼 거대한 새 유전이 발견됐다는 보고는 없었다. 그러나 국제석유기구들이 산유국들의 과장된 보고를 검증할 길은 없다. 석유매장량은 민감한 국가기밀에 속하기 때문이다.

두 전문가는 면밀한 통계적 검증을 통해 97년 각종 국제기구들이 발표한 1조200억배럴의 석유매장량은 실제로는 8230억배럴에 불과하고 진단했다. 항구적 석유 위기가 다음 세기에 들어서자마자 우리의 일상을 습격한다는 전망의 근거이다. 새로운 유전의 발견을 통해 석유매장량이 증가할 가능성은 없을까. 세계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지질연구소의 책임연구원 로버트 가틀리프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카스피해를 제외하고는 80년 이후로 추정 매장량 130억 배럴의 북해 유전이나 100억 배럴의 알래스카 유전에 맞먹는 매머드급 유전이 발견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세계 석유발견량은 62년 북해유전 발견 등으로 정점을 이루다가 그 이후로 모든 지역에서 급속히 떨어졌다. 각국이 새로운 유전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켰던 점을 감안하면 경제성 있는 대형 유전이 추가로 발견될 가능성은 희박한 셈이다.

석유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펼치는 쪽은 석유위기가 임박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을 `양치기 소년'에 비유한다. 70년대에는 `석유 20년 고갈설'을 주장하다가 20년이 지난 지금은 `40년설'을 들먹이며 위기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40년이 지난 뒤에도 석유는 여전히 그다음 40년 동안 쓸 양이 남아 있을 수 있다.

낙관론자들은 시장 기능과 기술 발전을 신봉한다. 공급이 부족해 석유가격이 상승하면 석유회사들은 생산비용이 높아 폐기했던 유전들에 다시 손을 대기 시작한다. 석유가격의 상승은 또한 소비를 억제시킬 뿐만 아니라 에너지의 효율적 이용방법과 대체 에너지 개발을 촉진시킨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인간의 끊임없는 기술개발로 심해에 묻혀 있는 석유를 저렴한 비용으로 생산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다.

그러나 낙관론자들의 시장만능주의가 항구적 석유 위기의 대안은 아니다. 오히려 석유가격의 상승은 안정되고 싼 가격으로 쉽게 얻을 수 있는 에너지 자원이 없다는 것을 반영한다. 석유회사들이 유가의 상승에 매력을 느껴 더욱 유전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매장량이 급격히 늘지 않는 한 이런 노력의 효과는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세계에너지기구의 분석에 따르면, 석유는 95년 세계에너지 공급원의 40%를 차지한다. 그러나 2020년에도 에너지 공급의 석유 의존도는 38%로 좀처럼 낮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비해 수력이나 풍력 등 대체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에도 95년과 똑같은 3% 수준에 불과할 것으로 에너지기구는 전망한다. 공급부족 시점까지 사용의 광범위함과 편리성, 저렴한 가격, 공급의 안정성 측면에서 석유를 대신할 만한 에너지원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결국 예측할 수 있는 한 에너지 재앙은 인류가 피해갈 수 없는 수순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