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의 물시계  


 


     
 물을 넣은 항아리[壺]의 한쪽에 구멍을 뚫어 물이 흘러나오게 하고, 그것을 받는 그릇에 시각을 새겨 넣은 잣대[箭]를 띄워 그 잣대가 떠오르는 것으로써 시각을 알게 되어 있다. 맑은 날과 낮에만 쓸 수 있고 흐린 날과 밤에는 쓸모 없는 해시계보다 유용. 《삼국사기》에는 신라 성덕왕(聖德王) 17년(718)에 처음으로 누각을 만들고, 이를 관리하는 기관으로 누각전(漏刻典)을 설치하여, 박사 6인·사(史) 1인의 관원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보다 앞서 554년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 천문학자[曆博士]들의 지도를 받은 일본에서 누각이 제작되고(671), 누각박사·역박사 등이 제도화된 점으로 미루어, 백제에서는 이미 6세기에 누각이 제작되고, 누각박사의 관직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고려시대의 누각은 사료(史料)가 없어 상세하지는 않으나, 계호정(계壺正)이나 장루(掌漏) 같은 누각담당 관리가 있었고, 서운관(書雲觀)·태복감(太卜監)·사천대(司天臺) 등의 기관에서 천문(天文)·역수(曆數)·측후(測候)·각루(刻漏) 등의 일을 관장한 사실로 미루어 누각이 공인 시계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