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가 사라진다


















2005/12/15

한만도 온난화로 활엽수에 밀리고 재선충에 말라죽고... "100년 후 멸종 가능성" 전망도

경북 칠곡군 왜관읍에서 칠십 평생을 살아온 송대헌씨에겐 올 한 해가 유난히 길었다. 이 지역의 산에 난생 처음 보는 ‘소나무재선충’이 창궐해 한 해 동안 7300그루의 소나무가 말라 죽거나 잘려져 나갔다. 소나무에 침입해 물과 양분의 통로인 헛물관(假導管)을 막아 고사하게 만드는 소나무재선충은 ‘소나무의 조류인플루엔자’라 할 만큼 전염성이 강하다.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가 발견되면 군청 산림방제과 직원들이 나와 감염목 주변 반경 20m 내의 소나무까지 모조리 베어냈다. 송씨는 행여 자기 산에 몹쓸 병이 번질까봐 솔잎 하나까지 살피고 다녔다. “다행히 나는 군청에 빨리 신고해서 열다섯 그루밖에 안 잃었지만 건너편 산에는 백 그루 가까이 잘려나갔어. 대대손손 물려온 소나무들인데…. 쓰러진 소나무를 보고 우는 사람도 있었지.”

우리나라 특산목인 금강소나무의 본고장 경상북도는 2001년부터 재선충이 번지기 시작, 올 11월 현재까지 1034㏊, 7만3000그루의 소나무가 사라졌다. 1990년대 초부터 재선충이 확산된 경상남도는 그보다 훨씬 많은 9499㏊, 63만2000그루의 소나무가 재선충에 죽어나갔다.

그런데 소나무를 위협하는 것은 재선충만이 아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따뜻해지고 있는 한반도의 기후가 소나무의 생존환경을 압박하고 있다. 즉 침엽수인 소나무는 이미 오래 전부터 따뜻해진 기후 덕에 번성하고 있는 활엽수와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고 싸움에서 승리하는 쪽은 거의 활엽수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한반도에서 소나무가 사라지고 있다. 어쩌면 몇 십 년 뒤에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하는 애국가 가사도 바꾸어야 할지 모른다.

중국, 일본도 재선충 발병 전멸위기

산림청 통계에 따르면 1940년대에 한국 산림의 60%를 차지했던 소나무 산림면적이 2005년 현재 24%로 줄었다. 30년 전 260만㏊에 달하던 남한의 소나무숲 면적은 지금 152만ha로 줄었고, 최근 10년간 서울시 면적의 4배가 넘는 25만8000㏊의 소나무 숲이 사라졌다. 그 감소율은 전체 산림 감소율의 16배나 된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전성우 박사팀은 ‘2002년 기후변화에 따른 생태계 영향평가 보고서’에서 “이대로 가면 100년 후에 남한의 소나무숲이 거의 다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는 충격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현재는 소나무재선충이 가장 무서운 ‘소나무 파괴자’로 대두되고 있다. 재선충은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발견된 이래 놀라운 전염속도로 북상해 강원도 강릉, 동해시까지 올라왔다. 0.6~1㎜ 크기의 미세한 재선충은 솔수염하늘소를 매개체로 소나무에 침입하는데 감염된 소나무는 6일 만에 솔잎이 처지기 시작하고 30일이 지나면 붉은색으로 말라 죽는다. 치료약이 없어 치사율이 100%이며 감염목 한 그루가 방치될 경우 주변 소나무 200여그루가 몰살한다.

산림청의 소나무재선충방제팀은 “지난 9월부터 ‘소나무재선충병 방제특별법’을 시행, 강력한 확산저지선을 구축해놓고 있지만 감염목을 몰래 내다파는 일부 산주(山主)들 탓에 방제효과를 제대로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나무재선충의 숙주인 솔수염하늘소가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고작 1년에 3~4㎞. 그러나 최근 소나무재선충의 확산거리는 석 달 만에 100㎞에 달해 목재의 밀반출에 의한 인위적 전염이 심각한 상황임을 알려주고 있다. 재선충방제팀의 김기현 사무관은 “일본과 중국의 소나무는 재선충으로 대부분 고사해 동아시아의 소나무는 이제 한국에만 살아남았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1905년에, 중국과 대만은 1982년, 1985년에 각각 재선충이 발병하여 일본은 소나무림의 90%를, 중국은 남한 산림 전체 면적보다 큰 700만㏊의 솔숲을 잃었으며 대만의 소나무는 전멸했다. 198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재선충, 솔잎혹파리, 솔잎깍지벌레 등의 병해충이 파괴한 소나무숲 면적은 13만3000㏊에 달한다.

