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홍수 가상 시나리오


















‘긴급 상황입니다! 서울 시내 저지대에 거주하시는 시민 여러분들은 서둘러 대피하십시오. 시민여러분, 진정하시고 재난방송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서울시장의 다급한 음성이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타고 흘러나왔다. 억수로 비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서울시내 한복판에 나와 시장이 직접 방송을 하고 있었다. 우산도 쓰지 못하고 우비 차림으로 방송을 하고 있는 시장의 얼굴이 빗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물로 젖어 있었다. 만일 그것이 시장의 눈물이었다면 그것은 뼈저린 후회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2007년 8월 6일, 한국에는 최악의 기상이변이 몰아닥쳤다. 기상청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양의 집중호우가 그것이었다. 인구밀집지역인 서울 주변 수도권과 강원도 지역에 집중된 막대한 양의 집중호우는 수도권과 강원도 일대에 엄청난 피해를 주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서울시장이나 강원도, 경기도지사는 최악의 사태가 일어날 줄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8월 6일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폭우는 하루 강우량 800mm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한강 수계의 홍수를 막는 최대의 보루인 소양강댐이 위기를 맞았다. 더 이상 폭우가 쏟아지면 소양강댐의 안전이 위험했다. 소양강댐의 붕괴는 곧 한강 일대 전체의 홍수를 뜻하는 것이다.


사상 최악 집중호우 한반도 대재앙

금강산댐 ? 소양강댐 붕괴 그리고 대홍수


임기 말의 노무현 대통령은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를 불러 긴급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회의 시작과 동시에 고성이 오갔다. 경기도지사는 사태 발생의 책임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돌렸고 정부의 안이한 대처를 성토했다. 역시 이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노무현 대통령이 아니었다. 발끈한 노 대통령은 경기도지사를 향해 최대의 책임은 지자체에 있다고 맞받아쳤다. 결국 경기도지사와 노 대통령의 말싸움이 감정대립으로 변해가자 서울시장이 나서서 말렸다.


서울시장이 나서서 감정을 가라앉히자 겨우 회의가 속행되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긴급회의를 통해 중앙정부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수해대책을 세우는 것으로 합의되었다. 그러나 회의가 끝나고 난 뒤 경기도지사는 대통령에게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떠났고 대통령 역시 경기도지사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수도권 주민들이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비는 하늘이 뚫어진 듯 끊임없이 쏟아졌다. 소양강댐은 엄청난 양의 물을 하류로 방류했고 그 결과 한강의 수위는 한없이 올라갔다. 중랑천과 안양천과 같은 서울시내 하천들은 이미 모두 범람해 주변 저지대를 물바다로 만들었다. 서울시내의 서민들은 너도 나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정부와 서울시를 규탄했다. 그러나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비는 끝없이 내렸고 한강변의 도로들도 모두 물에 잠기고 말았다.


끝없이 내리는 비로 인해 불어난 강물은 여의도를 집어 삼킬 듯했다. 이 와중에도 여당과 야??의원들은 싸움을 멈추지 못했다. 그리고 잠깐 주춤한 듯했던 대선후보들 간 비방경쟁은 언론의 집요한 검증보도 속에서 계속 진행되었다.


금강산댐 붕괴되다


한편 북한의 김정일은 긴급보고를 받았다. 금강산댐이 기상이변으로 인한 엄청난 폭우로 붕괴 직전에 직면했다는 보고였다. 김정일은 그걸 왜 이제서 보고하느냐고 야단을 쳤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김정일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얼렁뚱땅 지어놓은 금강산댐이 무너질 경우 가뜩이나 물난리가 났다는 남측에 엄청난 피해가 날 것이 분명했다. 김정일은 잠깐 금강산댐 때문에 남측으로부터 받아낼 막대한 물자들을 못 받아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겁을 먹었다.


그렇지만 역시 천하의 김정일이었다. 그깟 물자 좀 못 받아내면 어떠랴. 김정일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당당해지기로 마음먹었다. 김정일은 북한 내각에 금강산댐 붕괴에 대해 철저히 침묵하도록 명령했다. 나중에 한국이 항의를 해오면 우리도 몰랐다고 발뺌할 작정이었다. 어차피 남조선 새끼들은 무슨 큰 일이 벌어져도 3일만 지나면 잊어버리는 새끼들이니 신경 쓸 가치도 없었다.


수도권과 강원도 지역을 강타한 엄청난 집중호우로 인해 이제 대권주자들까지 수해복구 현장에 뛰어든 한국에 청천벽력과 같은 뉴스가 전달되었다. 강원도지역에서 수해복구 중이었던 이명박 예비후보가 새벽에 일어나 막 삽을 드는 순간, 금강산댐이 붕괴되었다는 것이다.


금강산댐이 붕괴되었고 엄청난 양의 물이 북한강 수계로 밀려들고 있다는 소식을 보고 많은 국민들은 실소를 터뜨렸다. 많은 국민들은 여전히 금강산댐 문제를 단순히 전두환 정권의 거짓말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문제가 심각했으나 국민들은 믿으려고 들지 않았다.


