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떠다니는 수은, 어디서 왔나 했더니…  


 

2007/06/02

바람타고 美까지 날아가… 성인의 혈중 수은 농도 선진국의 5~8배 수준 초등생 8%는 위험 수위
작년 1월 말, 미국 항공우주국(NASA) 웹사이트에 한 장의 사진이 올라왔다. 짙은 스모그(smog)가 편서풍을 타고 중국에서 한반도로 물밀듯 유입되는 모습을 NASA 인공위성이 잡은 것이다. 이즈음, 서울 하늘의 실제 사정은 어땠을까?
일본 ‘미나마타 병’의 원인물질로 잘 알려진 수은(水銀·Hg)의 대기 중 농도가 평상시보다 열 배 이상 급격하게 치솟았다. 일반 국민들, 특히 어린이와 임신부 같은 노약자의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 받았음은 물론이다.
한반도를 공습하는 ‘중국발(發) 수은’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대의 수은 배출국인 중국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지만, 지금까지 국내 대기 중 수은이 어디에서, 얼마나 유입되는지 파악조차 못해왔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이승묵 교수(환경보건학과) 팀은 22일 “서울 대기 중 수은의 절반 가량이 중국 상하이와 항저우, 광저우 등 주요 공업단지가 밀집해 있는 지역에서 넘어오고 있다. 황사 때는 물론이고, 평상시에도 수은의 월경(越境) 오염은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 연구팀은 2005년 2월부터 13개월 동안 서울 종로구 연건동에서 3만여 개 공기 시료를 채취해 성분분석을 실시했다. 수은의 평균 농도는 공기 1㎥당 3.21ng(나노그램·10억분의 1g)으로, 자연 상태에서 존재하는 농도의 세 배 가량 수준이었다. 작년 1월 말~2월 초 사이엔 이보다 열 배 이상인 38ng까지 치솟기도 했다. 연구팀은 72시간 동안 중국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이동경로를 역추적하고, 중국 내 수은 배출량 자료, 다른 오염물질과의 관계 등을 토대로 수은의 오염원을 추적한 결과, ‘서울 상공 수은의 48%는 중국발’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이승묵 교수는 “중국 공업지대에서 배출되는 수은이 태평양을 건너 미국 연안에까지 도착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최근 국제학계에서 통용되는 것과 동일한 연구방법론을 썼다”고 말했다. 이 교수팀이 한국과학재단 지원으로 수행한 ‘서울 대기중 수은의 오염원 분석’ 논문은 5월 2일 한국대기환경학회 학술심포지엄에서 발표된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수은 노출 실태는, 성인과 어린이 모두 선진국에 비해 훨씬 위험한 수준이다. 작년 초 정부가 발표한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 성인의 혈중 수은 농도는 미국, 독일 등의 5~8배 수준이었다. 지난 2월엔 “국내 초등학생 7.9%가 건강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한계치 이상의 수은에 노출돼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바 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정부 대응은 미흡한 편이었다. 그동안 대기 중 수은농도를 측정, 분석하는 변변한 장비조차 갖추지 못하다 최근에야 외국에서 장비를 들여와 가동에 들어갔을 정도다. 국민들의 몸 속 수은 농도가 왜 높은지 등에 대해 정부가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연세대 서용칠 교수는 “수년 전부터 대기 중 수은의 월경 문제가 핫이슈로 부각돼 미국과 유엔환경계획(UNEP) 주도로 국제적 차원의 대처방안이 논의돼 왔지만 우리 대응은 미온적이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미국 땅과 하천에 떨어지는 수은 가운데 중국발은 20~30% 정도다. 우리보다 국민 혈중(血中) 수은 농도가 훨씬 낮고 대기 중 수은 농도 역시 14~44%에 불과하지만, 미국은 중국과 ‘수은 갈등’까지 불사하는 등 적극 대응해 왔다. 2001년 한반도 주변 해역에 항공기를 16번이나 띄워 중국발 수은 농도를 측정한 데 이어, 작년 4월엔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방미를 코앞에 둔 상태에서 “수은 배출량을 줄여라”라고 몰아붙이기도 했다.
정부는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환경부 관계자는 “중국발 수은의 국내 유입량 파악 등에 대한 연구용역을 발주했고, 이달부터 3년 동안 연구가 진행될 것”이라며 “중국발 수은 문제에 대해 (정부 차원의) 대응이 시작됐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UNEP와 미국, 일본, 중국 등과 공동연구에 나서는 방안도 염두에 두고 있다. 명지대 정서용 교수(국제법)는 “앞으로 중국발 오염물질의 월경 문제가 갈수록 현안으로 불거질 것”이라며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환경 안보’적 차원에서 관련 연구의 확대 등 국제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키워드
수은=대기에서 땅과 강, 바다로 떨어진 뒤 먹이사슬을 거치며 어류와 사람 몸 속에 고농도로 축적된다. 뇌와 신경계 손상은 물론, 생식(生殖)독성 등 내분비계 장애를 일으키는 환경호르몬 역할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적으로 연간 2000t 가량이 배출되는데, 대부분 석탄을 때는 화력발전소와 쓰레기소각장, 그리고 금은 채굴 과정 등에서 나온다. 형광등과 치과용 아말감, 온도계 등 제품 원료로도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