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탄생  



















2004/5/27

어느덧 녹음 짙은 초하의 계절이다. 소나무의 새 가지도 많이 자라났고, 버찌는 벌써 붉게 익어가고 있다. 아까시꽃도 만발하고 벌들도 제철을 맞았다. 숲은 갓 깨어난 새끼새와 어미새들의 벅신거림으로 한바탕 잔치를 벌인 듯하다. 이렇듯 지금은 숲에서 모든 생물들을 동시에 볼 수 있지만 숲이 이러한 모습과 구성을 보이기까지에는 영겁의 세월이 필요하였다.

◇바다로부터의 상륙군=지구의 나이를 46억년으로 추정하는데 지구 형성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시기를 지질시대라고 한다. 지질시대의 언제부터 숲이 나타났는지를 밝히는 것은 주로 지구 연대학에서 다룬다. 지구 연대학에서는 지질시대를 크게 시생대, 원생대,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로 구분한다. 생명체의 발생 연대 측정은 주로 화석을 이용하는데 화석이 제일 많이 출현하는 시기는 고생대로서 생물들이 대규모로 번창했음을 알게 한다. 최초의 생물은 물이 있는 바다로부터 탄생하였다. 고생대의 캄브리아기에 삼엽충과 해파리, 혀긴 조개, 해조류 등이 나타났고 이어서 원시어류도 출현하게 되었다.

초기에 생명체들은 육지에서 살 수 없었다. 대기가 유독가스로 가득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환경에서 견딜 수 있는 원시 생명체들이 물에서부터 생겨난 것이다. 원시식물들도 물밑 땅 속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야 했다. 그런데 점차 몸 안에 물과 양분의 통로인 ‘도관’이라는 조직을 갖춘 식물이 생겨났다. 식물이 도관을 갖추게 된 것은 혁명적인 것인데 이러한 조직발달 덕분에 뿌리로부터 물을 흡수하고 대기로부터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여 탄수화물을 만드는 광합성 작용을 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산소가 증가하게 되면서 대기는 식물 생육의 획기적인 환경으로 변화해가기 시작했다.

최초의 식물로 분류되는 조류(藻類)는 습한 곳에서 자라는 이끼였다. 이들은 자기 몸을 지탱할 수 있는 조직(줄기)이 없어서 지상에 나올 수 없었으며 밖으로 나와도 곧 햇빛에 말라 죽고 말았다. 그러나 광합성 덕분에 몸을 지탱할 수 있는 단단한 줄기를 만들어 갈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엔 줄기와 뿌리를 갖춘 식물이 나타났고 그 후 잎을 갖춘 양치류와 같이 더욱 발달된 식물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드디어 고생대 실루아기에 최초의 육상 식물과 동물들이 나타났다. 지구가 탄생한 지 42억년쯤 지난 후의 일이고, 지금으로부터 4억년 전의 일이다. 실루아기에 육지에 상륙하기 시작한 식물은 프실로피톤(psilophyton)이라고 불리는 오늘날 고사리와 비슷한 하등 양치식물로서 뿌리와 줄기의 구분이 있었고 몸길이는 약 40㎝였다.

◇지구상 최초의 숲=하등한 양치식물들이 상륙하기 시작한 실루아기를 지나 데본기에 이르러 석송, 속새류, 고사리와 같은 양치식물들이 번성하기 시작하였다. 데본기의 식물은 처음에는 물가를 차지했다가 점차 내륙으로 퍼져 나갔다. 그래서 숲은 초기엔 소규모로 형성됐지만 데본기 중기에 이르게 되면 제법 큰 숲들이 나타났다. 당시의 나무 중에는 8~12m, 심지어 30m나 자라는 것도 있었다. 이 나무들이 만든 숲이 지구상 최초의 숲이었다. 지금으로부터 4억8백만~3억6천만년 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 숲은 오늘날처럼 꽃 피고 새가 우는 숲은 아니었다.

◇침묵의 석탄기 숲=대형 식물들의 등장은 대략 3억6천만년 전부터 시작되는데 이 시대를 석탄기라고 부른다. 이 때가 되면 대형 양치식물들이 거대한 숲을 형성하여 지구를 뒤덮게 된다. 당시에 이러한 거대한 숲을 이루게 한 식물들은 지름이 1m, 높이가 30m 이상에 이르는 거목들이었다. 석탄기 시대의 숲이 밀림을 형성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당시의 기후는 기온이 높고 비가 많이 와서 고온다습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거대한 숲을 이루던 대형 양치식물들은 3억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난 오늘날 쇠뜨기, 석송, 속새로 불리는 지름 2~3㎜, 높이 30㎝ 안팎의 왜소한 식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또한 석탄기의 숲은 비록 어마어마하게 울창한 산림이었지만 아직 새도 울지 않고 꽃도 피지 않는, 거목들만 즐비하게 늘어선 어둡고 괴기하며 조용하였다. 그래서 ‘침묵의 숲(Silent Forest)’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데본기 시대에 시작된 바리스칸 조산운동은 석탄기 시대의 거대한 숲들을 갈아 엎어 결과적으로 오늘날 인류에게 화석연료를 선물하게 된다.

석탄기 이후 새롭게 형성된 지층으로부터 소철, 종려나무, 소나무, 전나무, 은행나무들로 대표되는 겉씨식물(나자식물)들이 나타나게 되면서 지구는 페름기라고 부르는 새로운 숲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2억8천6백만~2억4천5백만년 전의 일이다.

페름기를 끝으로 고생대를 마감하고 삼첩기, 쥐라기, 백악기로 구성된 중생대가 새로운 숲시대를 열어간다. 겉씨식물의 숲이 계속되다가 백악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진정한 모습의 숲이 나타난다. 플라타너스와 같은 활엽수이자 속씨식물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는데 꽃 피는 시기라고도 불러서 현화식물의 시대라고도 한다.

◇인간을 낳은 신생대의 숲=신생대는 제3기(6천6백40만~1백70만년전)와 제4기(170만년전~현재)로 구분한다. 제3기는 5개의 소시대로 구분하는데 점신세(3천6백60만~2천3백70만년전)에 히말라야 산맥, 중신세(2천3백70만~5백30만년전)에 알프스 산맥이 형성된다. 이로써 쥐라기 시대로부터 약 2억7천만년 동안 계속되어온 알프스 조산운동이 종료되어 현재와 흡사한 지형과 숲의 모습이 완성된다.

사람과 비슷하지만 아직 서서 걷지 못하는 동물은 6백만~1천4백만년 전에야 나타나는데 그것은 라마피테쿠스(Ramapithecus)라는 원시인간이다. 비로소 5백만년 전, 그러니까 신생대 제3기 선신세의 초기에 와서야 서서 걷기도 하고 인간의 형상에 걸맞은 모습을 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남부 아프리카의 숲에 나타난다. 숲이 생긴 지 4억년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인간이 숲과 만나게 된 것이다. 숲이 인간을 낳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들이 태어났을 때 숲은 생명의 아우성으로 가득차 있었다. 온갖 종류의 풀과 나무와 꽃과 열매들이 그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을 것이다.

‘숲은 단음절어로 되어 있지만 그 속에 무궁무진한 경이의 세계가 숨어 있다.’ 서독의 초대 대통령 테오도르 호이스의 외침이다.
〈김기원/ 국민대교수·‘숲의문화’ 발행인〉

출처 :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