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지구촌의 친구들


















출처: '한 마음 한 몸' 운동 환경보전부 96 자료집

저자: 이경재(서울시립대교수, 응용생태연구회장)

1. 창조 세계 식구들

성경구절의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에서 네 이웃을 어느 범위까지 말할 것인가? 우리는 무심코 지금 친하게 지내고 있는 친구나 이웃집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상당히 다르다. 오늘날 인공위성, 비행기 등의 전세계를 날라 다니고 있어 이제는 지구는 한동네가 되었다. 그러니 옛날의 이웃은 걸어서 한나절 정도에 다닐 수 있는 마을이지만 오늘날의 이웃은 전 지구인 셈이다. 그리고 여기서 이웃은 사람이외에 생명이 있는 생물체만이 아니라 생명이 없는 무생물까지 모두 포함을 하게 된다.

영국의 과학자 러브록은 가이어주의라는 학설을 내 놓았는데, 이 학설의 내용이 전 지구의 모든 생명체와 무생명체를 우리의 이웃으로 생각하는 것과 같다. 즉 가이어주의는 지구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생각하고 사람, 가축, 곤충, 식물, 물고기, 돌, 흙 등은 이 유기체를 구성하는 서로 간에 형제들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사람과 나무는 서로 형제인 것이다. 형제란 서로 피를 나눈 식구들이다. 사람은 숨을 쉬면 피와 함께 온 몸을 돌아다디던 탄산가스가 밖으로 나오는 데, 나무는 이 탄산가스를 몸 속으로 받아들여 엽록소를 이용, 광합성 작용을 하여 영양물질을 만들고 부산물로 산소를 밖으로 내 보낸다. 이 산소를 사람은 마시고 숨을 쉰다. 그러니까 사람 몸 속으로 들어가고, 나무 몸 속에서 나온 산소는 사람 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몸 속에 있는 물질을 서로 주고 받지는 않으니 사람과 나무는 정말 형제인 셈이다.

지구상의 형제들, 즉 모든 식구들은 서로 도움을 주고 살아간다. 즉 식물은 몸 속에 갖고 있는 엽록소를 이용하여 햇빛, 물, 탄산가스, 일부 양분만 있으면 영양분과 산소를 만들어 내기에 식물을 생산자라고 부른다. 이 생산자가 생산하는 영양분의 양에 따라 이것을 먹고 살아가는 초식동물의 양이 결정된다. 이 초식동물을 1차 소비자라고도 부르며, 소, 말, 양, 사슴, 토끼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러한 초식 동물을 먹고 살아가는 육식동물인 호랑이, 삵괭이, 사자, 등의 숫자는 먹이인 초식동물의 수에 의해 조절될 수밖에 없다. 이외에 지구촌에는 식물과 동물이 죽게되면 썩께 만들어 주는 미생물인 분해자가 있다. 이 분해자가 없으면 죽은 생물체의 시체는 계속 쌓여만 갈 것이고, 흙에 영양분이 공급되지 않을 것이다.

2. 먹이 사슬과 사람과의 관계

지구 상에는 생산자, 소비자, 분해자가 함께 어울려 살고 있고, 이외에 이런 생물들의 삶의 터전을 받혀주는 무생물체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기에 이 모두들을 합체 생태계(ecosystem, ecosphere) 라고 부르는데, 생태계라는 말이 감정이 없다고 하여 가이어(Gaia)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생태계에서 2차 소비자는 1차 소비자, 1차 소비자는 생산자를 먹이로 이용하기에 이를 통틀어 먹이사슬이라고 한다. 먹이사슬에는 각각의 영양단계에서 에너지가 나뉘어지는 것과 오염물질은 축적되는 속성이 있다.

각 영양단계에서 에너지가 나뉘어지는 경우를 쉽게 예를 들어 본다. 지금 소 한 마리가 하루에 풀 50kg을 뜯어 먹는다면 이중 45kg 정도는 소의 일상 생활을 위해 소비하고 몸 속에 저장하여 체중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하는 부분은 5kg 뿐이다. 이 5kg을 육식동물이 먹으면 또 일상 생활에 4.5kg이 소비되고 0.5kg만이 육식동물 몸에 저장될 뿐이다. 그러므로 지구 마을에 3, 4차 소비자가 거의 없는 것은 각 영양 단계에서 에너지가 나뉘어지고 축적되는 양은 먹는 양에 10% 정도밖에 되지 않아 3차 소비자가 먹을 수 있는 식량이 매우 적어져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생태계의 질서로 1차 소비자의 수는 생산자 양에 의해, 2차 소비자의 수는 1차 소비자의 양에 의해 결정된다.

