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뒤덮는 환경호르몬 공포



















`환경호르몬'. `공해'라는 말처럼 일본산 조어다. 학술 용어로는 내분비 교란 화학물질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내분비 장애 물질'로, 언론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환경호르몬'이라고 쓴다. 용어가 통일되지 않을 만큼 갓 등장한 신종 환경오염이다.

최근 2년간 아직 정체조차 확인되지 않은 이 조어에 대한 일본사회의 반응은 실로 극적이었다.

여성 모유속에 환경호르몬 의심물질인 다이옥신이 허용치 이상 농축돼 있다는 후생성 `모유중의 다이옥신 검토회' 발표 뒤 공황상태가 빚어졌고, “모유냐 분유냐”는 대논쟁이 일었다. 컵라면 용기에 스틸렌 등의 환경호르몬 물질이 녹아 나온다는 텔레비전 보도 뒤 업계와 학계가 격돌했다. 시민단체인 `일본자손기금'은 컵라면 제품의 90%는 “먹어서는 안된다”고 회원들에게 통보했다. 거액을 들여 “컵라면 용기에서는 환경호르몬이 나오지 않는다”는 광고까지 내보낸 업계는 소비자들의 동요와 환경단체들의 비판이 계속되자 용기를 종이제품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음료수와 식품용 캔 내부에 부식 등을 방지하기 위해 바르는 에폭시수지 도료에 환경호르몬 의심물질 비스페놀A가 들어 있다는 보도 뒤 생활클럽생협 `용기포장재의 환경호르몬문제에 대한 학습회'가 실험결과를 발표하고 업계에도 자료제출을 요구했다. 회원 2천만명에 가까운 생협쪽의 대응에 놀란 캔 제조업계는 사상 처음으로 자체 실험데이터를 공개했다.

대형슈퍼 등에서는 업무용 포장랩을 태워도 다이옥신이 나오지 않는 비염소계로 대체했다. 백화점에서는 프탈산 에스테르를 포함한 염화비닐제 어린이 장난감 원료들을 바꾸고 있다. 폴리카보네이트로 만든 학교 급식용 식기에서 비스페놀A가 녹아나왔다는 지적이 나오자 당장 207개 지자체가 사용중지 방침을 세웠다.

시민들은 정보와 조직으로 무장하기 시작했다.

이는 환경호르몬을 둘러싸고 일어난 일본사회 동요와 변화 중 극히 일부다. 지난 13일 환경청은 지난해 7~8월 전국 249곳의 하천과 호수 등을 대상으로 환경호르몬 의심물질을 조사한 결과 제초제 2·4D 등 8종류의 농약이 광범위하게 물을 오염시키고 있다고 발표했다. 환경청만이 아니다.

환경호르몬 문제를 쫓고 있는 정부부처는 9개다. 이들 부처 환경호르몬 관련 지난해 예산총액은 183억2천만엔. 집권 자민당은 98년 4월에 `종합경제대책'이라는 명칭의 추가경정(보정) 예산을 확정하면서 제1장 제1항목에 175억엔 규모의 환경호르몬 대책비를 올려 놨다. 예산총액 중 연구소 건설비 등을 뺀 순수 연구·조사비는 절반도 안되는 68억엔에 불과하지만 이는 미 환경보호국 환경호르몬 연구예산의 4배가 넘는다. 적어도 예산상으로는 일본은 세계 최대의 환경호르몬 연구국가인 셈이다.

보정예산 편성 전까지 98년도 환경청예산 중 환경호르몬 관련예산은 겨우 5300만엔이었다. 실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여기에는 97년 9월에 나온 <빼앗긴 미래>(한국어판 <도둑맞은 미래>)라는 책의 일본어판이 큰 구실을 했다. 테오 콜본 등이 지은 이 책은 미국 5대호 주변지역 등 생태계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생물생SIK기 이상 등이 화학물질 오염에 의한 것이며, 농약과 폴리염화비페닐(PCB), 다이옥신, 플라스틱 원료 등 약 70종의 물질이 그 주범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내용은 일본 환경부처 관료들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고 번역출판 뒤 충격은 사회로 급속히 확산됐다.

