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피하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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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여자를 보고 도망치는 것에는 다섯 가지의 이유가 있다.

그 첫째는 무거운 것.

 둘째는 큰 것

 셋째는 딱딱한 것

 넷째는 요란스러운 것

 다섯째는 '척'하는 것이다.


첫째 --- 무거운 것

남자들은 본질적으로 여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여자가 무거우면 급할 때 업고 도망칠 수가 없으니 토끼처럼 가벼운 여자를 원한다.
그런데 묘하게도 여자들은 자신들을 도리어 무겁게 단장을 한다.
흔히 몸무게가 나가는 비대형의 여성들이 자신의 몸매를 날씬하게 보이기 위하여 검은 옷을 즐겨 입는데 물론 약간의 효과는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반면의 그 역기능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검은색은 빛을 흡수하므로 축소해 보인다는 이론이 있겠으나
반면 검은색은 흰색에 비해 엄청나게 무겁게 보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남자들이 비대형의 여성들을 기피하는 것은 살이 쪘다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살이 쪄 무겁게 보인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러나 흰색은 상대적으로 가볍게 보인다.
흰 솜덩이는 커도 거부감이 없지만 보다 작은 쇳덩이나 돌덩이는 위압감을 준다.
또한 흰색은 어느 경우도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흰색은 바로 생명의 본바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의천사라 하고 검은 악마라 한다.
흰색은 결백과 순종과 화합의 감정을 주고 검은색은 억압과 도전과 은폐의 감정을 준다.
흰색을 대할 때는 가볍고 평화스러운 쾌감을 주지만 검은색은 무겁고 불쾌감을 준다.
쾌(快)는 미감을 일으키고 불쾌는 추(醜)한 감정을 일으킨다.
그래서 사람들도 흰 피부를 좋아하듯이 곤충들도 흰 꽃을 제일 좋아한다.

여자가 발이 크니  신발도 커서 싫다.

여자가 몸이 크니 품안에 감출 수 없어 싫다.

여자가 머리통 크면 싫고 코도 크면 싫다.

여자가 입도 지나치게 크면 식량소비가 많고 똥뱃장도 커지니 싫다.

여자가 키가 크면 내 키가 작아져 싫다.
키큰 미인은 순간이다.
키큰 여자는 멀리 보면 좋으나 접근할수록 감점이 되니 싫다.
키 큰 여자는 나이를 먹으면 더 싫다.

여자가 여왕개미처럼 커서 그 앞에 복종해야 하니 싫다.

거미와 버마재비(사마귀)는 암놈이 크다.
그래서 이들은 교미 후 암놈이 숫놈을 잡아 먹는다.
나도 그런 꼴 당하기 싫으니 싫다.


여자가 커서 좋은 것은 앞Ga슴 하나 뿐이다.
식량창고 커서 손해 날 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여자의 앞Ga슴을 좋아한다.

알은 작아야 예쁘듯이 여자는 땅콩처럼 작아야 귀엽고 예쁘다.


남자는 멋있다 보다는 귀엽다를 선호한다.

여자는 작아야 묘미가 있다는 한자가 妙(묘)자다.
그래서 여자가(女) 작다(小)는 한자가 妙자다.
병아리는 작아서 예쁘다.
남자는 늙은 암탉보다는 영계나 병아리를 좋아한다는 이치를 알라.

여자들이 이쁜이 수술을 하는 이치를 알라.

그런데 여자들은 머리를 크게 부풀려 숫사자의 갈퀴처럼 세우길 좋아하는
경향이 있고 콧대 높이기를 좋아한다.
콧대 높으면 고집이 세니 싫다.
 
씨름꾼들이 씨름을 할 때 고운 모래를 깔고 씨름을 한다.
부상을 막기 위해서다.
사람이 실수로 바위나 돌기둥에 이마를 찧었다면 큰일이다.
부상을 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이빙은 물속을 향해 뛰어들지 바위를 향해 뛰어 내리는 법은 없다.
부드러운 것에는 부딪쳐도 부상을 입지 않는다.
그래서 부드러운 것은 촉감이 좋다고 한다.
인간들은 경험을 통해 이렇듯 부드러운 것에서는 미적 쾌감을 일으킨다.
그러나 딱딱한 것은 자신을 해칠 수 있으므로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여자들이 골격이 크면 억세고 딱딱해 보인다.
남자들은 땡기면 휘여지고 밀면 밀려나는 대상에서 안주 하고자 한다.
그래서 버드나무 끝자락처럼 는실난실한 여성들의 몸매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억세고 딱딱한 여성 속에 안주 하고자 하는 남성들이다.
여자를 앞세워 단단한 성벽을 치자는 방어적 자세일 것이다.

