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 : 눈앞에 닥친 위협


















서평 2005.11

“이것은 유성 충돌 같은 종류의 위험이 아니다. 이것은 현재 진행중인 위험이다. 그리고 인간은 위험을 이미 넘어서서 잔잔한 수면을 항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급류를 타고 있는 것이다.”(≪자연의 종말≫ 양문)

최근 지구온난화의 위험과 시급한 대책을 요구하는 책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대부분의 저자들은 녹아내리는 극지방의 빙하와 그로 인한 해수면의 상승, 북대서양 해류의 둔화와 급속한 빙하기의 도래, 수억 명의 기후 난민과 전염병의 창궐, 기아, 사막화, 홍수 등 영화 <투모로우>에서 묘사된 끔찍한 재난들이 가까운 미래에 현실로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매우 높다는 데 입을 모은다.

이런 책들 중에 <뉴요커> 기자 출신의 빌 맥키벤이 1989년에 쓴 책 ≪자연의 종말≫ 10주년 기념 개정판(1999년 출판)은 꼭 한 번 읽어볼 만하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읽기 쉽고 재미있게 쓰였다는 것이다. 불가피하겠지만 지구온난화를 설명하기 위해 딱딱한 과학용어들을 쉴새 없이 늘어놓는 다른 책들과 달리 빌 맥키벤의 설명은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금방 공감이 가는 사례들로 가득 차 있다.

빌 맥키벤은 산업혁명 이후 자신들이 살고 있는 행성까지 파괴할 능력을 갖게 된 인간이 이제 자연에 끼치는 커다란 영향력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이 욥기에서처럼 ‘누가 문을 닫아 바닷물을 가두었느냐? 누가 물을 동이로 쏟아 땅을 뒤덮게 할 수 있느냐?’ 라고 묻는다면 이제 그 답은 인간이 될 것이다.”

이 책을 쓸 당시에는 대체로 ‘느리고 천천히 변화하는 기후’라는 생각이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고 인류가 시급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생각은 오늘날의 기후학자들에게는 상식이다.

“다음 세기의 온난화에 대한 전형적 예측인 평균기온 2∼6도의 상승은, 세상의 기후가 자연속도의 10∼60배로 변화한다는 것과도 같다고 국립기상연구소의 슈나이더는 말했다.”

“하지만 10배는 사실 거의 상상할 수 없는 가속화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시속 1백 킬로미터로 고속도로를 달렸는데 갑자기 엑셀과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들어 시속 1천 킬로미터로 질주하게 되는 것과도 같다. 60배 가속인 시속 6천 킬로미터 주행은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며 아주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무언가 달라질 것이다.”

1990년대 내내 석유·에너지 기업들은 온난화의 원인이 현대 산업사회의 근본적 구조 ― 화석연료에 기반한 산업 체계 ― 에 있다는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갖가지 부차적인 요인들을 끌어들여 문제를 회피하려고 했다.

빌 맥키벤은 이들의 주장을 꼬집는다.

“스웨덴 자연사박물관의 알프 조넬스는 이런 상황을 기근에 비유했다. ‘기아가 직접적 원인이 돼 죽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들은 대부분 약해진 몸으로 이질이나 다양한 감염성 질병에 걸려 죽는다.’” 그러면 이들이 죽는 원인을 뭐라고 할 것인가?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은 1997년 교토의정서에서 처음 그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인도인이자 랠프 네이더 법률연구센터 등에서 일한 조이타 굽타의 책 ≪너무나 뜨거운 지구 ―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두레)은 온난화를 막기 위한 국제적 노력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자세히 다룬다.
한 마디로 말해 국제협약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선진국들] 자신의 배출을 줄이고 개발도상국들을 돕는다는 패러다임이 개발도상국들과 그들[선진국들] 스스로를 도움으로써[감축 의무 완화, 배출권 거래제 도입 등 시장 법칙을 적용해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했다] 배출을 줄인다는 패러다임으로 변했다.”

그녀는 특히 선진국들과 후진국들 사이에 존재하는 거대한 빈부격차를 해소하거나 그것을 뛰어넘을 만한 시도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선진국들은 후진국들의 배출량 감축을 요구하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실제로 미국이 교토협약에 가입하지 않는 중요한 명분 중에 하나다) 후진국들은 빈곤 종식과 산업화를 포기할 수 없다고 하는 입장 차이를 해결할 방법은 없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 동안에도 소도서국가동맹(AOSIS)[투발루, 몰디브 등 작은 섬나라들의 동맹]은 “우리에게는 과거에 일부 국가들이 제안했던 것처럼 결정적 증거를 기다리는 사치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런 증거를 기다리다가는 우리는 죽고 말 것이다” 라며 시급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었다.

석유기업들의 위선도 폭로한다.
“셸과 BP 아모코는 그들이 이제 에너지 공급 회사이지 석유 회사가 아니라는 내용의 선전 책자와 성명서를 내놓았다. … 이 두 업체가 자기네들은 녹색업체라고 요란하게 선전하고 있지만 그들은 기후 변화에 회의적인 미국석유연구협회의 회원이며, 가스 배출 제한 조치에 반대하는 업체원탁회의의 회원이고, 또 BP 아모코는 환경정책과 교토의정서 비준에 반대하고 있는 미국 의회 의원들에게 자금을 지원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너무나 거대한 위험과 ‘불확실성’이라는 불안한 낱말 때문에 사람들은 선진국 정부와 대기업의 대책을 요구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길 두려워한다. 누군가의 지적처럼 아무런 대안이 보이지 않을 때 사람들은 종종 문제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치는 우리가 그런 자제력을 행사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집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이다.” “우리의 삶의 방식,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개념을 말하는 정치는 지구상의 모든 곳에서 연기를 피워올리고 있다.”(≪자연의 종말≫)

조지 W 부시가 교토협약을 탈퇴했다고 해서 대부분의 미국인들도 그렇다고 생각해선 안된다. “루이스 해리스 앤드 어소시에이츠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미국 투표자의 75퍼센트가 이 조약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너무나 뜨거운 지구≫)

무엇보다 “현대사에는 그런 극적인 순간들, 대규모의 완전한 변화가 가능해 보이던 그런 순간들이 더 있었다. 공황 전에 사회주의는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말도 안 되는 급진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끝까지 추적해서 없애든가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용어로 토론해야 하는 대상일 뿐이었다. 그러나 공황이 오자 사회주의는 더 이상 우스꽝스러워 보이지 않았다.”(≪자연의 종말≫)

기후 변화를 막을 수 있는 근본적 사회 변화도 우리에게 가능한 미래들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