한편 청와대로 긴급보고가 들어가자 노무현 대통령까지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 이제 서울시에 엄청난 재난이 닥칠 수 있었다. 반신반의하는 서울시민들 때문에 결국 노무현 대통령이 텔레비전 앞에 나서 서울시민들에게 긴급대피, 혹은 긴급 대처할 것을 요구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텔레비전 긴급출연 이후 서울시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저지대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을 서둘러 옮기기 위해 차주들이 모두 달려들었다. 서울시내의 대형할인점이나 수퍼마켓, 심지어 동네 작은 잡화상까지 사재기를 위해 몰려든 군중들로 야단법석이었다.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단지 경비원들은 지하 주차장으로 한없이 밀려드는 물을 퍼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모래주머니를 쌓아도 물이 계속 밀려들었다.


서울시내 지하철역들도 난리였다. 서울시내 지하철역 가운데 여덟 개 지하철역이 완전 침수되었고 금강산댐 물이 밀려들어오면 얼마나 많은 지하철역이 침수될지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한강이 범람함으로써 여의도 전체로 한강물이 흘러들기 시작했다. 국회의원들과 대선캠프 관계자들은 금강산댐 물 때문에 여의도 전체가 침수될 수 있다는 정보에 따라 긴급히 고무보트를 마련했다. 홍수 때문에 켐프를 옮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고무보트라도 타고 다닐 작정이었던 것이다.


한강 수계 댐들의 연이은 붕괴


흔히 말하는 금강산댐은 북한에서 말하는 ‘임남댐’이다. 북한 자료에 따르면 임남댐의 높이는 121.5m이고, 저수용량은 26.24억 톤이다. 임남댐 주변에는 포천댐과 전곡댐과 같은 다른 북한댐이 있기 때문에 이들 댐들의 저수용량을 합치면 총 40억 톤이다. 이렇게 거대한 임남댐 붕괴 이후 포천댐과 전곡댐, 평화의 댐이 무너지고, 소양강댐까지 무너졌다는 긴급보도는 서울시민을 엄청난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제법 많은 서울시민들이 먹을 것을 싸들고 서울 탈출을 시작했다. 서울시내 전체에 서울이 통째로 물에 잠겨 서울시민들이 모두 떠내려간다는 유언비어가 대책 없이 확산되었다. 이런 와중에도 일부 극우세력들이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고 맞받아쳤다. 이런 와중에 서울시내를 빠져나가는 도로들은 끝없이 이어진 차들로 장사진을 쳤다.


그런데 금강산댐은 왜 이렇게 힘없이 무너진 것일까. 무지막지한 기상이변에도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북한의 무리한 건설에 큰 이유가 있다. 임남댐은 수문과 발전시설을 갖추고 운영되는 일반 댐과 달리 물을 가둬뒀다가 필요한 만큼 동해로 흘려보내는 사력댐이다.


원래 사력댐은 댐을 완공한 다음 물을 담는 것이 원칙이지만 북한은 이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더군다나 북한은 물을 담는 도중 열악한 기술로 임남댐의 증축공사를 강행했다. 이런 이유로 임남댐은 극도로 불안정한 상황에 있었다. 이런 와중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으니 임남댐은 도저히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한편 소양강댐을 때려 부순 금강산댐의 물은 빠른 속력으로 한강을 타고 내려와 북한강 주변을 모두 침수시켰다. 강원도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거대한 수마는 마침내 서울을 덮쳤다. 서울을 덮친 수마는 서울을 빠른 속도로 집어 삼켰다. 한강이 범람해 엄청난 양의 물줄기가 한강 주변 지역을 덮쳤다. 여의도 주변 당산동의 예를 들면 아파트 1층이 거의 반쯤 물에 잠길 정도였다. 한강 주변 사람들은 고무보트를 타거나 대형 스티로폼을 타지 않는 한 도저히 밖에 나올 수 없게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와 모든 수도권?강원지역 공무원들과 뜻있는 시민들은 하나같이 나서서 수해 피해가 커지지 않도록 사력을 다했다. 그러나 하늘에서는 여전히 비가 쏟아졌고 금강산댐 붕괴로 인해 밀려든 엄청난 양의 물들은 계속 서울로 유입되었다. 그 결과 서울시내 전역이 침수되었고 서울 변두리 평지의 시민들도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지 않고서는 밖을 돌아다닐 수 없게 되었다.


수해피해를 당한 서울시민들은 너도 나도 할 말을 잃었다. 그야말로 할 말이 없었다.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한 1주일 정도는 비가 더 올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정치 뉴스가 이어졌다. 엄청난 수해 피해가 서울을 휩쓸고 난 뒤 보수야당 정치인들은 맹렬하게 금강산댐 문제를 특검해야 한다며 여당을 공격했다. 여당은 당장 중요한 수해피해를 걱정하지 않고 오로지 권력에만 눈이 어둡다며 보수야당은 역시 민생과는 거리가 먼 귀족정당이라고 지탄했다.


이런 광경을 일제 소니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본 김정일은 옆에 앉은 기쁨조 아가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보라우, 내래 서울 답방할 때는 배 타고 가야갔어. 기리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