여성들이 타고난 골격이야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기타 의상이나 피부 음성 모발등을 관리하여 자신을 부드러운 여성으로 변모시킬 수도 있다.
그런데 요즘 일부 여성들의 화장들의 보면 본래의 부드러운 모습을 도리어 억세고 딱딱하게 만든다.
얼굴에 모자이크식의 화장을 하거나 절간의 단청처럼 요란하고,
눈이면 눈. 입이면 입의 구역정리가 잘된 지도처럼 화장을 한 사람들도 많다.

우리가 어느 물체나 사물을 바라볼 때 그 실체를 파악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면 안된다.
시간이 걸릴수록 그 대상은 중량감이 가중되고 딱딱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단식 화장이나 옷차림은 딱딱해 보인다.
시점에 막힘 없이 흘러내리는 조화로운 몸단장이 필요하다.
남자들은 그것을 좋아한다.

요즘 요란스러움을 좋아하는 여성들이 많다.
머리 모양새나 화장 그리고 의상. 장신구등을 요란하게 하고 마치 17세기 영국에 귀부인이 된 듯 착각한다.
그러나 남자들 눈에는 곡마단에 광대같아서 싫다.
더구나 요란한 머리칼은 싫다.
그 여자 얼굴을 쳐다볼 때 어지로우니 더욱 싫다.
1970년대 우리나라에 거지머리라는 헤어스타일이 있었다.
참으로 거러지 형상에 머리 모양새였다.
이것이 남성들한테 외면 당하자 3년도 체 못가서 사라졌다.

그런데 요즘에는 번개머리라는 새 머리모양이 등장했다.
아프리카 어느 원주민 여자가 이런 모양새에 머리를 한 것을 본 일이 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주변에서 이런 모양새들을 더러 본다.
이 번개머리라 하는 것은 번갯불처럼 날카롭게 보인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
같은데 이는 매우 도전적이다.
2차 대전 당시 바다의 군함을 공격하던 해상용 지뢰와 같고 뻣센
밤송이같은 머리 모양새다.
그래서 남자들은 다칠까봐 싫어한다.
독충이나 독버섯 그리고 냄새나는 풀쐐기 같은 해충들은 그 색깔이 혼란하게 생겼다.
짙게 화장하고 요란스럽게 단장한 것처럼 눈에 잘 띈다.
그러나 먹이를 찾는 동물들도 그에게는 잘 접근을 하지 않는다.
"날 잡아잡슈!"하지만 별로 관심이 없다.
주둥이를 대봤다가 한번 혼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도 과거의 경험을 가지고 살아간다.
한 시대의 유행은 그 유행이 창출될 때까지의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충족이 불가능할 때 다른 형식으로 그 욕망이 충족되고 그리고 널리 공감대가 형성될 때 이를 유행이라 한다.

