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의 온난화 경종




[중앙일보 이홍구 2007년 05월 27일]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기후변화로 인해 인간과 자연이 받는 위협이 얼마나 치명적인가는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다. 수천, 수만 년을 지구상에서 살아온 인류의 운명이 돌이킬 수 없는 파탄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자연생태계는 물론 농업.수자원.해안지역 등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범위에 걸쳐 위협을 주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에게 미치는 위협이 가장 무서운 것이다.

이러한 위협에 대해 유엔환경기구를 비롯한 많은 연구기관은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수차례 경고해 왔다.

이제는 검진단계를 넘어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결단의 시간, 즉 정치적 선택의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인류는 왜 이처럼 중대한 공동의 위협에 대해 적절한 대처방안을 강구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는가. 눈앞으로 다가오는 먹구름을 보지 못할 정도로 인간이 우매하단 말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아마도 정치적 동물인 인간이 지닌 원천적 취약점과 정치제도의 불가피한 한계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치세계에서의 성공은 오늘의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할 때를 의미할 뿐이다. 후일에 다가올 위험을 미리 챙겨 그 어떤 대책을 강요할 때 그것은 오히려 실패로 치부되는 철칙이 아직도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대중민주주의 시대 들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정치지도자는 어려운 결정일수록 마지막까지 대중의 눈치를 보며 미루는 벼랑끝 전술을 쓰게 마련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유효한 대처는 전 지구적 공동노력이 필요하지만 국가 간, 지역 간, 계층 간 관심과 이익의 간격이 너무 넓어 이를 뛰어넘을 리더십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다가오는 위험을 뻔히 바라보면서 인류를 실은 지구호가 표류하거나 추락하도록 방치할 것인가. 아직까지도 그 위험을 실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루빨리 경종을 울려야 하지 않겠는가. 특히 인류와 국가의 장래에 대한 선택과 책임을 지고 있는 지도자들이 정치적 이익에 연연하기보다 인류의 운명이 걸린 기후변화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과감히 대처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필요하면 압력도 가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인류 공동의 문제해결에 앞장서 왔던 유럽 민주사회운동의 기수들을 중심으로 전직 정치지도자들이 지난주 마드리드에서 다시 모였다. 회의에 참여하는 내내 민주사회주의란 원칙적으로 민족주의보다는 국제주의의 기치를 높이 들고 있다는 당연한 이치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세계사의 전환기에서 민주사회 지도자들은 인류의 공동과제에 초점을 맞추는 데 선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스벤 올로프 팔메 전 스웨덴 총리는 인류의 파멸을 초래하는 전쟁, 특히 핵전쟁의 위험을 예방하고자 노력했다.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선진국과 발전도상국 사이의 빈부 격차를 줄이는 데, 그리고 그로 브룬틀란트 전 노르웨이 총리는 환경문제에 대한 세계적 경각심을 일깨우는 등 각기 뚜렷한 지도력을 발휘했다. 특히 브룬틀란트 전 총리가 주도했던 환경과 발전위원회의 87년 보고서 '우리가 함께 가는 미래(Our Common Future)'는 전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켜 92년 브라질 리우 회의와 유엔기후협약으로 성공적인 결실을 보았다.

이번 마드리드 모임에서도 환경을 상징하는 인물로 부각되고 있는 브룬틀란트 여사는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와 회의를 주저 없이 토로했다. 불과 10여 년 전인 90년대 초 팽배했던 세계질서에 대한 낙관적 분위기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는 지금 기후변화의 과제야말로 우리 모두가 공동의 목표를 갖고 총력을 집결시킬 수 있는 계기라고 호소했다. 또한 리오넬 조스팽 전 프랑스 총리는 기후변화가 가져 온 위기는 산업혁명처럼 인류역사와 생활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기회도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전직 지도자들도 발 벗고 나서 기후변화에 따른 인류의 미래에 대해 2012년 이후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수 있는 세계적 종합전략의 청사진을 만들려 노력하고 있다. 인류에게 다가오고 있는 결단의 시간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높고 험하기만 하다.

이홍구 본사 고문·전 국무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