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 기상학


















  근대적 기상학이 발달하기 전에도 이미 여러 가지로 기상을 예측하려는 노력이 이어져왔다. 「민속기상학」이라 할 수 있는 그런 분야의 지혜가 축적되어 왔으며, 그런 자료는 역대의 농서(農書) 속에 잘 나타나 있다. 5~6월은 더위가 심한 달인데, 이 때 서늘하면 가뭄의 조짐이라 여겼다. 이런 것들 가운데에는 「큰 할머니 88세지만, 동남쪽 구름 떼에서 비 오는 것 못 보았다」, 「서남쪽 구름 떼는 지나만 가도 비가 세 치나 온다」, 「고 기 비늘 같은 구름에서는 비가 오지 않는다」는 등의 말이 「산림경제」 치농편에 보인다. 또 그밖에도 「가을 하늘이 흐리고 바람이 없으면 비가 없고, 겨울 석양녘에 갑자기 늙은 잉어처럼 알락 구름이 일어났다가 점점 모이면 비가 없을 것이다」, 「서북쪽에서 먹 구름이 지붕같이 일어나면 먼저 큰 바람이 불다가 뒤에 비가 오지만 그 비는 쉽게 갠다」 라는 등의 말이 전해져 왔음을 알 수 있기도 하다.  

  1766년(영조 42년) 유중림(柳重臨)이 홍만선(洪萬選)의 「산림경제」를 증보하여 간행한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는 농가에서의 점후(占候=기상 예측) 방법을 다음과 같이 소개해  놓고 있다.


   1) 해와 달을 보고 일기를 예측하기 <가> 햇무리(日暈)가 지면 거의 비가 내린다. 남이(南珥 : 남쪽고리)가 생기면 맑고, 북이(北珥: 북쪽고리)가 생기면 비, 양이(兩珥 : 양쪽고리)가 나타나면 바람이 그치고 비가 그친다. <나> 해가 뜨고 질 때 그 둘레가 밝으면 맑고, 조각 구름이 있더라도 밝거나 영롱한 광채가 있으면 역시 맑다. 그 반대일 경우 흐리거나 비가 온다. <다> 해지기 직전 해가 거꾸로 비취면 맑고, 해진 다음 하늘이 붉으면 비는 없고 바람이 인다. <라> 해가 막 뜨려 할 때 동쪽과 동남쪽 하늘이 붉고 맑으면 개이고 따뜻하며, 붉지 않아도 맑으면 개인다. 만약 검은 구름이 가리고 어둡거나, 자주빛 검은 구름이 해를 위아래로 덮거나, 검은 구름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면 그 날은 비가 온다. 바람이 세면 비가 오전에 오고, 바람이 약하면 오후에 온다. <마> 달무리(月暈)가 지면 바람이 있다. <바> 달빛이 붉으면 가뭄이 들고, 달 옆의 구름이 희면 바람, 검으면 비, 초생달 아래 검은 구름이 있어 가로 걸리면 다음날 비가 온다.

  2) 별 보고 일기 예측하기 <가> 비온 뒤 흐리면서도 한 두 개 별이 보이면 그 날 밤은 반드시 맑다. <나> 오래 비가 오다가 저녁에 갑자기 멎고 하늘 가득히 별을 보게 되면 다음날 비가 올 뿐 아니라 그 날 밤도 반드시 개지는 않는다.  

  3) 바람과 비로 일기 예측하기 <가> 봄에 남풍이 불거나 여름에 북풍이 불면 반드시 비, 겨울에 남풍이 3~4일 불면 반드시 눈이 온다. <나> 북동에서 바람이 불면 반드시 비, 곧 개기 어렵고, 동풍이 급하면 주로 비가 오고, 바람이 급하고 구름 또한 급하면 반드시 비가 온다. <다> 5경에 갑자기 비가 오면 낮에는 반드시 개고, 저녁 비는 개지 않고, 비가 수면에 떨어져 거품이 일면 곧 개지는 않는다.  <라> 비가 눈과 섞이면 개기 어렵고, 쾌우(快雨) 다음에는 쾌청(快晴)하다.

  4) 구름 보고 일기 예측하기. 구름이 동쪽으로 가면 맑고, 서쪽으로 가면 비, 남쪽으로 가도 비, 북쪽으로 가면 맑다 등 아주 많은 경우가 소개되어 있다.


  이들 연구에 의하면 이미 앞에서 소개한 천체나 바람 구름 등을 보고 일기를 예측하는 방법 이외에도 수많은 기상현상이 조선시대와 그 전에 이미 관측되고 기록되어 남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역사서인 「삼국사기」, 「고려사」, 「실록」등은 물론이고, 조선시대의 대표적 중요한 자료로는 「풍운기(風雲記)」와 「기우기청제등록(祈雨祈晴祭謄錄)」등을 추가할 수 있다. 「풍운기」는 관상감에서 관측기록을 그대로 적어 남긴 귀중한 자료이지만, 현재 1740년 8월 3일자 하나만 남아 있고, 전부 없어진 상태다. 일제 초기까지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언제 어떻게 사라졌는지, 그리고 어느 시기의 자료만 있었던 것인지 조차 확인할 길이 없다. 「기우기청제등록」 역시 기상학적 자료로 대단히 소중하다고 할 수 있는데, 현재 1636년부터 1889년 사이 254년간의 기록이 서울대 학교 규장각 도서관에 남아 있다.  

  18세기의 대표적 학자의 하나인 신경준(申景濬 1712년~1781년)은 그의 「여암전서(旅菴全書)」에서 여러 가지 당대의 기상학적 지식을 기록해 남기고 있다. 조석 현상에 대해서도 많은 정보를 남기고 있지만, 비와 바람을 예보한 방법에 대해서는 흥미로운 기록을 전한다. 특히 당시 사람들은 아침에 날씨를 보아 비와 바람의 예측을 많이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의 빛나는 정도도 중요하고 구름도 중시했지만, 짐승, 새, 곤충의 관찰에서도 날씨를 예측했던 기록이 보인다. 또 중국에서는 일년 가운데 어느 날 바다에 폭풍이 있을 것인지를 도식적으로 설명한 관습도 있었음을 소개하고 그 날자도 밝히고 있다. 연중 어느 날에 꼭 폭풍이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비과학적 설명이라 할 것이지만, 200년전 이전에도 이미 그러한 방법으로도 기상을 예측하려는 노력이 거듭되어 왔음을 알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