그러나 산림학자들은 소나무숲이 감소하는 더 근본적 원인으로 ‘식생 천이(遷移)에 의한 소나무 도태’를 꼽고 있다. 우리나라 산림에 참나무류의 활엽수가 증가하면서 소나무를 밀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통계상으로도 최근 10년간 재선충이 갉아먹은 소나무숲은 1만8000㏊인 데 비해 참나무에 밀려 도태한 소나무숲은 20만㏊가 넘는다.

한반도의 기후가 점차 강수량이 많은 아열대성 기후로 변화하면서 과거 건조기후에서는 번성하지 못했던 활엽수가 늘고 있는데, 소나무가 이 활엽수들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 가령 솔숲에 떡갈나무나 상수리나무 등의 참나무류가 들어서면 소나무 가지를 밀쳐내기 시작해 수십 년 후면 소나무를 압도하게 된다. 어른 소나무만 억누르는 게 아니라 짙은 그늘로 숲바닥을 덮어서 솔씨가 싹을 틔우는 것도 방해한다. “솔씨는 햇빛이 잘 드는 곳에서만 발아하는데 활엽수가 그늘을 드리우면 싹을 틔우지 못해 결국 어른 소나무만 남은 소나무·활엽수 혼합림으로 변하게 된다”고 식생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지구온난화가 주범이다

국민대 산림자원학과의 전영우 교수는 “한반도 산림에서 극상림(climax forest=식생 천이의 종국식물군락)은 소나무가 아닌 참나무류다. 건조성 극양수(極陽樹)인 소나무는 건조한 산에서 잘 자라는데 숲이 무성해지고 낙엽층 토양이 비옥해지면서 참나무류가 우거지고 소나무는 그에 밀려 도태되고 있다. 과거 우리 선조들이 산에서 목재와 땔감을 마련할 때는 활엽수가 적당히 제거돼 오히려 소나무엔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 마련됐으나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고 했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과의 임종환 박사도 “소나무는 그늘진 곳, 낙엽이 쌓인 곳에선 싹을 틔우지 못한다. 소나무림을 보호하려면 활엽수와 잡목을 어느 정도 베어내는 인위적 간벌(墾伐)이 필요하다”고 했다. 산림학자들의 견해는 “소나무는 자연경쟁에서 활엽수에 뒤지므로 솔숲을 보호하려면 인위적으로 활엽수를 제거해줘야 한다”는 것으로 통일된다. 무릇 자연은 사람의 손길이 닿아서 좋을 게 없으리라는 우리의 상식과 상치되는 셈이다.

거시적으로 보면 솔숲의 쇠퇴는 지구온난화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뜨거워진 기후가 소나무의 생육환경을 바꿔놓고 있다. 활엽수의 번성도 습한 아열대기후로 변했기 때문이며 일본에서 건너온 소나무재선충이나 1980년대에 창궐했던 솔잎혹파리, 솔잎깍지벌레도 결국 열대성 병해충이란 점에서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100년 후 지구 평균기온이 2도 이상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그와 관련해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전성우 박사는 “IPCC의 기온 예측이 사실로 나타날 경우 남한 산림의 소나무숲은 2050년에 전체 산림의 16%로, 2100년에는 7%로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기온도가 3도 상승할 경우 식물군은 북쪽으로 250㎞, 고지대로 500m 이동해야 적응할 수 있다. 그런데 소나무의 이동가능속도는 100년에 150㎞다. 100년 동안 2도 상승한다면 기후대의 이동을 가까스로 따라잡아 멸종은 면하겠지만 남한에서 소나무가 거의 사라지고 두만강 이북이 새로운 생육지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계명대 생물학과 김종원 교수는 “지구온난화는 결코 소나무의 감소 원인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김 교수는 “소나무는 난온대성 침엽수로 전나무나 가문비나무 같은 냉온대성 침엽수에 비해 따뜻한 기후에서 자란다. 그래서 북한보다 남한에, 고지대보다 저지대에 소나무가 많다. 지구 역사상으로도 온난기에 소나무는 늘어났다. 기온이 상승하면 소나무 서식지가 남에서 북으로 옮겨가는 게 아니라 북으로 확장하면서 오히려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소나무는 건조하고 거친 한반도의 세프로라이트(마사토) 토양에 가장 적합한 나무여서 결코 사라질 수 없다. 그동안 우리 선조들이 의도적으로 육성한 인공림이 사람의 관리가 줄어들자 자연적 천이에 의해 활엽수림으로 바뀌는 것일 뿐”이라며 “소나무 자연림은 사라지지 않는다. 한국의 소나무가 100년 후면 멸종된다는 식의 예측은 지나친 과장”이라 비판했다.

