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봉투



















어렸을 적, 바지런하고 꼼꼼하기로 소문났던 우리 외할아버지는 오랜만에 다니러 온 딸네집에서도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으셨다. 장사일로 늘 바쁜 엄마가 평소에 미리미리 챙기지 못했던 일들을 며칠동안 머물면서 하나하나 손봐놓곤 하셨는데, 그 중 하나가 종이봉투를 만들어놓는 것이다.

엄마는 그때나 지금이나 작은 야채가게를 하는데 외할아버지는 신문지, 포대자루, 다 쓴 공책 등을 꼼꼼히 모아놓게 해 두었다가 한 번씩 오실 때마다 몇날며칠동안 접어 붙여서 여러 크기의 봉투를 만들어 놓으셨다.

어렸던 우리 형제도 외할아버지 옆에서 붓으로 밀가루 풀을 바르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그렇게 만들어놓은 종이봉투는 주로 꼭 필요한 손님들에게만 주는 귀한 몸이었다. 불량식품이었을 알사탕이나 카라멜을 사러오는 또래들에게 으스대며 하나하나 개수를 세어 외할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작은 봉투에 담아주던 기억도 떠오른다.

그때엔 저녁 찬거리를 준비하러 나온 아주머니들 대부분이 그물처럼 생긴 장바구니를 갖고 왔고 그 안엔 바가지 같은 걸 담아 오셨었다. 물기 있는 두부나 삶은 시래기, 콩나물 등은 가져온 바가지에 담고 깨지기 쉬운 달걀 몇 알은 종이봉투에 담고, 나머지는 장바구니에 쏙. 가끔 제수거리나 배추라도 몇통을 살 때면 아예 큰 함지박을 머리에 이고 나오시기도 했다.

이제 그런 모습은 싼 비닐봉투가 마구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환경을 위해선 되살려야 할 옛 생활방식이 참 많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장바구니다. 비닐봉투가 흔하지 않던 시절엔 장을 나설 때엔 반드시 함께 하는 몸이었지만 이제는 장바구니가 환경을 사랑하는 이들의 상징같이 느껴진다. 환경부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선 비닐봉투가 연간 150억 장 정도 사용된다고 한다. 구입비용만 해도 1200억 원 정도다.

비닐봉투를 공짜로 주는 일이 법으로 금지되고 대형유통매장을 중심으로 1회용품 자율실천선언을 하고 비닐봉투를 사용하지 않는 고객들에겐 봉투 한 장당 50원에서 최대 석 장까지 금액할인을 해주고 있어 조금씩 비닐봉투 사용량이 줄어들 것을 기대해 보긴 하지만 여전히 갈길은 멀다.

시장에선 물건을 들면 가게 주인이 비닐봉투부터 뜯고 대형매장에선 물건값을 찍기 위해 모두 비닐봉투에 담기를 요구한다. “봉투는 됐어요”라고 말해도 인심쓰듯이 들려주는게 비닐봉투라서 일주일만 지나면 비닐봉투에 비닐봉투가 또 한가득이다. 버려진 비닐봉투를 태울 때는 다이옥신 같은 유독물질이 발생하고 매립했을 때도 20년에서 100년 정도가 지나야 썩는다.

또 함부로 버려진 비닐봉투는 동물들에게 큰 위협이 되기도 한다. 바다 포유동물들은 비닐봉투가 해파리인줄 알고 삼켰다가 내장기관에 문제가 생기고 새들도 여기저기 널려있는 비닐조각을 함부로 삼켰다가 목숨을 잃는다. 바람에 날려 나뭇가지 마다 걸려있는 비닐봉투는 보기에도 어지럽다. 하수, 관개시설이 좋지 않은 동남아시아 등에선 버려진 비닐봉투가 하수구를 막아 홍수피해를 키우기도 한다.

인도에선 해마다 5월 1일을 비닐없는 날로 정하고 있다고도 한다. 비닐봉투는 추억속에 묻자 가방 한켠에 늘 돌돌말은 장바구니를 넣고 다니면 예기치 않게 물건을 사게 될 때에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 요즘엔 갖가지 모양의 작게 접히는 장바구니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장을 보러 갈 때엔 장바구니와 함께 천주머니도 몇 개 챙기자. 그래야 가격표를 붙이기 위해 또 비닐봉투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등산용품점 등에서 파는, 자잘한 물건을 담는 잡주머니라는 걸 활용해도 좋고 그냥 집에 있는 천주머니도 좋다. 한두개 방수가 되는걸 준비해 놓으면 물기있는 것들을 담을 수도 있다. 녹색연합의 오래된 회원이신 한옥자 님의 아이디어는 우유팩을 활용하는 거다. 특히 생선을 살 때 긴 우유팩에 담으면 좋다고 한다.

이제는 단어마저 낯선 감이 있는 보자기 역시 비닐봉투를 대체하는 훌륭한 물건이다. 우리나라처럼 보자기 문화가 있는 일본에서는 환경성 장관이 직접 나서서 기후변화를 막는 시민들의 실천 지침 중의 하나로 보자기를 소개하고 보자기를 묶는 다양한 응용법을 선보이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비닐봉투를 사용했다면 함부로 버리지 말고 꼭 분리배출하도록 하자.

몇해 전부터 비닐봉투도 재활용품으로 내놓을 수 있도록 되었다. 색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해서 깨끗하게 말려 배출하면 또다른 플라스틱 제품으로 재활용된다. 그러나 재활용 단계에서 에너지를 사용하고 만들어진 제품 역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물건은 아니므로 가능하면 비닐봉투가 만들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오래전 나의 추억이 직접 만든 종이봉투와 장바구니였다면, 더 시간이 흘러 비닐봉투가 이제 그 추억에 자리잡고 장바구니와 천주머니가 일상이 되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글 / 정명희 (녹색연합 시민참여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