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왜 사냐고 묻거든 그냥 웃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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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만난 친한 잡지사 선배에게 재밌는 얘길 들었다. 일년에 반 이상은 출장중인 선배가 최근 황당한 출장을 종종 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녀가 ‘자신이 명품임을 명명백백 밝히기 위한 출생지 순례’라고 이름 지은 정체불명의 그 출장은, 소위 신생 ‘명품’ 브랜드들이 파리나 밀라노 등지의 본점을 직접 보여줌으로써 자신들이 급조된 ‘가짜’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한 프레스 투어였다. 바야흐로 패션지 프레스 투어에도 요상한 트렌드가 불고 있는 것이다.

“사기 칠 거면 소설로 그렇게 쳐야 되는데 말이야. 그 정도면 ‘구라’도 예술 아니냐?” 소설에서의 입심이라면 대한민국 최고인 게 분명한 소설가 이기호가 필립(‘빈센트 앤 코’ 사장 이름)의 사기행각에 혀를 차며 내게 했던 말이다. 왜 아니겠는가. 다년간 시계 박람회를 섭렵한 기자의 눈도 속인 언변으로 어린 악어의 목덜미에서, 그것도 20㎝만 채취할 수 있는 희귀 가죽 운운하며 뻥을 친 필립. 베르사체나 에르메스 같은 가족 기업의 뉘앙스까지 카피해 직원들에게 ‘사장님’ 대신 자신의 이름 ‘필립’을 부르게 했다는 명민한 사기꾼이 그 아니던가. 빈센트 시계의 스트랩이 뱀의 가죽이라서 홍보 행사에선 러시아 무희들을 불러 뱀 쇼까지 했다는 얘길 듣고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어쨌든 왕족만 찬다는 스위스제 명품이 졸지에 ‘메이드 인 시흥’으로 바뀌어버렸으니, 그걸 제 돈 주고 산 사람들은 억울해 거품 물 일이다. 하지만 소문에 의하면 한 백화점은 VIP를 뺏기지 않으려고 빈센트 구매 고객들에게 시계 가격의 3배를 주고 반품해줬다고 하니, 믿거나 말거나, 이게 코미디인 건 분명하다.

우습지만 일년 전쯤 호치민으로 출장을 가던 내게 패션잡지 뷰티팀 선배가 선물로 건네주던 제품도 3LAB이었다. 초단기간 면세점 입점, 상위 1%의 바로 그 명품 말이다. 뉴욕의 ‘니먼 마커스’에도 입점했고, 귀네스 팰트로도 아껴 쓴다던 화장품이 결국 꿈의 공장 할리우드 옆, 자신의 가내공장에서 만든 교포의 LA산 발명품이라는 게 ‘PD수첩’에 의해 탄로나고 말았다. 베테랑 뷰티 기자도 깜박 속아 넘어갔으니 하물며 나 같은 사람이야. 화장대 위 그 제품을 볼 때마다 고민한다. 버릴 것이냐, 말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관이다.

미술평론가 이정우는 언젠가 빈센트 시계를 모아 벨트를 만들면 좋겠단 얘길 했었다. 그 얘길 듣고 그림 그리는 친구 한 명이 제안을 했는데, 기념비적인 그 가짜 시계들을 모아 거리 퍼포먼스를 하거나, 백남준 식의 위트 있는 작품을 만들면 재밌겠다는 것이다. 얘길 듣다가 90년대 중반 절판되었던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떠올랐다. 초판본을 구하겠다고 ‘흙서점’, ‘책창고’ 같은 헌책방을 헤맸던 수많은 애서가들 중엔 나도 있었다. ‘판매금지’된 순간 우리들 사이에서 그것은 ‘전설’이 되어 버렸다. 빈센트 시계는 어쩌면 반대급부로 하나의 전설이 되는 건 아닐까. 가짜명품의 전설 말이다.

“나 우산까지 샤넬 써요!”라고 일찌감치 자신의 명품중독증을 커밍아웃한 나카무라 우사기(‘나는 명품이 좋다’의 저자)는 명품이 대를 물려 사용할 수 있는 좋은 물건이기 때문에 산다는 사람들을 한껏 비웃은 적이 있다. 사실 책에서 그녀가 샀다고 밝힌 샤넬의 우산은 방수가 안 된다. 루이뷔통의 다이어리에 부착된 볼펜걸이 역시 너무 가늘어서 루이뷔통 볼펜이 아닌 다른 펜을 꽂을 수 없도록 제작되었다. 한마디로 실용성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요점은 그거다. 사람들은 그것이 명품이니까, 명품이라서 산다. 다른 이유? 없다.

“나에게 있어서 자본주의란, ‘부자라는 영광의 골을 향해 맹렬하게 싸우는 게임’ 이다. 그리고 명품은 그 게임의 경품이다.” 인터넷에 뜨면 너끈히 악플 백 개쯤은 붙을 말이지만 명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이 여자처럼 명쾌하게 떠든 사람도 드물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카무라는 결코 부자가 되지도, 부자가 될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는 것. 그녀가 한국인이었다면 덜컥 전세를 월세로 바꿔 빈센트 시계를 샀을지도 모를 일이고 말이다. 그나저나 방수도 안 되는 샤넬 우산이라니, 그건 가짜 빈센트 앤 코 시계보다 지독한 농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