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문명과 하수도  


 

     
 하수를 모아서 처리를 행하는 사상은 원래 유럽이나 미국이 것이다. 역사적으로 BC 4세기의 것이라고 추정되는 고대 인더스 문명의 유적인 '모헨조다로'에서 매우 발달된 하수도가 발견되었다. 잘 알려진 바로는 로마에서 BC 615년에 축조된 하수거의 유적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어서 관광지의 하나가 되고 있다. 모헨조다로의 하수도는 오수를 하수관거로 모아 시가지 밖 특주민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는 지역으로 유출시키는 근대의 시스템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학술에 의하면 모헨조다로의 하수도 설비는 오늘날의 생활 배수와 같은 것으로 배수의 끝단이 도시 교외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도시 안에서 모아 땅 속으로 침투시켜 처리하는 방식으로, 그 당시 위생관념이 발달하였다면 도시 밖으로 유출시켰을 것이라고 한다.

고대의 하수도는 종교와도 연관되어 적어도 오늘날의 하수도와 같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정설이다. 특히 이집트의 도시는 불결하고 그리스의 아테네는 더욱 불결하였다 하는데 실지로는 그리스인은 오탁물을 도시에서 상당히 먼 장소로 버렸다 하며 예컨데 아테네에는 5명의 시역 감독관이 있어서 도시 성벽에서 도로 2km이내에 오물을 버리지 못하도록 한 기록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배변을 도로에서 행한 것 같다. 오탁물이 도시에 가득차 넘치고 전염병이 크게 유행하였고 전쟁도시가 포위되면 바로 고약한 전염병이 유행했다.

오탁물이 관계되는 사회적인 구조의 미숙과 기술의 졸렬은 고대 도시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이와같은 경가 속에 고대의 오탁 문명이 최종적으로 도달한 것은 로마의 하수도이다. 이는 근대 하수도의 기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로마는 도시의 사회적 통합을 달성하는 수단의 하나로서 처음으로 도시밖에 액체상 폐기물을 배출하는 하수도를 건설했다고 추측된다. 하수도 시설은 외관상으로 훌륭하고 오탁물 통제의 사회적 구조도 일단 정비되었다. 그런데 인구의 증가로 1백만 인구의 도시의 경우 하수의 계통적인 수단이라는 점에서 기술적으로나 제도적으로 미숙하였다. 이까닭에 하수도가 충분히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전체로서도 역시 불결하였다. 특히 로마시민이 아닌 노예의 생활 환경은 더욱 열악했다.

14세기 이후 르네상스의 활동이 일어나고 비로소 17세기 이후 산업혁명의 진행과 함께 하수도가 새로 소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