그러나 한두 사람에 의도적인 것이거나 왜곡된 형식에 욕구충족은 한때의 유행의 물결을 탄다고 해도 곧 사라진다. 그래서 번개머리도 곧 사라질 것이다.
어떠한 유행이라도 그것은 정당한 인간욕구(美)의 반사 이여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물을 대할 때 미추를 가릴 수 있는 것은 인류가 수천만 년을 살아오면서 얻어온 경험에 귀중한 소득인 것이다.
기계문명의 발달은 그 내부 기능과 함께 외부의 모양새도 발전하였다.
초창기 엉성한 비행기나 자동차의 모습이 지금은 얼마나 매끄럽고 날씬한가!
즉 어수선하고 복잡한 모습에서 단순한 쪽으로 변한 것이다.
요란스러운 것은 시각적 혼란이 생긴다.
이런 혼란상태를 우리는 감각적 표현으로 불쾌 또는 추하다 한다.
반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을 쾌. 또는 미(美)라 인지하고 있다.
즉 한눈에 반했다는 말과 상통하는 것이다.
백사람이 보아도 한곳으로 집중되는 시각포인트.
이것은 남을 한눈에 반하게 만든다.
그것도 가장 일반적인 것으로 모이게 한다.
인간의 핵인 눈으로 모이게 해야 하는 것이다.
화장. 장신구. 머리 모양새등 모두가 눈으로 끌어들이는 통로로만 담당하면 된다.
눈에는 감정이 있고 빛이 있다.
그런데 눈의 통로에 장애물이 설치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것들은 새치기꾼이다.
새치기꾼이 들어오면 혼란스럽다.
그래서 남자들은 이런 새치기를 싫어한다.
추하다는 개념은 혼란스러움이고 아름답다는 개념은 단순성에 있다.
단순하면서도 시각적 혼돈이 없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조화이다.
단순한 도형이나 물체는 쉽게 그것과 익숙해지듯이 단순한 차림에 몸단장은 쉽게 그와 친근감이 생긴다.
화장이나 의상 기타 장신구를 통해 자신의 아름다움을 표출코자 할 때는 사전지식과 안목이 필요하다.
남이 나를 보는 것 보다 먼저 자신이 남을 보는 미적 감각을 키워야 한다.
원숭이가 의상이나 화장 그리고 장신구를 통해 자신을 아름답게 보이고자 한다면 그것은 애초에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원숭이는 원숭이다워야 귀엽고 아름답다.
아기는 아기다워야 하고 동양 여성은 동양여성다워야 아름답다.
그리고 이 다워야 한다는 어원에 본 뜻은 가식 없는 원형 그대로를 뜻한다.
신이 동양인에게 축복 하나를 주었다.
그것은 동양인에 까맣고 빛나는 아름다운 눈동자다.
그런데 그 주변에 요란스럽고 혼란하게 칠을 하여 그 눈동자에 빛을 가릴
필요는 없다.
그래서 남자들은 이런 요란스러운 여자들을 싫어한다.

요즘 이 '척'하는 병이 유행처럼 번져간다.

키 작은 여자가 키 큰 척.

뚱뚱한 여성이 날씬한 척.

얼굴이 대추알처럼 작은 척.

하마 같은 입을 제비 입인 척.

늙은이가 젊은 척.

여성들이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척하는 것은 말아주기 바란다.
남자는 여자들이 굽높은 구두를 신었다고 키 크게 보지 않고
몸에 착 달라붙은 옷이나, 검정색 의상을 입었다고 날씬하게도 보지 않는다.
화장을 짙게 한다고 늙은이가 젊게 보이지 않을뿐더러 도리어 짙은 화장이 자연스런 주름보다 더 추하게 보인다.
머리칼을 까치집처럼 흩트려 놓거나 뜬구름처럼 부풀려 놓고서 자신의 얼굴이 작게 보이길 바라거나 검은머리에 노랑물을 들여놓고 서양사람의 금발미인으로 봐 달란다면 웃기는 일이다.
서양사람들 같은 금발의 효과를 내려면 얼굴. 피부. 눈. 코등이 그에 준해야 금발의 효과가 있다.
동양 여성은 동양 여성 다워야 미인이다.
태양 아래 횃불보다 촛불 아래 횃불이 다 밝다는 이치를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 제일 추악한 것이 무엇인가.
이것은 감춘 것이 드러났을 때이다.
머리에 쓴 가발이 바람에 날려 벗겨졌을 때와 같이 추악한 것이다.

하기야 남자들도 '척'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선가인 척.
인정 많은 사람인 척.
천지를 꿰뚫어보는 도사인척.
그러나 이 남자들의 '척'은 그들에겐 실속 있는 '척'이다.
왜냐하면 여자들은 남자들 '척'하는 것에 잘도 넘어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자들은 여자들 '척'에 아무도 속을 사람이 없다.
도리어 여성 자신들의 속만 내보여 정이 많은 척 하는 남자들만 냄새맡고 날아든다.
눈이 아무리 밝아도 제 코는 못 본다는 말과 같이 거울만 쳐다본다고 미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여성들의 유일한 '미인비법'은 제 바탕을 그대로 드러내어 가꾸는 것이다.
여성 특유의 아름다운 마음의 심상을 에너지로 운동화시켜 외부에 노출시키는 것이다.
조각가들처럼 말이다.
키 큰 사람은 늘씬해서 좋고 키 작은 사람은 귀엽게 보여 좋다.
뚱뚱한 사람은 덕스럽고 복스러워 좋고 마른 사람은 샤프한 맛이 있어 좋다.
이런 것들은 우리 남성에게 공리심을 일으켜 쾌감 또는 미적 감각으로 발로된다.
아울러 우리 옛말에 덕이 연지요 정이 곤지라는 말도 잊지 말아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