대부분 생물은 어릴 때 새끼가 태어나서 수명이 다되어 죽은 수는 전체의 0.01% 미만이다. 이렇게 적은 수만이 끝까지 남은 것은 먹이와 천적에 의해 제약을 받아 대부분이 죽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만은 예외이다.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은 자연에서 먹이를 얻어 살려면 인구가 적어야 하는데, 많이 낳고 모두를 끝까지 먹여살리려고 식량을 손쉽게 얻기 위해 자연 생태계를 개간하고 가축을 키웠다. 이때부터 자연생태계가 파괴되기 시작하였는데 19세기 이후 엄청나게 인구가 늘어나자 농경지가 이전보다 더 많이 필요하여 숲의 나무를 짤라내고 개간하는 면적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또한 사람은 20만년간 계속 채식 위주의 생활을 하며 육류는 보조식품이었으나, 생활이 윤택해지자 육류가 주식이 되고 야채가 보조식품이 되었다. 그러므로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식물로된 즉, 쌀, 밀, 옥수수 등으로 살아갈 때는 하루 1.5kg의 고기로 하루를 먹고 살아가려면 식물로 된 식량을 15kg을 먹는 것과 같아서 옛날에 비해 농경지 면적은 9-10배가 더 필요하게 된 것이다. 즉 지구인들의 경제가 나아질수록 육류를 경쟁적으로 먹게 됨에 따라 곡식만 먹던 때보다 10배 가까운 농경지가 더 필요하여 살림을 개간하게 되니 자연 생태계의 면적은 더욱 줄억만 갈 뿐이다.

먹이사슬의 또 다른 속성은 오염물질이 각 영양단계를 거칠수록 나뉘어지는 것이 아니라 축적되어 간다. 예를 하나 들어 본다. 미국의 Tule 호는 낚시터로 유명하여 이곳 주민들은 낚시꾼들이 소비하는 돈으로 상당한 재미를 보았다. 그러나 모기들의 극성이 낚시꾼들에게 알려져 차츰 찾아오는 사람들이 줄어들자 주민들은 모기를 없애려고 1963년 여름과 가을에 DDT를 뿌렸다. 그런데 다음 해가을에 이곳에서 지내던 농병아리들이 죽기 시작해서 정부에서 시급히 조사단을 파견하였다. 조사결과 물에서 DDT가 흔적 정동인 0.006ppm 이었으나 소조에서는 물 속의 DDT 보다 1,000배 이상, 지렁이에서는 3,000배 이상, 물고기에서는 7,000-10,000배가 검출되었고 이런 물고기를 잡아 먹고 죽은 농병아리의 피하지방에서는 최고 물 속의 DDT 농도보다 77만배 되는 양이 검출되었다.

물에서는 흔적으로 나타나던 DDT가 먹이사슬 단계를 거칠수록 엄청난 양이 축적된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 생태계에서 수질 오염이 허용농도 이하라 해도 먹이사슬의 단계를 거칠수록 축적되는데 사람은 2차 소비자이므로 엄청난 오염물질이 몸 속에 축적되는 셈이다. 이와같이 곡식, 야채 보다 육류는 몇십-몇천배의 오염물질이 축적되어 있는 것이다.

곡식보다 육류를 주로 먹게 되면 농경지가 더욱 늘어나 자연생태계의 파괴면적이 더욱 늘어나고 사람의 몸 속에 오염물질의 축적양만 늘어날 뿐이다.

3. 사람들에 쫓겨나는 우리 이웃들

지구가 태어난지 45억년이 지났건만 오늘날과 같은 생물이 살기 시작한지는 1억 5천만년 정도가 된다.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생물 종을 요즈음은 3천만 종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일부 과학자들은 1억종 이상의 생물이 살고 있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한 종이 지구상에 태어나면 보통 500만년 정도를 주기로 살다가 멸종된다. 그러므로 1년에 20종씩의 새로운 종이 생기고 20종씩 사라져 현재 지구상에는 3천만종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대체로 서기 1600년부터 1900년까지는 4년에 1종씩 즉 400년 동안 75종이 인간의 활동으로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산업 혁명이후 인간에 의해 자연생태계의 파괴가 매우 극심해지고 있다.

경작지 확장, 연료림 채취, 목재를 얻기 위한 나무의 벌채로 지구상의 숲은 연간 1,130만ha씩 줄고 있는데, 우리나라 남한의 크기인 990만ha의 1.1배 정도 면적이 사라지고 있으며 또한 일년마다 600만ha 크기의 사막이 늘어가고 있다. 그리고 선진국에서는 대기오염 및 산성비로 피해를 입고 있는 숲의 면적만도 3,100만ha에 이르고 있다.

한편 공업화된 북반구에는 수천개의 호수가 산성비에 의해 생물이 전멸되었고, 현재도 또다른 수천개의 호수가 서서히 죽어 가고 있다. 이외에도 지구 온난화, 오존층의 파괴에 의해 지구 마을의 생물들은 무참히 죽어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이 1970년대 후반부터 생물종이 빠른 속도로 없어져 요즈음은 하루에 30종씩, 즉 1년에 만종씩이 지구마을을 떠나고 있다. 그리하여 학자들은 앞으로 현재와 같은 속도라면 20년 이내에 전체 생물 종의 1/5이 없어질 것으로 두려워하고 이다.

