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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선생님


일년 전 라디오에서 ‘내 생애의 한 만남’라는 제목으로 소개 되었던 시인 문정희님의 얘기이다. 너무 감동을 받아 이렇게 ‘아름다운 인연 이야기’에 적어 보려 한다. 옛날 생각을 더듬으며.....

며칠 전 나는 생애에 아주 의미 ?은 한 분과 작별했다. 그 분의 부음이 전해 지던날, 홀로 잠을 설치며 30여 년전의 낡은 앨범을 꺼내 놓고 옛추억을 더듬었다. 그 분은 바로 어린 나에게 문학의 길을 열어 주신 고등학교 시절의 스승이 셨다.

진명여고 1학년 초가을이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아직고 수업 분위기가 다소 뒤숭숭할 어느날, 국어 선생님이 찾는다는 소리에 Ga슴을 두근거리며 교무실 문을 열었다. 햇살이 찰랑거리는 창가에 안경을 끼고 단이하게 앉아 계시던 선생님이 미소를 지으며 손짓했다. “네가 전국 여고생 문학 콩쿨에서 많은 응모작을 제치고 당선됐다.” 선생님은 다소 빠른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순간 나는 모든 모리카락이 하늘로 치솟는 것 같은 기쁨에 어쩔 줄 몰랐다. 방학 숙제로 제출한 시를 선생님께서 응모해 주신 것이다. 선생님과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동시에 나의 문학 인생도 시작되었다.

그해 가을, 나는 이화여대 즉흥 백일장에 나가게 되었고 거기에서 〈아침〉이라는 제목으로 장원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그 후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이대를 비롯하여 성균관대, 동국대, 경희대 등의 백일장에서 20여 회나 장원에 당선됨으로써 일약 고교문단의 기수가 되었다.

진명여고 졸업식 날, 나의 목에는 개교 이래 문학 부문에는 처음으로 수여 된다는 최고 특기상의 금메달이 걸렸다. 이 모든 것이 선생님의 열성 어린 지도 덕분이었음을 말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물론 어린 시절의 이러한 백일장 당선 경험이 문학의 본질적 성취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까지도 그때의 경험을 늘 즐거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일찍 핀 꽃은 일찍 지는 것이 아니라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그런 예가 되고 싶었다.

새 책이 나왔을 때나 문학상을 받았을 때 나는 선생님께 제일 먼저 전화를 드렸다.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평생을 나를 지켜 보시고 북돋워 주시던 선생님, 이제 연로하신 그 선생님께서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선생님은 이미 나를 알아보지 못하셨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고 선생님 께선느 곧 돌아가시고 말았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시조 시인이기도 했던 나의 스승, 선생님이 누구보다도 나를 자상스럽게 생각하시던 그 분은 참으로 정성이 많으신 진짜 스승이셨다.

항상 예의 바르게, 겸손하게, 언제나 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하라는 그런 선생님의 말씀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선생님께서는 창작하는 사람에게 “아, 이 작품 참 잘 썼다”는 말처럼 필요하고 Ga슴 뛰는 말이 또 있을까.

선생님은 지금도 햇살이 비치는 창가에 앉아 내 시를 읽으며 이렇게 나를 부추기시는 것만 같다.

살벌하고 계산뿐이라는 이 시대에 좋은 스승을 만나 좋은 공부를 할 수 있었음에 새삼 뜨거운 눈물이 솟구친다.

내가 태어나서 이 생애에 가장 아름다운 만남 이라 하겠다.

19.相識이 滿天下하되, 知心能幾人고. <孔子>

이말의 뜻은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온 세상에 많지만, 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입니다. 공자님의 말씀처럼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그런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는 먼저 내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하겠지요? 내 자신이 먼저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가 되어 이런 과제가 있을 때마다 아름다운 친구, 만남, 인연으로 기억되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여기에는 제 어렸을 때, 그래도 서로 마음이 통했다고 생각되는 친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음악시간에 처음으로 '리코더' 라는 악기를 배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재주가 없었던지 삐삐거리는 소리만 날 뿐, 리코더라는 악기로 노래를 연주한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무척 안타까워 할 때, 저에게 기회가 찾아왔었습니다. 저희반과 옆반이 함께 분반 수업을 하게 되었고 저는 옆반으로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옆반의 수업 시간이 바로 리코더를 배우는 음악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제 주위에는 온통 리코더를 잘 연주하는 아이들 뿐이었고, 저는 무척 창피했지만 나도 배우고 싶다는 일념하나로 아이들에게 특별 교육을 받으며 열심히 한 결과, 그 수업이 끝나고 다시 저희반 교실로 돌아 올 때에는 리코더가 더 이상 저의 막대기가 아닌, 악기가 되었던 것입니다.이렇게 해서 저는 리코더라는 악기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해에 서울에 살았던 저희 가족은 부천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물론 저는 전학을 하게되었습니다. 4학년 4반에 전학을 오니 아이들은 매우 친절하고 선생님께서도 할아버지같이 인자한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낯선 환경이다보니 적응이 잘 안되고, 마음이 맞는 친구가 아직은 없던 차에, 저와 똑같이 서울에서 한 친구(?여자 친구임)가 전학을 왔습니다. 저는 비슷한 처지인 그 친구가 참 가깝게 느껴졌었습니다. 하지만 서로 말도 한번 해보지 못한 상황에서 음악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고, 그시간에 "리코더 연주"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내심 그 때 리코더를 배워두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전학와서 리코더도 제대로 못 부르면 아이들이 무시할까봐 집에서 갈고 닦은 실력으로 연습을 해 보고 기쁜 마

음으로 학교에 갔었습니다. 드디어 음악 시간!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아이들 중에는 과거의 저처럼 리코더를 제대로 부를 줄 아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전학 온 그친구는 저보다 한 수 위일 만큼 리코더를 아주 잘 불렀고, 그 것을 계기로 해서 그 친구와 절친한 단짝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저희 둘이 하도 붙어다니고, 둘다 리코더를 잘 하는통에 같은 학교에서 전학왔다는 소문까지 나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그 학교에서 처음 만났는데 말입니다.

