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츠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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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작고 마른 체격이다. 도무지 수트를 입어도 뽀대가 안 난다. 방법을 알려달라’ 혹은 ‘당신이 그토록 입이 마르게 칭찬하는 E 브랜드나 B 브랜드의 수트가 좋다는 건 알겠는데, 난 그걸 살 만한 능력이 안 된다.

값싸고 품질 좋은 수트를 구입할 수 있는 곳을 알려달라’ 혹은 ‘곧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인이 된다. 수트를 사야 하는데 어떤 걸 사야 할지 모르겠다. 어디서 살까?’ 등등.

내 메일로 쏟아져 들어오는 이 질문들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를 추론할 수 있다.



하나는 스무 살 꽃띠 시절 신촌과 종로 일대를 휘어잡았던 이 몸의 인기가 여전히 식지 않았다는 것과(웃자고 해본 소리다), 대부분의 남자는 수트 차림이 사회생활을 하는 남자의 기본적인 옷차림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누구나 멋스럽게 수트를 소화해내고 싶어한다는 것.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리 백이면 백, 수트에 대한 것만 물어올 수 있을까.


그 누구도 “어떤 셔츠가 좋은 셔츠입니까?”라고 묻지 않았다. “어떤 셔츠가 수트 차림을 돋보이게 해주나요?”는 더더욱! 이건, 아주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수트를 멋지게 입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으면서도 정작 수트 차림의 기본이 되는 셔츠의 중요성은 간과하고 있다.

목둘레가 커서 빙빙 돌아가는 셔츠를 입고서 멋들어진 수트 차림을 꿈꾸는 건, 더하기 빼기를 제대로 못하면서 미적분을 잘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허황된 일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18세기 후반, 젊은이들 사이에서 권총 자살이 유행하고 베르테르가 입은 것과 비슷한 노란색 조끼가 날개 돋힌 듯 팔렸던 것처럼 스콧 피츠제럴드가 <위대한 개츠비>를 발표하던 무렵엔 실크 셔츠가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다.

사랑하는 여자의 눈길을 끌기 위해 매일 밤 자신의 저택에서 성대한 파티를 열던 진짜 멋쟁이 개츠비의 옷장은 실크로 만든 셔츠들로 가득 차 있었고, 매일 밤 성대한 파티를 열 저택도, 돈도 없던 그 시대의 남자들은 동네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재단사를 찾아가 실크 셔츠를 맞추는 것에서 만족을 얻었다.

그러나 지금은 2004년, 신사의 옷장을 채울 자격을 갖춘 셔츠는 오직 코튼(Cotton)뿐이다. ‘Cotton 100%’ 혹은 ‘면 100%’라고 쓰인 라벨을 달고 있는 셔츠만이 멋쟁이의 옷장을 채울 자격이 있다.



‘면 95%, 라이크라 5%’ 꼬리표를 단 셔츠는 편안한 착용감과 활동성을 보장한다는 면에서 특별히 허락하기로 한다.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여름엔 리넨 소재 역시 예외로 하자.

그러나 기억할 것은 언제 어디서나 셔츠의 기본 소재는 면(!)이라는 거다. 순면, 그 중에서도 셔츠 소재로 많이 쓰이는 포플린이나 옥스퍼드 소재는 구김이 잘 간다. 따라서 입기 전에 정성껏 다려야 한다.

홈쇼핑에서 광고하는 ‘구김이 가지 않는 셔츠’ 같은 건 잊어라. 그런 건 ‘매일 아침 넥타이 매는 시간조차 아까우시죠? 이 매직 넥타이 하나면 3초면 됩니다’라며 지하철 노점상이 파는 똑딱이 단추로 붙였다 뗐다 하게 되어 있는 유치한 넥타이에나 어울린다.
 










 기본은 어디까지나 화이트! 그러나 컬러에 있어서는 ‘다다익선’이라는 옛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소재에 있어서는 목에 힘을 주어 ‘오로지 코튼!’을 주장했다 할지라도.

셔츠의 컬러는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좋다. 블루나 옐로, 핑크, 옅은 브라운에 이르기까지.