이에 앞서 97년 5월 의 과학프로그램 `사이언스 아이'에 `환경호르몬'이라는 조어가 표제어로 처음 등장했다. 이 프로그램은 세기말의 불안에 떨던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에스트로겐(여성호르몬의 일종)이니 내분비교란물질이니 하는 `잘 모르는' 용어들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던 사람들은 환경호르몬이라는 매스컴 조어로 사태를 직감했다. 신문과 방송에 환경호르몬 관련기사가 쉴새없이 등장했다. 그 전율은 텔레비전을 통해 한국에도 직수입됐다.

환경호르몬은 일거에 정치·사회문제로 비화했고 자민당과 각 부처에 대책반이 만들어졌다. 예산확대에는 디플레 대책용 내수진작이라는 경제적 계산도 작용했다.

하지만 환경호르몬은 아직까지도 미지의 존재다.

규슈대학 약학부 우치미 히데오 교수는 지적한다. “내분비교란물질인지 아닌지를 평가는 방법은 아직 명확히 확립돼 있지 않고, 생물개체내의 작용 메커니즘도 밝혀져 있지 않으며, 나아가 실제로 사람이나 다른 생물의 내분비계를 교란하고 있는지도 과학적 결론이 아직 나와 있지 않는 등 학문적으로 미해결 부분이 너무 많다.”

지난해 10월 디젤 자동차 배기가스가 쥐의 생식세포를 파괴하고 정자생산 능력을 현저히 떨어뜨린다는 실험결과를 발표해 환경호르몬 논의를 한걸음 진전시킨 도쿄 이과대학 약학부 다케다 겐 교수도 “디젤 배기가스가 쥐의 생식능력을 저하시키는 사실은 확인했지만, 배기가스속의 어떤 물질이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그런 결과를 낳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며 환경호르몬 영향이 과장되는 것을 경계했다. 설사 실험실 세포차원에서 그런 메커니즘을 알아낸다 하더라도 자기방위 및 교정능력을 지닌 생물개체, 나아가 사람에게 동일한 결과가 나타날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도야마 치하루 환경청 국립환경연구소 환경건강부장은 화제의 책 <빼앗긴 미래>에 `과학탐정소설'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사실을 환기시켰다.

그러나 “내분비교란물질의 존재는 지금까지 하던 방식의 환경관리로는 미래 환경의 안전성 확보가 불충분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며 “다음 세대에 비로소 영향이 드러나는 물질의 경우, 그 악영향이 명백해진 시점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우치미 교수의 지적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오존층 파괴와 미나마타 공해병의 원인이 프레온가스와 메틸수은임을 인정하는 데는 오랜 세월이 걸렸고 그때는 이미 상황이 악화된 뒤였다.

매스컴은 필요 이상의 공포감을 조성하는 부작용을 낳았지만 무분별한 화학물질의 사용이 초래할 수 있는 문제를 직시하도록 만드는데 기여했다.

현재 환경청이 1차로 설정하고 있는 주요 환경호르몬 의심물질은 67가지며, 이 가운데 60%는 화학물질 심사 및 제조법에 관한 법률에 의해 이미 규제받고 있는 살충·살균제 등의 농약들이다.

지난달 18일 도쿄에서 열린 일본물환경학회 시민세미나에서는 `환경호르몬의 간이생물평가법'이 발표됐다. 우치미 교수가 연구과제 대표인 환경청 미래 환경 창조형 기초연구 추진제도 공모연구 프로젝트명은 `화학물질에 의한 생물·환경 부하 종합평가방법 개발'이다. 일본은 문제해결의 첫걸음인 검출·평가기술, 처리, 대체기술 개발과 `국민적 인식전환'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