감소원인을 둘러싼 논란에도 불구하고 ‘소나무의 감소는 자연적 현상이며 소나무를 보호하는 길은 인위적으로 활엽수를 추려내는 것’이라는 데에는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그렇다면 소나무를 살리기 위해 산에 메스를 댈 것인가 자연의 섭리에 맡겨둘 것인가 하는 문제에는 논란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전영우 교수는 “소나무는 한국의 대표수종이란 상징적 가치와 목재로서 경제적 가치가 크므로 적극적으로 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 교수는 “소나무의 경제적 효용이 과거에 비해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최고급 건축재로 대접받고 있다. 독일산 너도밤나무 한 그루가 벤츠 한 대 값이라지만 우리나라의 300년생 금강송(강원도와 경북 산간지방에서 나는 최상급 소나무 품종)도 2300만원에 팔린 적 있으니 그에 못지 않다”고 했다. 문화재 복원용 금강송이나 춘양목(봉화, 울진, 삼척에서 나는 질 좋은 금강송이 영동선 춘양역에 모여 출하됐다고 해서 붙은 이름)은 폭이 42㎝ 이상, 길이가 7.2m일 경우 1㎥가 720만원에 거래돼 일본이나 미국의 대표적 건축재인 편백이나 미송(douglas-fir)보다 훨씬 비싸다.
전 교수는 “우리 선조들이 소나무를 육림한 이유는 건축재와 조선재(造船材)로 소나무가 으뜸이었기 때문이다. 송진이 많은 소나무는 쉽게 썩지 않고 압축강도와 내구성이 강하다”고 했다. 소나무는 고려 중기부터 국가의 보호관리를 받았으며 조선시대엔 ‘봉산(封山)’ ‘금산(禁山)’을 지정해 소나무를 함부로 베지 못하게 했다. 민간에서도 건축재, 가구재, 땔감, 약재, 비상식량으로 소나무만큼 쓸모 있는 나무는 없었다. 그래서 소나무야말로 우리나라의 뚜렷한 숲정이(rural forest:마을 배후의 연료와 식료를 공급하는 숲)였다.

반면 강원대 생물학과 정연숙 교수는 “소나무에 대한 편애가 숲의 안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 교수는 “소나무 산림을 보호육성하려면 인위적 간벌이 필요하지만 자연을 일정부분 파괴하는 것이므로 목적이 구체적이어야 한다. 어떤 나무든 단일수종의 산림은 한꺼번에 쇠퇴할 수 있다. 인공조림한 독일의 전나무와 가문비나무 숲이 최근의 산성비에 대규모로 죽어가는 것이나 우리나라의 소나무재선충 감염속도가 빠른 것도 단일수종이기 때문이다. 또 숲의 야생동물이나 수자원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소나무 보호론과 자연방임론

소나무의 경제적 가치에 대해서도 의혹이 제기된다. 이건산업 열대조림사업팀의 윤양 박사는 “국제원목시장에서 최고가의 수종은 소나무가 아닌 참나무류”라며 “세계적으로 냉한대 침엽수보다 열대 활엽수가 더 좋은 목질을 인정받고 있다. 고급 참나무숲 조림 방안도 진지하게 논의해볼 만하다”고 덧붙였다.

학자들 사이에선 소나무 보호론과 자연방임론이 엇갈리지만 국민감정은 아무래도 ‘우리 소나무를 지켜야 한다’ 쪽으로 쏠리고 있다.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태어나 솔숲에서 살다가 소나무관에 묻힌, 그도 모자라 무덤가에도 도래솔을 둘러 심었던 우리 한국인에게 소나무는 단순한 식물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소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참나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종이지만 우리 민족의 생활과 문화 속에서는 참나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고목도 소나무는 40점으로 은행나무(20점), 느티나무(16점)에 크게 앞선다. 지난해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역시 소나무(43.8%)로 나타났다. 특히 우리나라의 소나무는 세계 100여종의 소나무류 가운데 중국, 일본, 러시아 연해주 등 극동아시아에만 자라는 희귀한 수종으로 생태보호적 가치도 크다.

2003년부터 소나무를 사랑하는 문화·예술·학계의 인사들이 모여 ‘솔바람모임’을 만들고 솔숲 순례, 소나무 그림·사진전 등을 열어 ‘문화 속에 소나무 심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열린우리당 심재덕 의원은 국회의원 100명의 지지를 모아서 ‘소나무를 나라나무로 지정하는 법안’을 국회에 상정할 계획인데 현재 13명의 동의를 받은 상태다. 12월 7일에는 환경재단, 문화예술학회, 제지회사, 시민운동단체가 모인 가칭 ‘소나무지키기국민연대’가 출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