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해외교통  


 

     
 삼국시대의 신라는 지리상의 관계로 중국에 대한 교통이 백제와 고구려보다도 늦었고, A.D 533년이 되어서야 백제로부터 한강 하류 지역을 탈취하고 중국의 해안까지 직접 통행하였다. 북조의 齊國과의 교통노선은 고구려가 자주 차단했기 때문에 방향을 바꾸어 남조의 陳국과 왕래를 하고, A.D 568년에는 독립적으로 중국에 사신을 보내 특산물을 조공했다. 동조의 역사가 비록 32년간 존속되었지만 신라는 A.D 568년 후에 계속해서 A.D 570년 6월, A.D 571년 5월, A.D 578년 7월 3차례나 한강 입구에서 바다를 건너 중국 동부해안을 따라 근해를 항해하여 장강까지 간 다음에 도달하였다. 비록 삼한에서 바다를 건너 중국 강남까지 원항을 하는 항로는 신라가 먼저 시작한 것이 아니지만 신라가 이 해상의 남쪽 항로를 제일 오랜 동안 사용하였다. 당 말(A.D 884)까지 300여년의 역사동안 거의 중단되지 않았고, 통일신라시대에는 당과 일본을 잇는 동방 해상 실크로드가 개통되었다.

해상교통은 배를 떠나서는 이야기 할 수 없다. 신라가 배를 가진 역사는 辰韓때쯤 일이다. <조선통사> 신라국 1장에서 말하기를, 金鈴 묘에서 백토로 구워 만든 배모양의 토기가 출토되었다. 이 배모양의 토기 밑바닥에는 굵은 줄이 달려 있고, 이것은 닻으로 사용한 것 같았다. 그리고 선원이 삿대를 잡고 있는 조각상이 있는 것을 보면 신라에 배가 아주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는 역사적 증거로 충분하다.

삼국시대의 신라는 비록 지리상으로는 왜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었지만 쌍방이 오랫동안 적대관계로 있었기 때문에, 양국의 해상교통은 침범과 약탈 그리고 이것을 막는 관계로 변화하는 동안, 쌍방의 해상교통이 장기간 동안 제한을 받았다.

삼국시대 신라의 역사에서 아직 '연오랑 세오녀'라는 한편의 고사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 고사의 내용은 해변에 살면서 고기잡이로 생활하는 연오와 세오 부부, 두사람이 바위 위에 앉자 바다를 건너 왜까지 가서 그곳의 국왕과 왕후가 되었다. 뒤이어 연오와 세오는 비단을 신라에 보내어 고향땅에 대한 정을 표시하였다. 이 고사의 실제는 신라인이 바다를 건너일본을 간 후에 일본과 경제 문화상에서 상호교류한 것을 반영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