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제방축조 기록  


 


     
  조선시대에는 낙동강 등 큰 하천이 범람하여 많은 농토와 가옥이 유실되었는데 각 지방에 많은 제방을 축조하였다. 현종 3년 (1662)에는 언제사목을 선포하여 제방을 축조하는 지방에는 시장을 개설하고 여기에 오는 사람은 제방을 축조하는데 필요한 돌, 목재 등을 가지고 오게 하였다.

영조 45년(1769)에 청천강의 제방을 축조할 때는 안주, 개주, 전주, 영변 등에 시장을 열어서 제방 축조에 필요한 재료를 수집하였다.


삼국시대의 제방축조 기록  
     
  신라 일성니사금왕 11년(144) 2월에 명을 내려서 농사는 정사의근본이고 식량은 오직 백성들의하늘과 같은 것이라고 강조하고 모든 현과 군이 하천제방을 완성하고 논밭을 개간하게 하였다.

신라 법흥왕 18년(531)에는 유사에 명하여 전국의 하천제방을 수리하게 하였다.

신라 현안왕 3년(859)에는 사신을 파견하여 제방을 수리하고 권농을 지도하였다.

백제 구수왕 9년(222)에는 유사에 명하여 제방을 축조하고 권농을 지도하였다.

조선시대 이전의 이수사업 기록  
 

     
  신라 눌지마립간왕 13년(429)에 길이 2170보의 시제를 축조하여 저수지를 만들었다.

통일신라 38대 원성왕 6년(790)에 길이 1800보의 벽골제를 증축하여 저수지를 확장하였다. 벽골제는 백제의 땅 김제에 있으므로 최초에 축조한 것은 백제시대였다고 생각된다. 벽골제의 사적은 지금도 그 일부가 보존되어 있다.

고려 명조 18년(1128)에 언제를 수리하여 물을 저장하고 가뭄에 대비하였다.  


김제의 벽골제 축조  
 

     
 통일신라 38대 원성왕 6년(790)에 길이 1800보의 벽골제를 증축하여 저수지를 확장시켰다. 벽골제는 백제의 땅 김제에 있으므로 최초에 축조한 것은 백제시대였다고 생각된다. 벽제골의 사적은 지금도 그 일부가 보존되어 있다. 김제의 벽골제는 토사를 다져서 만든 흙댐으로 오랜 경험의 누적에의한 시행착오적 공법이 적용되었다고 보아진다. 벽골제는 평탄한 지형에 길이 3,240m, 높이 4.3m의 제언으로 이 공사에 적용된 정밀도 높은 수준측량기법은 높이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