현재 지구마을에 살고 있는 생물종이 3천만종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에 의해 이름이 붙여지고 기록된 종은 전체의 5% 정도인 140만종에 불과하니, 얼마나 많은 종이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사라지는 지는 모를 일이다. 이러한 생물종의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첫째, 야생생물종은 미래 인류의 식량, 건강을 해결해 주는 생물자원이다. 오늘날의 과학기술 수준으로 이용하고 있는 생물종 중 식량으로 이용하는 것이 백여종, 의약품이 천여종 미만이다. 현재 인류의 1/3정도가 식량 부족에 시다리고 있어 앞으로 야생종에게 인류를 먹여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또한 많은 의약품을 생약으로 동·식물종에서 얻고 있으므로 현재의 불치병도 미래의 발달된 과학기술로 들어서 인간의 무관심 속에서 자라고 있는 할미꽃, 꽃다지 등에서 치료할 수 있는 약품을 뽑아낼 것이다. 또한 현재 우리가 이용하는 곡식작물, 가축들은 오래전에 야생종을 개량한 것인데 인간에 의해 길들여져 환경에 적응하는 힘이 매우 약하다. 현재와 같은 지구온난화가 가속화 되어 지구의 연평균 기온이 2C만 올라가면 현재 육종된 재배종은 적응이 안되서 사라지게 되므로 야생종을 다시 육종해야 한다. 그러므로 야생종을 많이 갖고 있는 나라가 앞으로는 강대국이 되는 것이다.

둘째, 지구생태계가 건전하게 유지되는 때는 3천만종이 각각의 기능을 갖고 활동할 때이다. 이런 많은 종이 어울려 살아야 지구생태계가 건전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지구마을이 환경의 변화에 매우 예민하다는 소리이다. 현재와 같이 사람들에 의해 일년에 만종씩이나 되는 생물종이 사라지게 되면 지구생태계가 자꾸 파괴되면 변화되는 환경에 적응할 능력이 없어진다. 그러면 환경에 적응을 못하는 지구마을은 계속적으로 악화되어 더욱 더 암흑의 세례로 바뀌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을 사람들은 아랑곳하질 않는다.

45억년의 나이를 가진 지구에 이제 태어난지 20만년밖에 안되는 인간이라는 어린이가 암세포와 마찬가지로 천방지축 뛰놀고 있다. 암세포는 자기가 자생하고 있는 생물체의 건강은 생각하지도 않고 계속 커지기만 하다가 결국 생물체가 죽게 되면 암세포도 따라 죽게 된다. 지구촌에 살고 있는 인간이 지구마을의 운명은 생각지도 않고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인간들은 암세포와 같은 존재다.

4. 함께 어울려 사는 지구마을의 조성

인간이 지구마을에 생겨난지 20만년밖에 되지 않는 어린 집단이지만 다른 생물이 갖지 않은 두뇌를 갖고 있으면서 그간 머리쓰는 쪽으로 계속 진화되었다. 이 머리 때문에 사람들은 지구마을의 온갖 생물들을 죽이고 내쫓는 무법자로 살아왔다. 하느님이 인간을 세상에 보낼 때는 당신이 창조하신 세상에 3천만종 넘는 생물종이 어울려 사는 모습이 매우 아름다워 청지기라도 하라고 하신 것이지 모든 생물들의 지배자로 내보내신 것이 아니다. 만일 이 세상의 모든 생물들의 지배자로 삼으셔 생물들을 계속 없애는 것을 묵인하셨다면 무엇하러 3천만종이나 되는 생물을 만드셨겠는가? 3천종도 충분하지….

폐허가 되어가는 지구마을을 사람들은 지키고 사랑해야 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자기의 위치인 청지기로 돌아가야 한다. 청지기로서 지구말을에 누가 새로 이사를 오고, 이사를 가는지 정확히 알아내고, 만일 지구마을이 살기가 힘들어 나가는 생물들이 생기면 그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인디언 마을의 땅을 빼앗기 위해 온 백인들에게 인디언추장은 한가지 조건을 건다. 대지 위에 살고 있는 모든 짐승을 형제 같이 대한다면 인디언들은 백인들에게 땅을 주고 인디언 보호지구로 가겠다고 하였다. 산업문화에 찌든 암세포와 같은 백인들에게 지구마을의 청지기 노릇을 하고 있는 인디언의 경고이다. 형제와 같은 생물들을 잡아 가축을 벗겨 입고, 쓰고, 신고, 다니며 몸도 아프지 않은데 몸에 좋다고 끓이고, 볶아 먹는 사람들을 3천만종의 생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청지기인 사람의 위치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욕심을 버려야만 한다. 모든 종교에서 욕심을 버리라고 천년넘게 많은 성인들이 사람들을 가르쳤건만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욕심껏 살다보니 지구마을 이 이지경 즉 지옥같이 변한 것이다. 정녕코 사람답게 살아보자. 작은 것은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