그 친구의 이름은 '유현정'이고,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유현미'라는 2살아래의 여동생이 있었는데, 제 여동생과 같이 다니는 단짝, 개구쟁이 단짝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 둘은 학교가 끝나면, 2학년 교실로 함께 가서 동생들을 기다리고, 숙제도 함께하였습니다. 그 친구는 위에 언니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언니에게 리코더를 배웠다고 하며 많은 악보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둘은 심심 할 때마다 악보에서 화음을 나누어 함께 연주해 보며 우정을 키워갔습니다. 이런 저희에게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그 전학간 학교에서는 한 학기마다 '경시대회'를 열었었는데, 그 종목에 " 리코더 연주하기 (중창) "이 있어서 저희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함께 나가기를 원했고, 곡은 현정이와 함께 의논해서 정해, 화음을 나누어 연습했고, 열심히 했 던 탓인지 매 번 입상 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더욱 더 친해진 저희들은 서로의 집도 가까워서 저희 아파트가 소독 하는 날에는 그때 한 창 유행했었던 "블루 마블 게임"하나만 챙겨 동생들과 함께 4명이서 시간이 다되는 줄도 모르고 현정이 집에서 놀던 적도 있었습니다. 놀 때에는 사람이 많아야 되니까 동생들까지 합세해서 저희 4명은 참 많이도 놀았습니다. 동생 관계가 아닌 친구팀과 친구팀대로 편을 먹고, 정정 당당하게 했지만 거의 저희들이 동생들을 이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휴일이면 항상 교회도 넷이서 함께가고, '달란트'도 누가 많이 가지고 있나 내기하고, 놀 때면 학교 운동장에 모여 편을 짜는 것부터 해서, 땅에 그림을 그리고 하는 땅 따먹기, 개 뼈다귀, 그리고 고무줄 놀이 등 다양한 놀이도 하였습니다.

그 친구는 공부에 대한 열정도 대단했었습니다. 물론 공부도 상위권으로 잘 했고요. 그 덕분에 저도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말처럼 열심히 배우고 물어보면서 함께 주간 학습지도 하며, 문제지도 여러 장 복사해서 두 번, 세 번 풀어보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4학년 2학기에는 처음으로 둘 다 올"수"를 받기도 하였습니다.아마도 그 친구가 저에게 "공부"라는 것을 처음으로 일깨워 준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해서 한 학년이 지나고, 5학년 때에는 서로 반이 엇갈려 그것도 교실조차 다른건물로 되었고, 그래서 서로 만나는 시간도, 함께 노는 시간도 적어졌고, 그 친구도 저도 새로운 반에서 적응 하기 위해 새 친구를 사귀게 되었고, 그 친구와 더 친하게 지낼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질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정이는 얼마나 속이 깊던지 "내가 너랑 더 친하게 못 지내고, 다른 친구랑 다녀서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서로를 이해하려고 존중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친구들과 지나가다 만나면 인사하는 정도로 하고,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융화되며 점점 서로를 잊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5학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저희 가족은 지금의 안양으로 다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현정이를 잊고 있었는데, 현정이는 제 동생이 현미에게 말해서 그

사실을 알고, 제가 이삿짐을 열심히 나르고 있을 무렵, 예쁜 편지지에 2장에 걸친 긴 편지를 써서 그 분주한 속에서 저를 찾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빨리 출발하는 통에 제 동생을 통해 편지를 받았고, 이사오는 트럭 속에서 그 편지를 읽었습니다. 첫 제목과 끝 제목이 똑같았는데, 저는 그말이 너무 Ga슴을 울려 몇 번이고 다시 읽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영원한 벗에게…"

그 편지속에 그 친구의 전화번호가 적혀있어서 이사오자마자 친구에게 전화를 했고, 저는 동생과 함께 거의 싸우다시피 전화기를 번갈아가며 받았고, 저희 집에 새로 나온 전화번호도 일러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삿짐을 챙기는 중에 그만 그 편지를 잃어버렸고, 그 후로는 연락을 하고 싶어도 방법이 없어 소식이 끊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나의 어린 시절을 떠 올릴 때면 가끔 생각나는 친구, 현정!

아마도 훌륭한 숙녀가 되어 있을 거예요.

만약 내가 스타가 되어 "TV는 사랑을 싣고"에 나간다면 꼭 한 번 다시 만나보고 싶은 친구. 나에게 진정한 친구가 무엇인지 가르쳐 준 "나의 영원한 벗…"

하지만 지금도 그 인연은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조금 더 성숙해 있을 때 다시 만날 것이라는 기대로 , 오늘 하루 하루도 나날이 준비하며 나의 멋진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서, 아름다운 인연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 오늘도 마음속 깊이 한 컷, 한 컷의 사진들을 정성껏 찍어 담아놓도록 하겠습니다. 마음이라는 앨범안에…