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전쟁 인간과 미생물의 싸움



















지난달 11일 미국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 자리잡고 있는 미국립보건원 산하 감염질환 및 알레르기 연구소.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가 감염질환의 발생을 감시하고 예방하는 좀더 실용적인 활동에 역점을 두는 데 비해 이 연구소는 백신과 치료제 개발의 바탕이 되는 기초연구에 힘을 쏟는 곳이다.

기생충질환 의학곤충학과에서는 지금까지의 백신과 근본적으로 다른 `말라리아 전염차단백신'을 개발중이다. 모하메드 사하부딘 책임연구원은 “지금까지의 백신이 `이기적 백신'이었다면 이 백신은 일종의 `이타적 백신'”이라고 설명한다. 말라리아는 모기를 매개체로 하는 말라리아원충이 인간의 적혈구를 파괴하는 전염병이다. 그런데 이 백신을 맞은 사람의 피를 빤 모기 안에서는 열대열말라리아 원충이 자라지 못한다. 자연히 그 후 이 모기는 다른 사람을 물어도 말라리아를 퍼뜨리지 못한다.

그 옆 연구실, 말라리아 유전학과에서는 말라리아원충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밝혀내는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토마스 웰름 수석연구원은 “적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전자구조를 정확하게 밝혀내면 새 약의 개발도 앞당길 수 있다”고 말했다. 웰름은 현재 이미 내성이 생겨버린 말라리아 치료제 클로로킨과, 내성은 없지만 값이 비싼 퀴나인을 대체할 값싼 새 치료제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아마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가는 연구 중의 하나일 사하부딘과 웰름의 연구는 이 연구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생물과의 싸움 중 단지 일부일 뿐이다.

인류가 감염질환의 원인이 미생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19세기 말이다. 그 뒤 인류는 백신과 항미생물제를 개발해 미생물과 싸워왔다. 한동안 이 싸움은 인간이 우세한 것으로 보였다. 천연두는 소멸했고 소아마비는 2000년까지 근절될 것이라고 세계보건기구는 선언했다. 하지만 곧 치료제에 대한 내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새로운 종류의 미생물들도 대거 등장했다. 전세는 역전됐다. 미생물은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미생물은 유전자수가 적고 재생산이 손쉬워 인간보다 훨씬 재빠르게 환경에 맞춰 진화해나간다. 미생물의 생존능력이 얼마나 탁월한지는 항생제에 저항하는 세균의 예를 보면 잘 드러난다.

항생제는 세균 안으로 들어가 새로운 세포를 만드는 것을 방해하는 물질이다. 저항유전자, 즉 항생제 내성을 획득한 세균은 이 항생제의 기능을 저하시키는 효소를 생산하거나 항생제에 묶여있는 분자 자체를 변화시켜버림으로써 항생제를 쓸모없게 만들어버린다. 저항유전자는 유전으로 물려받을 수도 있고 세균이 자체적으로 돌연변이를 일으켜서 생산하기도 한다. 심지어 저항유전자가 전혀 다른 종에게 수평이동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한번 항생제 내성이 생기면 새 약을 개발하는 데는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게 된다. 지금 전세계 사람들은 항생제를 마구 남용하면서 내성을 부채질하고 있다.

현재 인류는 미생물과의 싸움에 분자생물학, 면역학, 생화학, 유전학 등 지금까지의 모든 과학적·의학적 성과를 총동원하고 있다. 이런 기초연구를 바탕으로 새로운 백신, 새로운 치료제 개발을 위한 다양한 시도가 진행중이다. 백신이나 치료제가 아니라 미생물과 사람의 이어주는 병의 매개체를 통제하는 연구도 한창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을 통해 인간은 과연 미생물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인가? “미생물을 완전히 `정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미생물과 적절한 균형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끝나지 않는 싸움'이다. 하지만 이 싸움의 결과에 대해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 대신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감염질환 및 알레르기 연구소 안토니 파우치 소장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