간혹 화이트 셔츠만 고집하는 이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머리를 긁적이면 이렇게 대답한다. “넥타이 색깔 맞추기도 좋고, 어떤 수트에도 잘 어울리잖아. 매일 아침 셔츠랑 넥타이 색깔 맞추기 귀찮아.”



아, 답답하고도 답답하다. 자장면을 먹을 것이냐, 짬뽕을 먹을 것이냐를 고민하는 일이, 혹은 빵빵한 Ga슴을 가진 순이를 만날 것이냐, 늘씬한 다리를 가진 영희를 만날 것이냐 고민하는 일이 우리에게 진정 고통스러운 일이던가.

어떤 셔츠에 어떤 타이를 매치할 것인가 하는 것 역시 이런 고민들과 다를 바 없다. 우리를 고민에 빠뜨리지만 말 그대로 행복하고 즐거운 고민이라는 것이다.

깔끔한 느낌을 주는 블루와 패셔너블한 느낌을 주는 핑크, 믿음직한 분위기를 연출해주는 베이지 컬러 셔츠는 꼭 갖추어 놓아라. 스트라이프 패턴 셔츠 역시 멋쟁이라면 꼭 갖추어야 할 품목.

스트라이프는 아무 무늬 없는 셔츠에 비해 보다 정돈되고 세련된 느낌을 연출해준다. 단, 지나치게 화려한 색상의 스트라이프 패턴은 피할 것.
 




어떤 색을 선택해야 할지 망설여진다면 일단은 푸른색 계열의 스트라이프를 먼저 시도하라. 실패할 위험은 가장 적으면서 다른 컬러들보다 깔끔한 인상을 만들어준다.







어느 옷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최고급 소재로, 최고 기술자의 손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사이즈가 맞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옷 잘 입는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라. 누구보다 자신의 사이즈를 정확히 알고, 거기에 맞게 옷을 입는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셔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둘레. 목둘레가 너무 꽉 끼면 당신의 목은 줄줄이 비엔나의 연결 부분처럼 우스꽝스러워진다. 목둘레가 너무 크면 셔츠가 목 주위에서 빙빙 돌게 되고, 자연히 멍청해 보인다. 말이 난 김에 서랍 속에서 줄자를 찾아 자신의 목둘레를 한번 체크해보라.
 


똑바로 앞을 본 상태에서 셔츠의 깃이 닿을 만한 높이의 목둘레를 잰다. 거기에 3센티미터를 더한 것이 당신의 목둘레 사이즈다. 줄자 꺼낸 김에 팔길이도 한번 재보자. 팔길이 역시 똑바로 앞을 향해 선 상태에서 재야 하는데 목을 약간 숙이면 튀어나오는 목뒤뼈부터 재면 된다. 거기에서부터 어깨를 따라 손까지, 정확히 말하자면 손목뼈까지를 잰다. 그런 다음 거기에 3센티미터를 또 더하라. 그게 당신의 소매 사이즈다.

항상 재단사가 일일이 당신의 사이즈를 잰 다음 만드는 맞춤 셔츠만을 입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 두 사이즈는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좋은 셔츠는 당신의 피부를 부드럽게 감싸면서 수트 재킷이 몸에 더 잘 맞도록 해준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셔츠는 수트 차림의 기본이다. 값비싼 수트는 형편없는 소재로 만들어진, 사이즈조차 맞지 않는 셔츠를 가려줄 수는 있을지언정, 셔츠 자체를 훌륭한 것으로 탈바꿈시키진 못한다. 그러나 훌륭한 셔츠는 보이는 곳에서, 혹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싸구려 수트를 훌륭한 수트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 그게 바로 훌륭한 셔츠가 가진 위력이다.

그러니, 이제 어떤 수트를 입을지를 고민하기에 앞서, 어떤 셔츠를 입을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라. 수트에만 투자하지 말고 고급 셔츠를 장만하는 데에도 아낌없이 투자하라(신사의 옷장엔 적어도 열 벌의 셔츠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더하기·빼기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미분·적분을 잘할 수는 없다.
 




아, 근데 난 왜 그토록 수학을 지지리도 못했을까? 오백삼십팔 더하기 육백칠십육은? 천이백십사! 육천팔백이십구 빼기 사백육십삼은? 육천삼백육십육! 더하기 빼기를 이토록 잘하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