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제 없는 감염질환 몰려온다



















언제부턴가 `전염병'이라는 단어가 매스컴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전염병의 시대가 다시 온다' `슈퍼 박테리아 등장' `세균의 대반격' `20세기의 페스트' 등등. 이런 무시무시한 표현들이 단지 언론의 과장일까.

지난 97년 4월7일 건강의 날, 세계보건기구(WHO)가 내건 슬로건은 `새로 떠오르는 감염질환들―전지구적 경보, 전지구적 대응'이었다. 세계보건기구가 펴낸 1996년 세계보건보고서의 주제도 역시 감염질환이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지난 94년 `새로 떠오르는 감염질환들―미국의 예방전략'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다시 2차 보고서 `새로 떠오르는 감염질환들―21세기 예방전략'을 발표했다. 미국립보건원(NIH) 감염질환·알레르기연구소의 감염질환 관련 예산은 지난 93년 3930만달러에서 올해 8500만달러로 증가했다. 확실히 감염질환은 90년대 들어 세계 공공보건 분야의 주요 관심사가 됐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들은 왠지 호들갑처럼 보인다. 지난달 14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질병통제예방센터. 지난 46년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전염병센터로 시작한 이 기관은 대장균 O-157이 등장했을 때 발빠르게 그 원인을 밝혀내고 전국의 햄버거를 수거해 다시 한번 그 철통같은 감시망을 과시했다. 방문객들을 위한 교육용 전시장에 있는 책자, 팜플렛 등을 살펴 보았다. `감염질환의 위협' `감염질환을 막기 위한 10계명' 등 대부분 감염질환에 관한 내용이었다. “미국질병통제센터의 가장 중요한 일이 감염질환 예방입니까?” 홍보담당 직원인 샤론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감염질환은 자극적이기 때문에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에 좋죠. 하지만 감염질환은 우리 센터에서 다루고 있는 질환 중 일부분일 뿐이예요. 사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제는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담배를 피운다는 거죠. 정말 심각한 문제는 만성질환이예요.” 실제로 선진국의 감염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은 지난 85년 5%에서 97년 1%로 감소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다시 감염질환을 이야기하는가?

(사진/ 위험한 병원체의 확산을 막기 위해 공기 누출 차단장비가 부착된 이동식 격리기를 이용해 환자를 옮기고 있다.)

20세기 초반까지 감염질환은 항상 인류생존에 가장 큰 위협 중 하나였다. 페스트, 매독, 나병, 천연두 등 인류는 끊임없이 감염질환과 싸워야 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경제발전, 백신·항생제 개발 등이 이루어지면서 감염질환은 극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감염질환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갔고 인류는 감염질환을 `정복'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이 착각이었음이 밝혀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이 포도상구균을 치료할 힘을 잃어버린 것은 이미 1950년대의 일이다. 지난 97년에는 드디어 포도상구균을 치료할 수 있는 마지막 항생제였던 반코마이신에 대한 내성이 일본에서 나타남으로써 의학계를 절망에 빠뜨렸다. 레지오넬라병, 라임병, 에볼라출혈열, 한타바이러스 등 7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신종 감염질환은 지금까지 30여개에 이른다. 이 중 사람들을 가장 큰 충격에 빠뜨린 것은 역시 에이즈일 것이다. 한때 감소추세로 접어들었던 전통적인 감염질환인 말라리아와 결핵도 `바닥을 치고' 다시 증가하고 있다.

인간이 방심하고 있는 동안 미생물은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립보건원 감염질환 및 알레르기 연구소 안토니 파우치 소장은 “감염질환은 그 형태를 바꿀 뿐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인류가 이 사실을 잠깐 망각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감염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1%에 불과하면서도 선진국들이 부산하게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도 단순히 현재의 상태가 아니라 그 추세와 가능성에 주목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옛날보다 더 상황이 나빠졌는지도 모른다. 물론 인류는 옛날보다 더 좋은 의학기술과 방역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깨끗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현재 삶의 조건이 인류에게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안 감염질환센터의 부소장 맥데이드 박사는 “인간은 노령화와 인공이식, 항암치료 등의 영향으로 면역력이 약해지고 있다. 반면 미생물은 끊임없이 진화하며 더 강력한 돌연변이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인간과 미생물을 이어주는 환경의 변화도 중요한 요소다. 지구온난화, 무분별한 자연개발 등의 영향으로 생태계가 파괴되면서 여기저기서 새로운 미생물들이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해외여행과 식품무역 등이 보편화되면서 미생물들이 국경을 넘나들며 병을 퍼뜨리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해 보자. 공기를 통해 무서운 속도로 전염되지만 인류는 백신이나 치료제를 가지고 있지 않는 어떤 바이러스가 나타나 인류의 3분의 1을 몰살시킨다. 아마도 이런 우려는 혜성충돌을 그린 영화처럼 과장된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맥데이드 박사는 “그런 가능성을 절대로 배제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독감 하나만으로도 인류는 얼마든지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실제로 지난 1918년 유행했던 독감은 세계적으로 2천만명을 죽였다. 그리고 인류는 아직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확실한 백신도, 치료제도 개발해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아마도 그렇게 심각한 전염병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가능성을 무시함으로써 목숨을 잃는 도박을 하고 싶지는 않다.” <바이러스 헌터>의 저자 C.J 피터 박사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