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멸망은 전쟁보다 물 때문  


















2004/6/11

(시엠레압<캄보디아>AP=연합뉴스) 세계적인 유적지 앙코르 와트가 있는 캄보디아의 고대 도시국가 앙코르는 수년간 시암(태국) 침입자에 맞서 버티다가 1431년 치명타를 맞고 멸망했다. 대부분의 역사책은 앙코르의 멸망 원인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이 곳을 연구하는 국제학술팀은 이보다 훨씬 앞서 다른 요인 때문에 앙코르가 망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앙코르의 멸망도 현대 도시의 멸망 원인처럼 환경 문제와 사회간접시설의 붕괴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앙코르계획" 연구팀에서 일하는 고고학자 롤랜드 플레처 교수는 "그들(앙코르인)은 환경 문제에 봉착했는데 손을 쓸 수 없을 때까지 문제를 깨닫지 못했던가 혹은 이 문제를 알았다해도 풀 수 없었던 두 가지 경우였다"고 말했다.

동남아 일대를 통치했던 힌두왕들의 수도였던 앙코르는 9세기부터 14세기까지 번성했다. 이 번성 시기에 앙코르에는 세계적인 건축물 앙코르 와트 사원을 비롯한 상당수의 건축물이 세워졌다.

현재 연구팀은 앙코르인이 상당히 정교한 수로체계를 갖고 있었다는 가설 하에 작업을 하고 있다. 앙코르인은 관개, 교역, 여행 목적으로 저수지와 수로를 만들었으며 결국 이와 관련해서 홍수와 물부족 사태에 처했다고 연구팀은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대의 도시 문제를 처리하는데도 도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앙코르 멸망 원인을 연구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연구팀에 있는 고고학자 대미언 에번스는 앙코르 수로는 현대의 고속도로와, 코끼리가 다니던 길은 현재의 전화선과 같은 통신망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가설에 맞는 증거를 찾기 위해 수로를 발굴하고 도자기류와 꽃가루를 찾고 있다. 그런가하면 미국항공우주국(NASA)을 통해 입수한 사진을 판독하고 옛문명의 자취인 논, 가옥, 사원, 수로 등을 경비행기로 찍은 사진도 분석한다. 현재 호주의 시드니대학, 앙코르 담당 캄보디아 정부 부처 등에서 40명 가량이 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플레처 교수는 인구 증가와 물 부족 사태 때문에 교역과 통신을 하기가 더 어려워졌을 수 있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그래서 앙코르인은 현재의 프놈펜이 자리를 잡은 남쪽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이 지역에는 다시 수도들이 세워졌다.

대앙코르계획의 첫째 목표는 멸망 원인의 규명보다 앙코르가 얼마나 넓은 지역에 걸쳐 있었는 지를 밝히는 일이다. 연구팀은 앙코르 와트 사원이 있는 700년 역사의 성벽 도시 앙코르 톰보다 더 큰 거대 도시가 존재했다고 본다. 앙코르는 약 75만명이 거주했고 면적이 1천만 ㎢에 이르러 산업시대 이전의 어떤 도시보다 컸으며 형태와 규모에서는 현대 도시에 가까웠다고 플레처 교수는 말했다.

플레처 교수는 "앙코르는 홍콩이 아니고 로스앤젤레스에 가까웠다. 광활한 공간이 많이 있고 집 주변에는 넓은 터가 있을 뿐만 아니라 고속도로에 해당하는 수로가 있었다"고 말했다.

앙코르의 경제는 벼농사에 의존했다. 논은 수십개 수로를 따라 있었으며 적어도 1개 수로는 20㎞에 이르기도 했다. 사람과 재화를 이동시키고 벼를 키우기 위한 물을 확보하기 위해 저수지, 수로, 교량 등이 건설됐다.

그러나 앙코르의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정교한 수로에 과부하가 걸렸다. 항공사진과 NASA 사진 등을 판독하는 에번스는 "앙코르인이 이를 고치려 하면 할수록 더 많은 문제점들이 터져 나왔고,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인구가 증가하면서 앙코르인은 인근 쿠렌 경사지로 들어가 나무를 베고 경작지를 개간했다. 그 결과 빗물에 흙 침전물이 휩쓸려 들어가 수로에 쌓이는 상황이 벌어졌다. 수로 보수가 앙코르 시대에 있었는 지를 알 수는 없지만 이와 관련한 자취는 남아 있다.

플레처 교수는 "현대 도시에서 실패한 고속도로와 철로를 생각하면 이는 앙코르의 경우와 같다. 이는 사회간접시설의 문제다. 모든 것이 다 좋을 수 있으나 사회간접시설이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출처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