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심성과 환경문제



















2007년 02월 25일

오랬만에 시골에서 필자를 만나러 온 한 친구가 “나는 서울에서 못살것 같다. 숨이 막힐 것 같은 오염된 공기와 교통체증. 서울에 들어서자마자 목이 답답해지더라”는 것이다.

25년 전에 로마클럽이 경고한 인류장래의 네 가지 위협요소인 ‘인구폭발', ‘자원감소', ‘핵무기', ‘환경오염' 중에 오늘을 사는 우리가 가장 실감하는 문제는 환경문제가 아닐까?

삼림욕장에서 뿜어 나오는 신선한 공기로 호흡하고, 정수된 물을 마시며, 무공해 음식을 즐기는 유형(有形)의 사상(事象)들만이 환경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경제를 위해 환경을 파괴하고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환경불감증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미 만성이 되어버린 지구의 환경병(病)은 훼손된 자연을 원상 복구하는 데서 고칠 것이 아니라 자연에 폭력을 가하고 있는 인간의 생활양식을 근원적으로 반성하는 데서부터 고쳐야 한다는 환경윤리론자들의 주장은 반박할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문제에 대한 기술공학적인 접근을 한시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데에 우리는 공감한다. 무엇보다도 신성한 지구를 보살피는 일은 우리세대는 물론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이 인류가 존속되어 갈 수 있는 불변의 진리라 할 수 있다.

환경 파괴는 유년기에 생긴 억압 본능의 일환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아이들의 잘못된 성장 과정과 교육이 환경 파괴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격의 분열은 자기 파괴로 이어지며 곧 이러한 파괴는 주위의 환경 파괴로 확산된다. 이처럼 무분별하게 벌어지는 생태계의 파괴는 곧 바로 인간성의 파괴를 불러온다는 사실이다.

지능 지수(IQ)가 아무리 높아도 감성 지수(EQ)가 발달되지 않으면 허사라는 이야기를 요즘 많이 들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냉철하고 논리적이며 기계적 인간보다는 순수하고 풍부한 감정과 이른바 인간성이 좋다는 사람들을 따르고 친해지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감성 지수를 높일 수 있을까? 감성 지수는 회색 빛 콘크리트 정글 속이나 컴퓨터 게임 놀이에서는 자라지 않는다. 시골 밤 하늘의 찬란한 은하수와 별들을 보면서, 아름다운 저녁 노을을 보면서, 숲 속의 솔바람 소리, 푸른 녹음과 시냇물 가에서 물장구를 치면서 자라는 것이다.

아주 반항적이고 거친 사춘기 아이들에 대한 상담은 밀폐된 실내 공간보다 아름다운 공원이나 야외에서 하는 것이 아주 효과적이라고 상담 심리학자들은 보고하고 있다. 심리 상담과 아울러 자연은 상처받은 마음을 아주 효과 있게 치유해 주기 때문이다. 학교 교육 또한 마찬가지이다. 실내 교육보다도 가끔 교정의 큰 나무 밑이나 자연 속에서 학습하는 것이 매우 큰 학습 효과를 가져온다.

자연은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자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